대통령 한마디에 KDDX 판세 급변…결론은 공정위 손으로
입력 2025.12.13 06:00
수정 2025.12.13 07:03
수의계약 급제동…경쟁입찰·공동설계 모두 난제
사업 2년째 표류·공정위 해석에 사업 향방 달려
기업들 대기 비용만 증가…조선업계 피로 누적
한국형 차기 구축함 조감도(KDDX) ⓒHD현대중공업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이 대통령의 공개 발언을 기점으로 기존 구도가 완전히 흔들리며 다시 안개 속에 들어섰다. HD현대중공업과의 수의계약이 사실상 배제된 가운데 방위사업청은 경쟁입찰과 공동개발(설계) 사이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공동설계가 담합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유권해석까지 기다리는 이례적 국면으로 넘어갔다.
13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KDDX는 기본설계가 완료된 지 2년이 지나도록 사업자 선정조차 마무리되지 못하면서 전력화 일정 지연의 공백이 깊어지고 있다.
KDDX 도입 사업은 2030년까지 약 7조8000억원을 투입해 6000톤(t)급 최신형 이지스 구축함 6척을 확보하는 프로젝트다. HD현대중공업이 맡은 기본설계는 2023년 12월 종료됐지만 방사청은 2년 가까이 상세설계 및 초도함 건조 사업자를 선정하지 못하고 있다. 애초 기본설계를 수행한 HD현대중공업과의 수의계약이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로 거론됐고 방사청 역시 기술 연속성과 일정 관리 차원에서 수의계약에 무게를 둬왔다.
그러나 지난 5일 천안 타운홀 미팅에서 대통령 발언이 나오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방산 비리 근절 요구에 답하는 과정에서 “군사기밀을 빼돌려 처벌받은 곳에 수의계약을 주느니 하는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던데 그런 것을 잘 체크하라”고 방위사업청장에게 주문했다. 업계에서는 이 발언이 과거 군사기밀 유출로 보안감점을 받은 HD현대중공업을 겨냥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HD현대중공업 임직원 9명은 KDDX 개념설계 등 군사기밀을 촬영해 유출한 혐의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후 방사청은 지난해 10월 해당 사건의 마지막 판결 시점을 기준으로 보안감점 적용 기간을 2026년 12월까지 연장했다. 당초 8명의 확정 판결을 기준으로 올해 말 종료될 예정이던 보안감점 유효기간을 1년 넘게 늘린 것으로 제도적 일관성 논란도 불거졌다.
이로써 남는 선택지는 경쟁입찰과 공동설계 두 가지다. 그러나 두 방식 모두 난제가 적지 않다. 경쟁입찰의 경우 HD현대중공업은 보안감점으로 불리하고 한화오션은 기본설계를 수행하지 않아 기술적 기반이 약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경쟁입찰이 확정될 경우 HD현대중공업이 감점 연장 조치의 적정성을 두고 다시 법적 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 추가 지연이 불가피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HD현대중공업 울산 본사 야드 전경.ⓒHD현대중공업
공동설계안은 두 회사가 상세설계를 함께 수행하고 1·2번함을 동시 발주해 분담하는 방식으로 일정과 부담을 분산할 수 있다. 다만 담합 소지가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자 방사청은 독자 판단을 유보했고 결국 지난 8일 공정위에 공식 유권해석을 요청했다. 국가 핵심 무기체계 사업의 추진 방식이 공정위 판단에 좌우되는 건 이례적이다. 공정위가 담합 판단을 내리면 경쟁입찰로, 담합이 아니라는 회신이 오면 공동설계가 유력해진다. 다만 대규모 사업의 책임이 공정위에 집중되는 것을 우려해 결론 자체를 피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방사청은 오는 22일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사업 방식을 최종 확정할 방침이지만 공정위 회신 여부에 따라 일정이 다시 미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업계 한 관계자는 “수의계약은 이미 어렵고 경쟁입찰도 양사 모두 부담스러운 구조라 공동설계 가능성이 커지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상세설계를 반반으로 나누는 순간 기본설계를 수행한 업체의 기술적 기여와 책임 구조가 흐려지고 추후 성능 검증 과정에서도 전체 설계 체계의 일관성을 담보하기 어려워진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현장에서는 사업 지연이 현실적 위협으로 번지고 있다. HD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은 지난 11일 소식지를 통해 “KDDX 추진 방식이 잇따라 흔들리며 조선산업 노동자의 고용 불안이 극심해졌다”며 “과거의 불법과 오늘의 노동자 생존권이 구분 없이 뒤엉킨 채 정책 혼란이 반복되고 있고, 특정 기업에만 유리하게 기우는 듯한 형평성 문제도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두 회사는 모두 대규모 설계 인력과 전용 설비를 대기 상태로 유지해야 하면서 유휴 비용이 증가하고 있다. 선도함 착수가 계속 늦어지면 후속함 건조는 물론 연구개발 계획과 수출 전략까지 연쇄적으로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주요국이 신형 구축함과 장거리 잠수함 확보 경쟁에 속도를 내는 상황에서 한국은 핵심 전력화 사업의 첫 단계조차 열지 못한 채 2년 넘게 멈춰 서 있다”며 “지금의 지연은 단순한 행정 절차 문제가 아니라 향후 해군력과 수출 경쟁력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험”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