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에 엔테크족 '눈치싸움'…엔화 예금 이탈 '가속'
입력 2024.12.30 14:53
수정 2024.12.30 14:58
5대 은행 엔화예금 10.5% '뚝'
"지금이 고점" 대거 차익실현
전 세계적으로 미국 달러화 강세가 지속되면 일본 엔화 환차익을 노리려던 엔테크족들의 이탈이 가속화하고 있다. 원·엔 환율 상승이 둔화되자 엔화예금에서 돈을 빼 다른 투자처로 눈을 돌리는 모습이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번 달 24일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엔화예금 잔액은 9949억 엔으로 지난 달 말보다 10.5% 줄었다.
5대 은행의 엔화예금 잔액은 엔테크 열풍에 지난해 9월 1조 엔을 돌파한 후 올해 6월 말 1조2929억 엔까지 불어났지만 현재 1조 엔을 밑돌고 있다.
이는 엔테크족 사이에서 지금의 엔화 가치가 고점이라는 인식이 퍼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완만한 엔저 흐름을 이어가던 엔화가 최근 정치적 불안 등의 이유로 변동성이 생기자 돈이 묶였던 엔테크족이 대거 차익실현에 나선 것이다.
시장에선 이들이 원·엔 환율의 변동 폭이 그렇게 크지 않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엔화는 안전자산으로 인식돼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증가할수록 투자자들의 선호를 받는 경향이 있다.
앞서 지난해 10월 엔화는 900원대를 밑으로 떨어진 후 같은해 11월에 850원대까지 내려갔다. 당시 엔화 가격의 반등을 기대하는 투자자가 급증한 배경이다. 그러다 올해 초 900원대까지 급격히 오른 후 완만하게 엔저 흐름을 보였다. 이런 가운데 최근 국내 정치불안이 이어지면서 매도세가 두드러진 것이다.
지난달 100엔당 900원을 밑돌았던 엔화 가치는 비상계엄 선포부터 탄핵 사태까지 정치 불안이 이어지면서 970원대까지 올랐다. 이후 지난 19일 일본은행이 금리를 동결하면서 920원으로 떨어졌다.
일각에선 일본 여행 수요가 증가하는 것도 엔화예금 감소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예금으로 보유하던 엔화를 여행 경비로 인출하면서 엔화예금 감소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아울러 달러 강세로 아시아 통화가 전반적으로 약세를 보이는 점도 엔테크 투심을 얼어붙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는 엔테크족들에겐 단기적으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최근 글로벌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엔화 가치의 추가 상승 여력이 크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지난 25일 “경기와 물가에 중립적인 중립금리 보다도 기준금리를 낮춤으로써 완화적인 금융환경을 유지해 경제를 확실히 지원하겠다”며 추가 금리 인상 연기 가능성을 시사하면서도 시기에 대해선 회피했다. 그는 “향후 경제·물가·금융 상황에 달렸다”면서 명확하게 밝히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도널드 트럼프 차기 미국 정권의 경제 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크다”고 언급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우에다 일본은행 총재가 1월 금리 인상 언급 관련해 시기를 회피한 이후로 엔화 약세가 진행되고 있다”며 “원·엔 환율 변동성을 면밀히 살펴보고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