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안 플라자] 공자님 말씀은 아무나 한다
입력 2026.06.11 08:00
수정 2026.06.11 08:00
하벨 "우리나라는 지금 번영하고 있지 않다"
언어가 결코 가볍지 않았던 체코의 대통령
리더가 설득력 얻으려면 언행일치가 필수
李대통령 언어는 끝없이 일관성 논란 불러
이재명 대통령이 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출호이자 반호이자(出乎爾者 反乎爾者)."
네 입에서 나온 말은 결국 네게로 돌아오며, 과거의 언어는 언젠가 현재의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는 뜻이다. 맹자의 말이다.
정치인의 말도 다르지 않다.
최근 이 대통령의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을 보며 문득 이 말을 다시 떠올렸다.
지방선거 당시 '최악의 저질'이라 표현했던 SNS 글이 야당을 겨냥했다는 논란을 낳았다. 그러자 대통령은 "순수한 투표 독려였을 뿐"이라며 "공자님 말씀 같은 원론에 왜 화를 내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비판 역시 특정 국가나 진영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 가치와 인류애의 관점에서 한 말이라고 설명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지극히 당연하다. 보편적 가치와 인류애를 이야기하는 것 역시 옳다. 그러나 논란의 핵심은 공자님 말씀이 아니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이다.
국민은 공자님 말씀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문장을 내뱉는 지도자의 얼굴을 먼저 본다. 자신이 던진 정치적 메시지를 뒤늦게 보편적 가치로 설명한다 해도 사람들은 문장보다 말한 사람의 진정성을 먼저 살핀다.
왜 같은 말이 어떤 사람의 입에서는 감동을 주고, 어떤 사람의 입에서는 공허하게 들릴까.
그 질문 앞에서 문득 '바츨라프 하벨'이 떠올랐다.
하벨은 공산당 독재에 맞서 싸우다 수차례 투옥된 반체제 극작가였다. 벨벳혁명 이후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이 되었고, 국가 분리 후에는 초대 체코 대통령을 지냈다. 36년 전인 1990년 6월 8일, 체코에서는 벨벳혁명 이후 최초의 자유 민주 총선거가 치러졌다. 국민의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독재를 끝내고 민주적 정통성을 완성한 그 역사적 전환의 중심에 하벨이 있었다.
그는 평생 "진실 안에서 살기(Living in Truth)"를 외쳤다. 권력의 거짓과 위선을 비판할 때도, 자신이 권력을 잡은 뒤에도 같은 기준을 스스로에게 적용하려 했다.
필자는 1995년 가을, 김영삼 대통령의 체코 국빈방문 실무진으로 프라하성 대통령궁에서 하벨 대통령을 볼 기회가 있었다. 왜 그가 국민들로부터 신뢰받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권력의 정점에서도 청바지를 즐겨 입고 담배를 손에서 놓지 않던 지도자. 그는 늘 국민의 삶 속에 있었다. 그의 작품처럼 삶은 드라마틱했지만 그의 원칙은 놀라울 만큼 일관됐다.
그의 언어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대통령 취임 직후 신년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내가 또다시 거짓말하기를 원해서 이 자리에 앉힌 것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우리나라는 지금 번영하고 있지 않다"라고 고백했다. 갓 독재를 끝낸 국민들이 듣고 싶어 했던 승리의 수사가 아니었다. 40년 동안 장밋빛 미래만 이야기하던 지도자들과 정반대의 선택이었다.
그는 국민을 기분 좋게 만드는 말보다 국민이 들어야 할 말을 택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정책에 동의하지 않을 때조차 그의 진정성만큼은 의심하지 않았다. 그의 권위는 권력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삶에서 나왔다.
공자의 가르침이 위대한 것도 같은 이유다. 문장의 화려함 때문이 아니다. 평생을 자기 말대로 살아내려 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공자의 말을 기억하기 전에 공자의 삶을 기억한다. 공자의 권위는 언어가 아니라 삶에서 나왔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설득의 핵심 요소 가운데 하나로 에토스(Ethos)를 꼽았다. 말하는 사람의 신뢰와 품성이 설득력의 원천이라는 뜻이다. 현대 커뮤니케이션학의 '행동 정합성(Behavioral Integrity)' 이론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리더의 말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시간적 일관성과 언행일치가 필수적이다. 과거와 현재의 말이 충돌할 때 사람들은 인지부조화를 느낀다. 그리고 아무리 고결한 도덕적 수사라도 결국 정치적 편의의 도구로 의심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 대통령의 언어는 끊임없이 일관성 논란을 불러왔다.
"존경한다고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는 발언은 정치적 수사의 진정성에 의문을 남겼다. 주요 공약과 정책 방향이 상황에 따라 달라지면서 정치적 약속의 무게를 가볍게 만든다는 비판도 받아왔다. 과거 일본과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를 향해 쏟아냈던 거친 언어, 그리고 '셰셰' 발언으로 상징되는 외교적 인식과 집권 이후의 현실적 행보 사이의 간극 역시 국민들에게 적지 않은 혼란을 안기고 있다.
과거 "대통령이라도 죄를 지었으면 감옥에 가야 한다"라고 단언했던 정치인이 오늘날 자신과 관련된 사법 논란 앞에서는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같은 맥락이다. "다주택자는 패가망신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정작 다주택 보유 논란이 있는 인사를 국정 운영의 핵심 축에 앉히는 모습 역시 국민들에게 적지 않은 혼란을 안긴다.
무엇보다 과거 가족과의 갈등 과정에서 드러난 거친 언행은 지금도 많은 국민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래서 지금의 보편적 가치와 인류애를 강조하는 언어 역시 충분한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개별 발언 하나하나가 아니다.
그 발언들이 오랜 시간 축적되며 형성한 신뢰의 문제다. 정치에서 신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수십 번의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 중요하고, 수많은 구호보다 꾸준한 일관성이 더 큰 설득력을 갖는다.
하벨은 권력을 잡은 뒤에도 반체제 시절 자신이 외쳤던 원칙을 버리지 않으려 했다. 남을 비판하는 기준을 자신에게도 적용하려 했다. 그래서 그의 말은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신념으로 받아들여졌다.
국민은 완벽한 정치인을 기대하지 않는다. 실수하지 않는 지도자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다만 어제의 말과 오늘의 행동이 크게 다르지 않은 지도자를 원할 뿐이다.
공자님 말씀은 훌륭하다.
보편적 가치도 소중하다.
그러나 국민이 듣고 싶은 것은 공자님 말씀이 아니다.
공자님처럼 살아온 흔적이다.
좋은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이 보고 싶은 것은 그 말을 할 만큼 살아왔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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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상환 한경국립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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