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입법탄(立法彈) 난사는 계속된다
입력 2024.05.29 07:07
수정 2024.05.29 08:37
공수처 만들자고 그 난리 떨더니
대통령직을 소모품화 하려는가
법치주의를 농락하는 정치세력
“대통령, 대통령비서실의 공무원은 수사처의 사무에 관하여 업무보고나 자료제출 요구, 지시, 의견제시, 협의, 그 밖에 직무수행에 관여하는 일체의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3조 2항의 규정이다. 검찰이나 경찰은 정부 소속의 기관이지만 공수처만은 ‘독립기관’의 지위를 갖는다. 굳이 연고성을 따진다면 국회와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처장 후보자 추천위원회를 국회에 둔다. 위원회는 당연직 3명과 여당 추천 2명, 야권 교섭단체 2명으로 구성하며 임명 및 위촉권은 국회의장이 갖는다. 형식적 권한이지만 상징성이 크다. 고위공직자 범죄에 대한 수사에 정부의 관여나 개입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것인데 그건 바람직하다고 해도 정치성 침윤(浸潤: 차차 젖어 들어감)의 위험성 또한 가벼이 볼 문제는 아니다. 과거 정치권이 비리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에게 저승사자로 불렸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를 왜 그처럼 집요하게 밀어붙였던 지를 돌아보면 이런 식의 위원회 구성 배경을 짐작할 수가 있다.
어쨌든 그 공수처가 이른바 ‘채 상병 사건에 대한 외압 의혹’을 수사하는 중이다. 공수처에는 대통령의 영향력이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다. 굳이 말하자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향력이 더 클 수가 있다. 그런데 왜 민주당은 그처럼 ‘채상병 사건’에 대한 특검 수사에 집착한다는 것인지,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정치적인 동기를 생각하고서야 납득이 되는 그런 행태라는 뜻이다).
공수처 만들자고 그 난리 떨더니
“대통령이 격노했다지 않느냐, 그게 바로 수사에 관여했다는 증거지. 그러니 특검에 맡겨야 하는 거야.”
이런 말이겠는데, 언제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 말 한마디 기침 한 번 일일이 야당의 감시 대상이 되었다는 것인지 그것부터 민주당은 먼저 밝힐 일이다. 군인 사망 관련 범죄, 성범죄, 입대 전 범죄 등 군 3대 범죄에 대한 군 자체의 수사권은 문재인 정권 때 박탈됐다. 이들 범죄 수사는 민간 수사기관에 넘겨야 한다. 민주당이 2021년 8월 31일 주도해서 통과시킨 개정 군사법원법에 포함된 내용이다. 대통령이 ‘격노’했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랬다고 해도 그게 수사와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것인가.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을 남들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채 모 상병의 사망에 대해서는 애도의 뜻을 표할 뿐 어떤 말도 덧붙일 수가 없다. 단지 민주당의 과도한 입법 농단에 대해서 말하려는 것이다. 특검수사는 이미 수없이 경험했지만 ‘정치성’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정부기관인 검찰이나 경찰이 아니라 국회가 주도하는 수사라는 명분이 있긴 하나 내용상으로는 특검법 입법을 주도하는 정당의 이해와 계산이 반영될 뿐이다.
민주당은 공수처 만들기에 사생결단하듯 했다. 그것만 되면 고위공직자 범죄 수사는 정치적 고려 없이 정말 공정하게 이뤄지고, 그 덕분에 공직사회가 아주 모범적으로 깨끗해질 것이라고 강조해 마지않았다. 민주당이 집단 망각증에 빠지지 않은 이상 이를 잊었다고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 공수처가 추상열일(秋霜烈日) 같은 의지로 수사외압 의혹에 대한 수사를 벌이고 있는데 민주당이 또 다른 (한시적) 수사기관을 설치해야 하겠다고 고집하는 까닭이 뭔가? 민주당이 보기에 사건이 중대하다고 판단되면 공수처, 검찰, 특검, 경찰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수사를 해야 진실 규명이 가능하다는 것인가?
대통령직을 소모품화 하려는가
대한민국의 의회를 앞으로도 4년간 좌지우지할 정당인만큼 국리민복을 위해 자기희생을 마다하지 않을 사람들의 정치적 결사라고 믿고자 한다. 다만 그 이전에 몇 가지 의문스러운 점을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다. 혹 특검수사를 한답시고 날마다 수사 경과를 브리핑하도록 해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이미지를 일그러뜨릴 생각 같은 것은 없는가?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의혹을, 개연성 있는 사실인 양 지속해서 떠들어 놓으면 정부・여당은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입게 될 것이라는 계산을 하는 건 아닌가? “정치란 죽느냐 죽이느냐의 싸움이야. 정치도의 따위는 아무런 도움이 안 돼”라는 나름의 철칙 같은 걸 가졌다고 여긴다면 오해인가? “설마 그럴 리야!”라는 심정으로 묻는데, 이재명 당 대표를 유죄판결로부터 지켜내는 가장 효과적이고 강력한 수단이 ‘입법탄(彈) 난사’라고 여기는 듯하다는 시각은 어떤가?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가 공동전선을 구축하자고 빌붙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 군의 총병력은 48만여 명에 이른다. 군은 적의 군사적 도발과 침략에 대비해 끊임없이 훈련해야 하는 젊은이들의 특수사회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마찬가지로 온갖 일이 일어난다. 위험성이라는 점에서는 일반사회보다 월등히 높다. 장병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국민의 소중한 자녀들이다. 당연히 국가는 그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 그렇지만 유감스럽게도 군대는 안전을 주목적으로 하는 집단이 아니다. 만약 그게 전제조건으로 요구된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군대를 없애는 것이다.
물론 지휘관이나 현장 책임자의 터무니없는 과실이나 오판으로 아까운 생명을 희생시키는 일은 절대로 용납될 수가 없다.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당연히 준엄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거기서 멈춰야 옳다. 그 안타까운 희생이 정쟁의 도구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 지금 민주당은 해병대 사령관, 국방부 장관을 넘어 대통령에게까지 책임추궁의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사실은 대통령을 직접적 타깃으로 삼고 있다. ‘탄핵’을 입에 달고 산다. 대통령직을 소모품화 하려는 기세다. ‘응답하라 2017’의 심사인가?
법치주의를 농락하는 정치세력
그 사이에 수류탄 투척훈련을 하던 훈련병, 군기훈련(얼차려)을 받던 훈련병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부모에겐 세상을 다 잃은 충격이다. 자식을 군에 보내놓고 돌아서기 무섭게 부음을 들어야 하는 심정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부모는 청산에 묻지만,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했다. 그 심정을, 당해 보지 않는 사람이 짐작할 수 있을 리 없다. 민주당의 이 대표와 그 측근들의 생각은 어떤가? 역시 ‘특검수사 대상’이고 ‘탄핵감’인가?
민주당은 이날 특검법 표결에 앞서 전세사기피해자지원 특별법(전세사기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채상병 특검법’이 부결된 후에도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민주유공자법) △4·16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세월호 특별법 개정안) △농어업회의소법 제정안 △한우산업지원법 제정안 등 4개 법안을 일방적으로 강행 처리했다. 시급한 민생법안은 외면해 버렸다. 의회의 입법권이 거대정당의 득표 수단으로 전락하는 장면을 민주당이 생생하게 보여준 것이다.
이런 민주당의 정치 인식과 행태는 22대 국회에 가서도 계속될 게 뻔하다. 이 당의 이 대표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채상병 특검법’이 재표결에서 부결된 것과 관련, “국민들과 함께 반드시 채 해병 사망 사건의 진상 규명을 해내겠다. 한 점의 의혹도 없도록 절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 나가겠다는 말씀을 드린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입법탄 난사’가 계속될 것이라는 예고다.
그건 그럴 수밖에 없겠는데, 한 가지 궁금해지는 게 있다. 이 대표에 대한 재판은 어떻게 되어가는 걸까? 설마 이 대표와 민주당의 서슬에 검찰과 사법부가 지레 겁을 먹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돌아가는 판세가 영 미덥잖다. 법치주의가 특정 정치세력에 농락당하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