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드론 택시’의 시대가 열린다
입력 2024.04.14 07:07
수정 2024.04.14 07:07
中, 이항에 ‘드론 택시 상용화’ 뜻하는 생산 인증서 발급
이항, 지난달 18일 온라인쇼핑몰에 드론 택시 판매 시작
美 공매도 업체, 이항 先주문 90% 이상 ‘쓸모 없는’ 거래
지난해 획득 형식승인엔 수많은 비행제한 조항도 있어
중국 대륙에 ‘드론(무인기) 택시 시대’가 열리고 있다. 중국의 대표적인 드론 기업인 이항(億航)의 '드론 택시'가 정부의 대량생산 승인을 받아 양산에 돌입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된 것이다. 이항의 드론 생산 인증 획득은 세계에서 처음이다.
중국 민용항공국(CAAC)은 지난 7일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 이항의 ‘드론 택시’로 불리는 2인승 드론(EH216-S)에 생산 인증서를 발급했다고 중국 매일경제신문(每日經濟新聞) 등이 일제히 보도했다. 정부의 생산 인증 발급은 이항이 2인승 드론을 대량생산해 드론 택시의 상용화 시대를 연다는 것을 뜻한다. 후화즈(胡華智) 이항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생산인증을 취득함으로써 양산의 '대문'을 열어젖혔다"며 "상용화의 가장 중요한 한 걸음을 내디뎠다"고 자평했다.
이항은 앞서 지난달 18일부터 드론 택시(EH216-S)의 온라인 판매를 개시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 모델은 중국 최대 e커머스 업체인 알리바바(阿里巴巴)그룹 산하 온라인쇼핑몰 타오바오(淘寶)에서 239만 위안(약 4억 5000만원)에 팔리고 있다.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판매가는 41만 달러(약 5억 6500만원)로 책정했다.
드론 택시는 조종사 없이 승객을 태우고 뜨고 내리는 전기 수직이착륙기(eVTOL)다. 자율비행 무인기로 도심 단거리용 교통수단이다. 프로펠러 16개와 전기모터 16개를 탑재하고 있으며 배터리 충전시간은 120분가량이다. 승객 2명이나 260㎏의 화물을 싣고 최고 시속 130㎞로 30∼40㎞ 범위를 25분 동안 비행할 수 있다.
이항은 지난 2년간 항공당국의 시험운영 지침에 따라 중국 18개 도시에서 9300회 이상 저고도 비행을 테스트했다. 덕분에 이항은 지난해 10월 항공기 제품 안전성과 품질을 인증하는 형식승인을 받은데 이어 같은해 12월 안전성과 성능을 검증하는 감항인증(안전한 비행을 위한 신뢰성)을 모두 취득했다.
모든 항공기는 감항인증을 받아야만 하늘을 날 수 있다. 유인기 성능은 생명과 직결되는 만큼 인증 기준이 매우 까다롭다. 이번에 생산 인증까지 받으면서 이항은 상용화에 필요한 세 가지 인증을 모두 획득했다. 이항은 미국 연방항공청(FAA)의 안전 승인 획득도 추진하는 등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경우 대표 기업인 자비(Joby)어비에이션이 군사용 감항인증을 받아 지난해부터 미 공군에 항공기 납품을 하고 있다. 아직 FAA의 감항인증 절차 5단계 중 3단계만 마쳐 상업용 서비스 계획은 알려지지 않았다. FAA는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최초의 상업 운항이 2025년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내년에나 인증을 내줄 수 있다는 얘기다.
SM엔터테인먼트의 창립자인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가 투자해 널리 알려진 이항은 칭화(淸華)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엔지니어 출신 후화즈가 2014년 비행사고로 친구를 잃은 뒤 “안전한 비행기를 만들겠다”며 설립했다. ‘조종사가 필요 없는 유인 항공기’를 목표로 삼은 그는 창업 2년 만인 2016년 1월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자율주행 유인항공기 이항 184를 선보였다.
이에 힘입어 세계 1위인 다장촹신(大疆創新·DJI)에 이어 중국 2위 업체로 급부상했다. 이후 2018년 2월 광저우에서 이항184 시리즈의 유인 비행 테스트 영상을 공개하고 같은해 이항 216 모델의 시연에 나섰다. 간판 제품이 된 216 모델을 기반으로 노르웨이, 스페인, 캐나다 등으로 진출하기도 했다.
빠른 성장을 발판으로 이항은 2019년 12월 나스닥에 상장해 4000만 달러(약 552억원)를 조달했다. 이항에 따르면 드론 택시가 민용항공총국의 인증을 받은 뒤 수요가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4분기에 인도한 항공기는 23대, 연간으로는 52대로 집계됐다.
중국 정부는 최근 드론 택시를 비롯해 드론택배, 셔틀헬기 등과 같은 '저고도 경제'를 미래 전략산업으로 선정해 적극 육성하고 있다. 올해 정부업무보고에 집중 육성할 미래 신흥산업으로 바이오 제조, 상업용 항공우주, 양자기술 등과 함께 ‘저고도 경제’를 처음 포함시켰다. 저고도 경제는 드론택시와 드론택배 등 저고도 공역에서의 유·무인 항공기를 중심으로 한 여객·화물운송 등과 같은 산업을 일컫는다.
중국 공업정보부 산하 싸이디(賽迪)연구원이 1일 발표한 '중국 저고도경제 발전연구보고(2024)'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저고도 경제 규모는 5059억 5000만 위안에 이른다. 전년보다 33.8%나 증가했다. 오는 2026년에는 중국 저고도 경제 규모가 1조 위안을 돌파할 것으로 연구원은 전망했다.
이항의 216 모델 개발 및 활성화는 저고도 경제 발전의 핵심 요소로 꼽힌다. 이항이 소재한 광저우시 정부는 저고도 경제 산업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올 초부터 도심에 10개 물류 상업용 비행 노선, 의약품 배송용 급행 비행 노선 등을 만들고 저고도 경제 산업단지 건설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이항 드론 택시의 전망이 밝기만 한 것은 아니다. 지난해 11월 미국의 유명 공매도 업체 힌덴버그 리서치가 이항 주식을 매도하라는 보고서를 냈다. 이 회사는 2020년 미 전기차 업체 니콜라의 사기 행각이 담긴 보고서를 내고 공매도로 큰 수익을 올린 행동주의 펀드다.
힌덴버그 리서치는 보고서를 통해 이항이 발표한 선주문 1300대 가운데 92%가 '죽거나 버려진' 거래라고 지적했다. 더욱이 주문건수의 74%인 1000대가량은 이항이 기업공개(IPO) 전 투자사인 유나이티드 테라퓨틱스와 체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문은 2016년에 이뤄진 것인 만큼 6년이 지난 현재 큰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여기에다 이항이 지난해 10월 취득한 형식인증서에는 수많은 비행제한 사항이 있는데, 회사가 투자자에게 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다고도 비판했다. 야간과 악천후, 물 위, 인구밀집 지역, 다른 항공기와 동일한 공역 등에선 비행할 수 없다는 조건이다. 결국 인구가 많은 도시가 아닌 농촌 지역에서 관광용으로만 띄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항 측은 “안전을 위해 초기단계에선 작동이 제한된다. 앞으로 이런 제한을 점차적으로 해제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힌덴버그가 주장한 내용을 사실상 인정한 셈이다.
이항이 ‘사기 논란’에 휩싸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미국 투자정보업체 울프팩 리서치는 2021년 2월 이항에 대한 보고서를 내고 생산공장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고 가짜 판매 계약과 허위광고를 일삼았다고 주장했다.
울프팩 리서치는 이항의 주요 고객인 중국의 상하이 쿤샹(上海 鯤翔)을 조사해보니 쿤샹은 이항과 6500만 달러의 계약을 체결하기 9일 전에 설립된 회사로 밝혀졌다. 적혀 있는 주소 3곳 중 한 곳은 사무실이 아닌 호텔, 다른 한 곳은 11층짜리 건물인데 13층에 있다고 엉터리로 표시돼 있다고 울프백 리서치는 폭로했다.
이항과 계약 전 쿤샹의 자본금은 140만 달러였는데, 이항과 430만 달러의 계약을 체결한 것도 지불능력이 없는 회사가 이항의 주가를 띄우기 위한 ‘작전’에 동원됐다는 합리적 의심을 갖게 만들었다. 이항의 공장에는 생산설비도 부족했고 근로자와 원자재 재고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울프팩 리서치는 이항이 미국과 캐나다, 유럽 등에서 비행 승인을 받았다고 발표한 것도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항은 2020년 11월 서울시와 국토교통부가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개최한 도심항공교통 서울실증 행사에서 드론 택시용 기체 시범비행을 진행한 바 있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