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印 영유권 분쟁 아루나찰프라데시 화약고 되나
입력 2024.04.07 07:07
수정 2024.04.07 07:07
中·印, 영유권 분쟁 아루나찰프라데시주서 몇 차례 유혈 충돌
모디, 中 보란 듯이 지난달 아루나찰 터널 개통식 등 행사 참석
中, 아루나찰 주거지역·산·강 등 30곳 중문표기명 발표로 맞불
美 “印 영유권 인정”하며 어떤 현상변경 시도에도 강력히 반대
중국과 인도의 국경이 맞닿아 영유권 분쟁 중인 인도 북동쪽 아루나찰프라데시(중국명 짱난)에 ‘전운’(戰雲)이 짙어지고 있다. 인도가 대다수 실효지배 중인 이 지역에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며 30개 장소에 중국어 지명을 추가로 부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중국 국무원 민정부(행정안전부 격)는 지난달 30일 짱난(藏南·남티베트)의 주거지역 11곳과 산 12곳, 강 4곳, 호수 1곳, 산길 1곳, 토지 1곳 등 30곳에 대해 중국어와 티베트어 표기명을 공식 발표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1일 보도했다. 중국 정부는 2017년부터 짱난에 대해 중국식 지명표기 작업을 시작했으며, 2021년에 15곳에 대해 중국어와 티베트어 표기명칭을 발표한 바 있다.
중국 외교부는 “국무원의 지명 관리규정에 따라 짱난의 일부 지명을 표준화(정리)했다”고 밝혔다. 중국 민정부는 지난달 15일 자국의 ‘영토 주장’과 ‘주권 권익’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는 외국어 지명을 당국이 인정한 중국식 표기로 바꿔 사용해야 한다는 규정을 제정해 오는 5월 1일부터 시행한다고 공지했다.
중국 정부의 이 같은 조치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난달 8일 아루나찰프라데시를 찾아 터널 개통식 등 인프라 사업 완료를 축하하는 행사에 참석한데 대한 맞대응 차원으로 해석된다. 모디 총리가 개통식 테이프를 끊은 셀라 터널)은 해발 3900m에 히말라야산맥을 뚫고 건설되면서 인도 토목기술의 금자탑을 쌓아올렸다고 자부하는 데다 인도군의 전략에 이바지하는 성과도 큰 까닭이다. 인도 입장에서는 중국과 국경분쟁을 겪는 가운데 해당 지역에 군대를 더 빨리 투입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인도 정부는 앞서 지난해 4월 5억 8500만 달러(약 7915억원) 규모의 마을재생정책(VVP)을 발표했다. 이 정책은 아루나찰프라데시 등 4개주와 1개 연방 직할주에 걸친 46개 구역, 3000개 마을을 대상으로 수력발전소와 도로, 교량, 교육시스템 등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이 지역 현지인들이 도시로 이주하거나 국경 너머로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목표다.
특히 이 계획에는 인프라 개발 뿐 아니라 인도-티베트 국경경찰에 필요한 시설을 제공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를 위해 군부대 및 국경경찰의 11개 시설에 전기를 공급할 예정이다. 인도 정부는 실질통제선(LAC) 일대에 병력 9400명을 추가 도입하는 안도 승인했다. 로이터통신은 “아루나찰프라데시가 2020년 이후 악화된 인도와 중국 사이 새로운 화약고가 됐다”고 전했다.
중국 정부는 인도가 해당 지역을 임의로 개발할 권리가 없다며 모디 총리의 방문에 대해 강력히 항의했다. 왕원빈(汪文斌) 외교부 대변인은 “인도는 해당 지역을 임의로 개발할 권리가 없고 인도의 그런 행동은 과거 양국 간에 빚어진 국경분쟁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모디 총리의 이번 방문에 대해 인도에 항의했다”고 덧붙였다.
중국 관영매체도 측면 지원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의 산하 영문 일간 글로벌타임스(GT)는 사설을 통해 미국 정부의 입장에 대해 "극도로 사악하고 악의적인 것"이라며 "겉으로는 인도를 돕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도를 부추기는 독약을 건네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GT는 또 "선거가 다가오는 탓인지 인도가 중국·인도 간 국경 문제를 자주 거론하기 시작했다"며 "인도가 중국과의 국경문제에 살짝 중독된 순간에 미국은 기회주의적으로 독을 탄 음료를 끌어들였다"고 꼬집었다. 연방하원 의원 543명을 뽑는 잉도 총선은 오는 19일 시작돼 6주에 걸쳐 7단계로 실시되며 개표는 6월 4일 이뤄진다.
인도 정부도 즉각 반박했다. 란디르 자이스왈 외무부 대변인은 “아루나찰프라데시주는 이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인도의 한 부분으로 결코 양도할 수 없다”며 “중국 측도 이 같은 인도의 일관된 입장을 인지하고 있는 만큼 인도 지도자들이 아루나찰프라데시주를 찾거나 그 지역 개발사업 현장을 방문하는 것에 대한 중국의 반대는 타당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이 터널 개통은 인도와 3500km에 가까운 국경을 맞대며 오랫동안 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핵보유국인 중국과 인도 두 나라는 지난 몇 년간 해당 지역의 영유권을 놓고 격렬한 분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은 아루나찰프라데시주의 땅(8만 3743만㎢)이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반면 인도는 잠무 카슈미르주 라다크 지역이 포함된 카슈미르 악사이친 3만 8000㎦의 땅을 중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영유권 분쟁이 군사적 충돌로 번진 것은 2017년 6월 중국 기술자들이 부탄~인도~중국 간 국경 분쟁지역을 관통하는 도로건설에 나서면서 시작됐다. 3국 접경지대인 도클람(중국명 洞朗)고원의 도카라에서 중국 인민해방군과 인도 군인들이 싸움을 벌였고 이 싸움은 73일간 이어졌다. 당시 국경 인근 지역에서 무기사용이 금지됐던 만큼 두 나라 군은 서로에게 돌팔매질을 하며 대치하기도 했다.
2020년에는 라다크 국경지대에서 몽둥이를 들고 몸싸움을 벌이다가 인도군 20명과 중국군 4명이 숨졌다. 중국군과 인도군은 2020년에는 5월 판공호 난투극, 6월 갈완 계곡 몽둥이 충돌, 9월 선파오산 총격전 등 라다크 인근에서 잇따라 유혈 충돌했다.
2020년 유혈 충돌 이후 인도 정부는 중국을 실질적인 위협으로 인식하고 군비증강에 나섰다. 전통적인 라이벌인 파키스탄과의 국경을 따라 배치됐던 6개 사단을 북부 라다크에 재배치하며 중국을 견제했다. 드루바 자이샨카르 옵저버연구재단아메리카 전무이사는 “인도 정부 내에서 중국의 군사력은 외교적 합의만으로 관리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2022년 12월에는 아루나찰프라데시 타왕 지역에서 중국군과 인도군 양국 군대가 난투극을 벌인 바 있다. 인도 타임스오브인디아 등에 따르면 300~400명의 중국군이 실질통제선을 넘어 침범하자 인도군이 강하게 막아서면서 유혈 충돌이 발생했다. 두 나라 군인 일부가 골절상을 당하는 등 다쳤고 인도군 6명이 병원으로 후송됐다.
충돌 현장에 중국군이 600명가량 있었으며, 다친 인도군의 수가 20명에 달한다. 중국군의 부상자 수는 더 많고 충돌 과정에서 총기사용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 군대는 히말라야산맥 서부 분쟁지역에서 철수하기로 합의했지만 인도 측은 중국이 합의를 지키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이에 미 정부는 인도를 두둔하고 나섰다. 미 국무부는 아루나찰프라데시 지역을 인도 영토로 인정하면서 어떤 현상변경 시도에도 강력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베탄트 파텔 미국 국무부 수석 부대변인은 "미국은 아루나찰프라데시 지역을 인도의 영토로 인정하고 있으며 군사적이든 민간이든 실질통제선을 넘어 침략이나 침범으로 영유권을 주장하려는 일방적 시도에 강력하게 반대한다"는 밝힌 것이다.
■ 용어 설명
아루나찰프라데시는 인도 북동쪽 끝의 주다. 북쪽은 중국 시짱(西藏·티베트), 서쪽은 부탄, 남쪽은 인도의 아삼과 나갈랜드, 동쪽은 미얀마와 각각 접하고 있다. 3500㎞에 가까운 중국과 인도의 접경지역 아루나찰프라데시주를 중국은 ‘짱난’이라고 부른다.
인도가 아루나찰프라데시주 대부분을 실효 지배 중이지만, 중국도 1962년 전쟁 때 점령한 악사이친 등 일부 지역을 실효 지배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는 1962년 이 지역을 두고 전쟁까지 벌였지만 여전히 국경을 확정짓지 못하고 실질통제선(LAC)을 국경 삼아 서로 팽팽히 맞서고 있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