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란 감독의 귀환 '오펜하이머', 이견 없는 영화계 구원자 [볼 만해?]
입력 2023.08.14 08:56
수정 2023.08.14 09:06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을 만든 J.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삶에 초점을 맞춘 전기 영화다. 그러나 놀란 감독이 세상이 던지는 질문은 이 영화를 전기 영화라는 카테고리에 놓기에는 너무 협소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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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의 천재적인 두뇌와 삶의 업적보다는 양심에 더 초점을 맞추며, 그를 인간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는 창조자와 창조 사이에 일어나는 불협화음을 설명하고, 정치가 인류의 역사에 가장 결정적인 순간을 어떤 식으로 결정하는지 새로운 관점을 밀도 높은 연출력으로 제시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라는 대사는 오펜하이머의 고뇌를 관통하는 대사이자 주제다.
전쟁은 국가나 집단 간의 갈등과 충돌을 통해 일어나며, 그 결과는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측면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2차 세계 대전은 1945년 미국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폭격하며 종식됐다. 놀란 감독은 핵무기가 탄생한 시점부터 현재까지 사용의 정당성에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는 2006년 퓰리처상 수상작인 오펜하이머 전기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원작으로 한다. 놀란 감독은 맨해튼 프로젝트 전개와 1954년 오펜하이머의 보안 청문회 과정을 묘사하며 전기와 법정 스릴러 장르를 오가는 기교를 보여준다.
‘오펜하이머’는 핵폭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만든 이의 눈을 통해 전개하며 관객들이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 분)와 일치된 감정을 따라가게 만든다. 오펜하이머의 두려움, 불안, 애정, 혼란을 공유하며 관객을 영화로 끌어들인다.
영화는 대사가 많지만 가장 강렬한 순간은 이미지로 표현했다. '오펜하이머'의 모든 프레임은 스토리텔링이라는 목적 아래에 정교하게 담겼다. 오펜하이머의 장면은 컬러로 진행되는 반면, 미국 원자력위원회 창립 위원인 루이스 스트로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분) 등장신은 흑백으로 구성됐다. 이는 각 인물이 영화의 갈등을 바라보는 주관적인 관점이 된다. 또 흐름 상 등장하는 트랜지션은 긴박감을 불러일으키며 극적인 효과를 유도하고, 오펜하이머가 고뇌하는 신은 클로즈업 샷으로 롱테이크로 진행해, 긴장과는 다른 의미로 숨죽이게 만든다.
'오펜하이머'는 개봉 전부터 핵폭발 장면을 포함해 영화 속 모든 장면에서 단 하나의 CG도 사용하지 않은 '제로 CG' 작품으로 입소문이 났다. 이는 영화에서 가장 기대되는 장면이었다. 영화에서 묘사된 폭발신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폭격한 장면이 아닌, 실험용 폭발로, 거대한 폭발이 하늘 높이 솟아오른다. 핵폭탄 버튼이 눌리기 전까지 긴장 속에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는데, 이는 심리적으로 동하게 만든다.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모든 이들은 성공적인 실험에 경이로움을 맛보지만, 오펜하이머만은 불기둥이 높게 솟아오르자 혼란 속에 메마른 얼굴을 보여준다. 자신이 만든 결과물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본능적으로 느낀 표정이 압권이다.
'오펜하이머'의 고뇌가 가장 잘 드러난 곳은 원자폭탄이 가져온 죽음과 파괴의 환영에 시달리는 동시에 일본의 원자폭탄을 투하한 것을 두고 성공적이라고 자평하고, 독일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리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연설하는 장면이다. 놀란 감독은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는 물리적인 장면을 삽입하지 않았다. 그 대신 책임감, 죄책감을 느끼는 오펜하이머의 내면을 카메라로 뚫어내는 듯하게 집요하게 파고든다.
엔딩 장면도 소리 없이 강렬하다. 영화의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현재 사회와 연결돼 있다는 인상을 준다. '오펜하이머'는 역사적인 사건의 재연일 뿐만 아니라 창조자의 눈을 통해 정치적 이데올로기, 종교적 신념, 민족성 등 기반이 무엇이든 분리주의 세상 속에 우위를 점하기 위해 무기를 만들어낼 것이며, 그 무기는 결국 우리를 갉아먹고 파괴한다는 걸 암시한다.
'오펜하이머'에는 아인슈타인, 버니바 부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베니 샤프디, 어니스트 로렌스, 닐스 보어, 한스 베테, 이지도어 아이작 라비, 리처드 파인만, 윌리엄 L.보든, 데이비드 힐 등 당시 맨해튼 프로젝트에 직, 간접적으로 연관된 학자들이 대거 등장한다. 설명적인 대사들로 기본적인 배경 정보가 없어도 이해할 수 있지만, 관계성과 업적을 알고 보면 더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다.
놀란 감독의 명불허전 연출이 제대로 꽃 피울 수 있었던 건 배우들의 명연기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킬리언 머피는 외형까지 오펜하이머와 최대한 비슷해 보이도록 노력했다. 눈빛, 손짓, 표정, 대사 하나까지도 허투루 넘길 장면이 없다. 이외에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에밀리 블런트, 플로렌스 퓨, 조쉬 하트넷, 데인 드한, 게리 올드만 등 할리우드가 사랑하는 배우들이 총출동해 영화에 숨을 불어넣었다. 티켓팅이 쉽지 않겠지만 아이맥스관 관람을 추천한다. OTT로는 읽어낼 수 없는 신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15일 개봉. 러닝타임 180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