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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人의 像과 MBC 조직문화의 정상화 [문호철의 MBC 생각 ⑨]

박상우 기자 (sangwoo@dailian.co.kr)
입력 2023.07.10 00:49
수정 2023.07.11 09:22

문호철 전 MBC 보도국장.ⓒ

박성제 前사장 시절 사원들에게 "시청자는 우리보다 똑똑하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이렇게 해도 시청자들은 잘 모르겠지'라면서 시청자를 속이려 들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였다고 생각한다. 발언 자체는 옳다. 문제는 언행불일치(言行不一致)였다.


현재 MBC의 오만과 시청자에 대한 불손(?)은 도를 넘었다. 6월 8일 <MBC 뉴스외전>에서 1분 이상 단신 3개가 화면과 맞지 않게 뒤죽박죽 방송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과 한마디 없었다. 대신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다시 녹화한 단신 보도를 올려놓는 '눈 가리고 아웅' 꼼수를 부렸다. 6월 12일에도 낮 12시 뉴스 첫 번째 리포트 "돈 봉투 의혹, 윤관석·이성만 체포안 표결"에서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원내대변인' 자막으로 내보내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했다. 이어 "반도체 공장설계도 중국 빼돌린 7명 구속" 보도에서는 기소된 사람 수 7인을 구속된 사람 수 7인(실제는 1인)으로 잘못 내보냈다. 역시 사과는 없었다. 이쯤 되면 단순 실수 반복 수준을 넘은 것이다. 침몰 중인 타이타닉을 실제로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침몰한 타이타닉을 보러갔다 한줌 고철로 변해버린 타이탄의 말로를 보는 것 같기도하고..


마침 지난 7일 시청자와 국민에 대한 MBC의 '오만'과 '교만'을 보여주는 법원명령이 있었다. 작년 9월 윤석열 대통령 미국 순방과정과 관련해 외교부가 MBC에 대해 제기한 'MBC 자막 논란 정정보도 청구소송'이었다. 법원은 "재판장이 아무리 여러차례 들어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음성을 명확히 파악할 수 없는만큼 영상 원본을 제출하라"고 명령했다. 이른바 '쓰레빠 기자'의 난동(?)으로까지 이어진 MBC의 '바이든-날리믄' 보도관련이다. 당시 MBC는 윤대통령의 비공식 사석발언에 대해 "국회 이××들이 승인안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는 자막을 넣어 보도했다. 윤대통령이 미국과 바이든 대통령을 비하하는듯한 발언을 했다는 취지였다. 대통령실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지만 MBC는 기존 입장에서 한발도 물러나지 않았다. 소리전문가도 구분이 어렵다는 '불투명한' 발언을 MBC는 확신에 차서 보도했다. 법원은 "윤 대통령의 발언 중 '미국'이라는 말이 없다는 것은 명확한데도 이를 확정적으로 보도한 MBC측도 너무 나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런 지경이라면 MBC '조직문화 개혁'은 다시금 사과할 줄 아는 조직이 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겠다. MBC는 부끄러움을 자각할 능력조차 잃어버린 중병환자이거나 아니면 목적을 위해 부분적, 절차적 오류는 감수해도 된다는 혁명주의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 아닐까? 무능과 무책임의 우물 속 개구리 아닌가? 이 상태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어떤 정치 성향이나 이념의 차원 이전의 문제다. 괴담과 광기에 사로잡힌 '뇌송송 구멍탁' 촛불집회 서막을 열어젖힌 2008년 초 MBC PD수첩 <광우병>방송은 어떤가? 대법원은 "보도내용 중 객관적 사실과 다른 허위사실이 있다"고 분명히 밝혔다. 다만 정책의 여론형성에 이바지할 수 있는 '보도의 공공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허위보도'에 대해 MBC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시청자에 대한 사과명령'을 받아 어쩔 수 없이 사과방송 했을 뿐 진정성 있는 사과는 하지 않았다. 사과도 당초 '광우병방송'을 했던 프로그램인 PD수첩이 아닌, 보도국 뉴스데스크를 통해 방송되었다. 보도국은 보도국대로 PD수첩이 아닌 뉴스데스크에서 왜 사과방송을 해야되냐며 거센 항의가 있었다.


박 前사장의 과거 언행에서 체화되버린듯한 조직적 차원의 병폐를 일찌감치 예상할 수 있었다. 2019년 조국 前장관 지지·검찰개혁 집회를 두고 "딱 보니 백만 명"이라고 말한 어록(?)은 아직 회자되고 있다. 이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광화문 태극기집회’ 참가자들을 "약간 맛이 간 사람들"이라고 지칭한 적도 있다. 사석도 아닌, 한국언론학회 봄철학술대회에서였다. '맛이 간 사람들'의 집회인 태극기 집회와 박 前사장 표현대로라면 '정의로운 사람'들의 집회인 조국지지집회를 같은 비중으로 보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맥락이었다. '단순 말실수'가 아닌 평소 생각이 드러난 표현이라 볼 수밖에 없다. 이어서 그는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시대정신이 담겨 있는 가치는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 낼 수 있는 공영방송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라며 "공영방송의 공공성은 중립성, 공정성, 독립성에서 더 나아가 시대정신과 상식을 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대정신과 상식'을 담기 위해 중립성과 공정성은 포기할 수 있다는 말로 받아들여졌다. 그 결과 MBC를 기껏 국민의 반쪽만을 위한 방송으로 만들었나? '시대정신과 상식'은 누구의 잣대로 판단했나?


지난 4월 26일 국회 앞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방송법 개정 반대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는 문호철 전 MBC 보도국장.ⓒ

<'스타 언론인' 워너비 열풍?>


박 前사장의 "딱 보면 백만" 발언도 2019년 MBC 보도국장 시절 옆 동네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서 했던 것이다. 공영방송사 MBC의 현직 보도책임자가, 그것도 당시 문재인정권이 차기 MBC사장으로 점찍고 있다는 설이 돌았던 보도국장이, 서울시산하 교통방송에서 정치적 언급을 한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인 가하는 지적이 안팎에서 터져 나왔다. 더군다나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어떤 프로그램인가? 지난 칼럼에서도 지적했듯 우리나라 지상파 공영방송을 마치 미국 토크 라디오 스타일의 편파·선동·저급 방송으로 끌어내린 선구적이고 교주적(?)인 대표 프로그램 아닌가? 개인홍보를 위한 것인지, MBC보도 홍보를 위한 것인지 말들이 많았다.


아무튼 당시 김어준이 "모시기 어려운 분을 모셨습니다. 지상파 보도국 국장님을 모셨네요, 저희가. 서울시장님보다 더 모시기 어렵지 않을까.."라고 말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 매우 이례적인 것은 분명했다. 이에 박 사장도 "(조국 집회에 대한 MBC 드론 촬영 보도를 자랑하려고 출연 요청이 왔을 때) 나오겠다고 바로 얘기했습니다."라고 화답했다.17년 탄핵정국당시 보도국장이었던 필자가 만약 공적 자리에서 촛불집회를 '약간 맛이간 사람들의 집회'라고 폄회하고, 다른 방송사에 출연해 태극기집회를 '딱봐도 백만'이라고 자랑처럼 떠들었다면 어땠을까? MBC 민노총 언론노조는 필자에게 온갖 이유를 들어 "보도국장 즉각 사퇴하라!"며 난리쳤을 것이다. 10년 동안 겪어온 언론노조 행태로 볼 때 분명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박 前사장에 대해 MBC언론노조는 꿀 먹은 벙어리였다.


문재인 정권 첫 MBC사장인 최승호 前사장은 公私구분이 애매한 분이었다. 최 전사장은 과거(사장 취임 이전) 자신이 연출한 영화 <공범자> 상영회 참석차 휴가를 내고 일본을 방문했다. 사장 취임 6개월 뒤였다. 일본에서 토크쇼도 했고 이후에는 '일본의 공범자들은 누구일까'를 주"제로 한 심포지엄에도 참석했다. 당시 <MBC 공정방송노동조합>은 "최승호 사장의 관심은 어디에 있는지 의문을 안 가질 수가 없다. MBC의 경영수지와 시청률은 MBC 역사상 최하위로 바닥을 치고 있고, 비정상적인 징계의 칼춤으로 인해 회사 분위기는 공포 자체이다. 그런데도 자신의 영화 홍보를 위해 일본까지 달려가서 기자회견에 열을 올렸다"라며 "MBC가 더 이상 추락하지 않도록 경영을 잘하는 사람에게 MBC 사장 자리를 양보하라"라고 일갈했다. 경영진이라면 개인적 활동보다 조직에 대한 헌신을 우선적 덕목으로 삼아야 한다. 최승호 자신의 표현 "해고는 살인이다"대로라면, 18년도 내내 '살인의 칼춤'을 춰대면서 1,000억 적자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던 시기에 왜 그래야 했을까? 그들이 그렇게 비난했던, 심지어 인간적인 모욕까지도 주었던 그 이전 사장들은 훨씬 더 좋은 회사 성과를 내면서도 그런 식의 처신은 하지 않았다.


<진정한 언론 분야 스타性의 원천 : 절제·품격·자기객관화로 얻은 신뢰>


언론인에게는 당당함이 중요하지만 이것이 자칫 오만함으로 비춰질 수도 있기 때문에 항상 경계해야 한다. 또 양보 없는 치열함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절제력도 필요하다. 필자는 미국의 피터 제닝스(Peter Jennings)가 이 양자 간의 어려운 균형을 잘 잡은 언론인의 한 사례로 생각한다. 그는 캐나다 출생이고 또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그러니까 미국 주류 언론계에서 처음부터 주목받을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ABC 메인 뉴스 <World News Tonight> 메인 앵커로 22년을 활약했다. 그가 메인 앵커로 활동했던 1980년대와 1990년대는 이른바 "Big 3"라 불리는 국민 앵커 세 사람들의 전성시대였다. 최고의 자리를 지키던 제닝스는 폐암 진단과 함께 앵커 마이크를 내려놓고 불과 4개월 뒤 세상을 떠났다. 2005년 4월, 그는 자신이 폐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World News Tonight> 방송 말미에 시청자들에게 직접 알리면서 작별을 고했다. 이미 병세가 완연한 얼굴색과 쉬고 갈라진 목소리만 빼면 평소 뉴스를 전할 때와 똑같은 태도, 표정이었다. 병마에 의해 강제된 자신의 은퇴 소식을 전할 때도 그는 품격과 절제 그리고 자기객관화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이를 잘 묘사하고 있는 것이 이 장면에 관한 당시 <뉴욕 타임스> 기사였다. "피터 제닝스는 그가 폐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지난 22년 동안 그가 다른 사람들에 관한 나쁜 소식을 전했던 것과 똑같은 냉정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전했다... 피터 제닝스가 방사선 치료를 받기 위해 방송을 쉬는 동안 (우리에게) 가장 그리워지게 될 것은 그만의 독특한, 담백한 뉴스 전달 스타일일 것이다. 방송에서 그는 쏘아붙이는 것 같은 약간 거만한 느낌도 주었지만 그의 진행은 항상 매끄러웠고 침착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감상적이지 않았다... 급박한 상황에서도 그는 항상 평정을 유지했다. 그는 공손했지만 냉정하고 공정했다. 이 날 방송에서 '오늘 <World News Tonight>는 여기까지입니다'라는 평소와 똑같은 클로징 멘트를 말하기 직전에 그는 스스로를 약간 디스 하는 유머를 섞는 것도 잊지 않았다."


피터 제닝스는 "Big 3" 시대 강력한 경쟁자였던 톰 브로코(NBC)로부터 "우리 셋 사이에서 피터는 우리의 왕자였다."라는 평을 들었다. 혹자에게는 도회적 외모와 영·미 영어가 혼합된 형태의 발음이 자만심에 찬것 같다는 인상도 주었지만, 내면의 소탈함은 항상 잃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당함과 자신감 그리고 치열함 또한 진실을 추구하는 자세는 언론인에게는 필수적이다. 그런데 당당함과 오만함 사이의 경계는 사실 모호하고 명확히 구분하기가 쉽지는 않다. 앞으로 MBC는 시청자에게 오만한 모습으로 비춰지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할 것이다. 최우선적으로 MBC 경영진은 스스로 논란의 대상 또는 뉴스거리가 되어버리지 않는 품격과 절제력을 갖추어야 한다.


스타 PD 또는 스타 저널리스트도 다 의미가 있고 필요하다. 과거 회사에서 정책적으로 육성하려고 했던 시도도 있었다. 그러나 그 결과를 돌이켜보면 역시 생명력이 긴 진정한 스타는 '스스로 태어나는' 것이지 자가발전이나 조직의 필요에 의해 키워지기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모 라디오 PD는 스스로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고 직접 라디오 DJ로도 활동했다. 청취자들에게 크게 각인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어쨌거나 이런 역사적 유산 덕분인지는 몰라도 최근 특히 MBC 라디오에는 작가나 PD가 직접 자기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언론계의 스타란 신뢰를 먹고 자라날 수밖에 없다. 신뢰는 진정한 권위에서 나오며, 품격과 절제 그리고 자기객관화(→ 내로남불 차단)가 진정한 권위의 원천이라는 진실은 과거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MBC는 이런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으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한다. 과연 지난 수년 간 우리는 어떤 모습을 시청자들에게 보여 왔는가? MBC 조직원 개개인 그리고 조직 차원에서 모두 성찰과 자기혁신이 절실한 시점이다.

박상우 기자 (sangwoo@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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