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 아닌 장미란 차관, 또 한 번의 금메달 기대한다 [김태훈의 챕터투]
입력 2023.06.30 13:55
수정 2023.06.30 13:59
장미란 교수 문체부 제2차관 지명..은퇴 후 꾸준히 연구 공익 활동
약물의 시대에도 페어플레이로 세계기록 수립과 금은동 휩쓸어
산적한 체육계 과제 앞에서 진정성 있고 겸손한 자세로 소통 기대
“스포츠인으로서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의 소임을 맡게 되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어려운 상황의 체육인들의 복지를 면밀히 살피고 체육인의 위상을 세우는 데도 최선을 다하겠다.”
‘역도 영웅’ 장미란(39) 용인대 교수가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으로 지명된 뒤 내놓은 입장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29일 일부 장관급 포함 장·차관 인사를 단행하면서 장미란 교수를 정책 홍보와 체육·관광 등을 담당하는 문체부 2차관에 발탁했다. 대통령실은 “체육계에 새 바람을 불어넣어 줬으면 좋겠다는 취지”라고 발탁 배경을 설명했다.
1983년생인 장미란은 올해 39세로 다음달 3일 차관에 공식 임명되면 46년 만의 30대 차관이 된다. 역대 최연소 체육 행정가다. 깜짝 발탁이라는 반응이 우세했지만, 장미란의 발자취를 근거로 적임자라는 평가도 들린다.
선수 시절 장미란 신임 차관의 업적은 찬란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역도 감독인 아버지 지인 눈에 띄어 뒤늦게 역도를 시작한 장미란은 4년 만에 국가대표가 됐다. 이후 승승장구했다. 2004 아테네올림픽 은메달을 시작으로 세계역도선수권 4연패(2005·2006·2007·2009년) 위업을 달성했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획득했다. 여자 역도 최중량급(75kg+)에서 세계신기록(합계 326kg)까지 수립했다. 함께 시상대에 올랐던 은메달 코로브카(우크라이나·277kg), 동메달 마리야 그라보베츠카야(카자흐스탄·270kg)는 이후 금지약물 양성 반응으로 메달을 박탈당했다. 그 사이에서 장미란은 깨끗한 금메달리스트로 더 부각됐다.
2012 런던올림픽에서는 메달 획득에 실패했지만, 무릎을 꿇고 기도한 뒤 밝은 미소로 인사하며 물러난 장미란의 스포츠 정신은 세계인들의 가슴을 적셨다. 시상대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이후 흐리프시메 쿠르슈다(아르메니아)에게서 금지약물 성분이 검출, 결국 장미란이 동메달을 차지했다.
장미란은 약물의 시대에서 참가한 올림픽에서 페어플레이를 펼치며 금·은·동메달을 모두 거머쥔 레전드로 기억된다. 박혜정-김수현 등 장미란을 보며 역도를 시작한 선수들은 어느덧 ‘제2의 장미란’을 꿈꾸고 있다.
체육계에서는 “꾸준히 이어온 학업과 연구, 비인기 종목 후원, 사회 배려 계층을 위한 활동 등 은퇴 이후 걸어온 길이 체육 정책과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비단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서의 경력뿐만 아니라 전문성과 진정성과 겸손함으로 소통 능력 면에서도 합격점을 받고 있어 기대가 더욱 크다.
국가대표 출신의 엘리트 체육인이 차관에 선임된 사례가 장미란이 최초는 아니다. 박근혜정부 시절이었던 2013년 ‘한국 사격 레전드’ 박종길,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9에는 ‘아시아 인어’로 불린 최윤희가 문체부 제2차관에 발탁됐다.
마무리는 좋지 않았다. 박 전 차관은 자신이 운영하던 사격장의 명의 이전 논란 때문에 취임 6개월 만에 물러났고, 낙하산 논란으로 취임 당시부터 지지를 받지 못했던 최 전 차관도 스포츠 인권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1년 만에 자리에서 내려왔다.
앞서 소개한대로 장미란 차관은 은퇴 이후 학계·봉사활동뿐만 아니라 대한체육회 선수위원회 위원, 문체부 스포츠혁신위 위원 등을 지내며 행정 경험도 쌓은 선수 출신이라 현장에서의 기대가 크다.
약물로 얼룩졌던 시대에도 페어플레이라는 순수한 과정을 걸으며 압도적인 성적과 결과를 만들어냈던 장미란. 체육계 산적한 과제 앞에서 대립과 반목으로 점철된 지금, 실력과 경험을 인정받고 깨끗하게 출발하는 '행정가 장미란'의 또 한 번의 금메달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