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만 ‘경제 위기’…정치권 ‘네 탓’에 피로감만 쌓인다
입력 2023.02.08 15:43
수정 2023.02.08 15:43
6~8일 사흘간 열린 국회 대정부질문
여야, 입으로는 ‘민생’ 실제는 ‘네 탓’
대안·토론 없는 대정부질문 ‘무용론’ 제기
올해 한국 경제가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커지는 가운데 정부가 정치권으로부터 조언과 협조를 구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정부와 함께 대책을 고민해야 할 여야가 여전히 ‘네 탓’ 공방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는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사흘간 대정부질문을 진행했다. 제403회 임시회 제3차 본회의 기간에 열린 대정부질문은 주제와 관계없이 정쟁만 반복했다. 여야는 민생을 입에 올리면서도 정작 해법을 찾기보다는 전·현 정부를 서로 깎아내리기 바빴다.
6일 첫날 정치·외교·통일·안보 분야에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법 리스크(위험)와 영부인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을 두고 충돌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지난 주말 장외집회가 이 대표 사법 리스크를 방어하기 위한 ‘방탄’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민주당은 김 여사 주가 조작 의혹에 대한 수사를 검찰이 뭉개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역공에 나섰다.
경제 분야에 대한 대정부질문이 있었던 7일에도 의원들은 정치적 갈등 사안을 부각하기 위해 애썼다. 전날 나왔던 질문을 재탕하기도 했다.
경제 분야 질문을 하더라도 대안을 고민하기보다는 서로 공격하기 바빴다. 특히 최근 서민 가계에 상당한 충격을 안긴 난방비 문제를 놓고 서로를 탓하는 데 시간을 낭비했다.
야당은 현 정부의 무능을 비판하면서 책임을 물었다. 출범 9개월을 맞은 윤석열 정부를 ‘무능력·무대책·무책임’ 3무(無) 정권으로 규정했다. 난방비 인상에 따른 대책을 고민하지 않아 서민층 부담을 가중시켰다고 날을 세웠다.
이성만 민주당 의원은 난방비가 급격히 오른 부분에 대해 “지금 정부가 공공기관에 대한 경영 효율화에만 중점을 둬서 (가스공사 등이) 급속하게 도시가스 가격을 올린 것”이라며 “과거에도 국제 에너지 가격이 여러 차례 급등한 적 있었지만, 그때마다 정부가 나서서 국민 민생을 책임지면서 (에너지 ) 요금을 서서히 올렸던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여당은 막대한 국가 부채를 언급하며 문재인 정부의 포퓰리즘을 꼬집었다. 난방비 폭탄은 당시 탈원전 정책과 에너지 요금을 제때 올리지 않은 탓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연금 고갈 시점이 앞당겨진 부분, 늘어난 공기업 부채와 함께 ‘전세 사기’ 사건도 문 정부 무능으로 빚어진 일이라고 몰아세웠다.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은 “대한민국 경제를 거덜 낸 포퓰리즘 폭탄이 대한민국 전반을 덮치고 있다”며 난방비 급등 이유를 전 정부 탓으로 돌렸다. 홍 의원은 나치독일 선전부 장관이었던 파울 요제프 괴벨스를 거론하면서 “지금 민주당 일부 의원과 좌파 일부 언론이 윤석열 정부 탓으로 잘못된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8일 교육·사회·문화에 관한 대정부질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소추안 표결을 위해 국회 의사일정까지 바꾼 여야는 이날 대정부질문에서도 정치 공방만 주고받았다.
이처럼 대정부질문이 정쟁의 장으로 변질하면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게 ‘대정부질문 무용론’이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나라는 본회의 중심이기 때문에, 영국 의회가 ‘퀘스천 타임’(Question Time)이라고 해서 1시간 동안 총리를 상대로 아주 처절하게 토론하지만, 대통령제를 채택하면서 대정부 질문 제도를 채택한 나라는 없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는 과거 군부 권위주의 시대 때 언로가 막혀, 당시 대정부 질문 제도가 나름대로 유용한 소통 창구였지만 1988년도 이후 활발하게 토론이 이뤄지는 상태라 대정부 질문이 과연 필요한 것인가 하는 의견이 많다”고 덧붙였다.
국회 내부에서도 대정부질문을 없애자는 얘기가 나왔다. 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과거 자신의 사회관계망(SNS)을 통해 “정쟁만 있고 정책은 없는 대정부질문 제도는 하루라도 빨리 없애야 한다. 그리고 상임위와 법안소위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정부 부처 고위 공무원은 “대정부질문을 마주하는 공무원으로서는 정치 공방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탓에 불필요한 피로감이 쌓이는 게 사실”이라며 “정치에서 정쟁을 뺄 수는 없겠지만, (대정부질문에서) 정책이나 대안에 대한 고민과 토론, 제안이 안 보인다는 점도 틀린 말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