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소설 ‘위대한 알코올중독자’<65>] 촛불집회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2.12.14 14:00 수정 2022.12.14 14:00

<작가 주> 우리나라는 음주공화국이라 할 만큼 음주에 관대한 사회입니다. 반면, 술로 인한 폐해는 매우 심각합니다. 주취자의 강력범죄가 증가하고 알코올중독자가 양산됩니다. 평화로운 가정과 사회가 풍비박산나기도 합니다. 술 때문에 고통 받는 개인과 가정, 나아가 사회의 치유를 위해 국가의 음주·금주정책이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술은 야누스의 얼굴을 가졌습니다. 항상 경계해야 하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들려드립니다.


사진은 글 내용과 관계 없습니다. ⓒ

제65화 촛불집회


야당과 시민사회에서는 연일 전국적인 촛불집회를 이어갔다. 또한 휴일엔 서울시청 광장에서 대대적인 집회까지 성사시켰다. 김석규는 평상시엔 농성장을 지키다가 집회가 열리면 연사로 초빙되어 사자후를 토했다. 박미옥은 한동안 애원조의 목소리로 전화를 계속하더니 이윽고 기대를 접었는지 시나브로 잠잠해졌다. 그 대신 방선희가 서너 차례 이철백에게 전화해서는 우회적으로 농성을 중단했으면 한다는 뜻을 내비치곤 했다.


추석 대목을 맞았지만 경기는 호전되지 않았다. 음주 동향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워낙 지대했다. 술을 마시는 행위가 진보적이지 않은 것으로 치부되는 분위기에서 사람들은 대놓고 술을 마시지 않았다.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평소보다 오버해서 술을 마셔댔고 보수단체에서는 야당과 시민사회에 난입해 점거농성까지 서슴지 않았다. 또한 금주투쟁에 대항하여 음주투쟁, 심지어 과음투쟁을 불사했고 대규모 맞불집회를 놓으며 경제 활성화를 위해 매진하는 정부와 보수여당에 힘을 실어주었다.


청와대에서는 보수단체의 맞불집회를 빌미로 현 시국을 국론분열 상태로 규정했다. 여론으로 따지자면 음주보다는 금주 쪽이 월등하게 높았지만 보수언론은 철저하게 기계적 중립을 지키며 대등하게 지면을 할애했다. 대통령은 담화문을 통해 국민 대통합을 역설했고 보수여당은 민생경제를 위해 좌우, 여야를 가리지 말고 통 크게 뭉치자고 호소했다. 대다수 언론은 추석대목임에도 경기침체로 고통 받는 시장상인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소개하며 강경투쟁을 견지하는 야당과 시민사회를 비판했다.


아울러 사정당국에서는 국론을 분열하는 근거불명, 출처불명의 유언비어를 강력하게 단속하겠다고 공표했다. 법무부 장관과 행정부 장관이 합동기자회견을 가진 이튿날 검찰총장과 경찰청장이 똑같은 내용으로 공동기자회견을 하면서 청와대와 정부는 야당과 시민사회에 강경대응을 예고했다. 이철백은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찮음을 느끼고 농성장을 지키는 당직자에게 김석규의 신변보호를 적극 요청했다.


청와대와 정부의 강경대응 예고는 추석 전에 정국 정상화를 꾀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까닭이었다. 금주․음주와 관련된 정부 비판 글은 포털사이트에서 차단되었고 지속적으로 댓글을 달던 네티즌은 경찰에 소환되었다. 경찰의 집회 대응 역시 강경일변도로 흘러갔다. 경찰은 헌법에 명시된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호해 주는 게 아니라 깨뜨리고 방해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물대포와 최루액, 방패와 곤봉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정부의 공권력 남용은 오히려 시민들을 거리로 불러 모았다. 시민들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국민의 권리인 집회의 자유를 민주정부에서 폭력적으로 억압한다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시민들은 비폭력 평화시위의 방편으로 시청광장에서 촛불집회를 시작했다. 시청광장에서 시작된 촛불은 청계광장을 지나 광화문광장에 이르기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긴 행렬을 이루며 장관을 연출했다. 외신기자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면서 그 광경을 속속 본국으로 전송했다.


청와대 행정관 김우환이 미국 대사관 정보담당자 콜린 매튜의 전화를 받은 것은 촛불집회 사진이 ‘다이내믹 코리아, 액티브 코리아’란 타이틀을 달고서 뉴욕타임즈와 워싱턴포스트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다음날이었다. 히스패닉계로 농담을 즐기는 유쾌한 성격의 콜린은 평소와 달리 심각한 목소리로 김우환에게 급히 대사관으로 와달라고 요청했다. 김우환은 수석에게 구두 보고만 하고 즉시 청와대를 나섰다.


“이쪽은 본국 CIA의 제임스 하워드 정보관입니다.”


콜린이 초면의 백인 남자를 김우환에게 소개해 주었다. 영화 007의 제임스 본드를 연상시키는 미남형의 남자는 웃음기를 머금은 얼굴로 악수를 청해왔다. 김우환 역시 미소를 띠며 제임스의 털북숭이 손을 잡았다.


“시간이 없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김석규는 어떻게 처리하실 겁니까?”


제임스가 웃음기를 싹 거두고 물었다. 날카로운 눈매와 메마른 음성에서 전형적인 정보관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김우환은 내용과 형식 모든 면에서 격식을 갖추지 않은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다소 기분이 언짢아 미간을 찌푸리며 말문을 닫았다.


“한국 정부에서 성급하게 해결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사태를 키웠어요. 촛불집회가 전 세계적인 뉴스가 되면서 뉴욕타임즈에서는 김석규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할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습니다. 가만 놔두면 한국정부의 타격은 말할 것도 없고 글로벌 금주운동이 일어날 수도 있어요.”


제임스가 김우환의 기분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혼자서 말을 이어나갔다.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김석규를 어떻게 해결하실 거죠?”


“과음하지 말자, 술 마시지 말자. 너무 당연한 주장이라서 대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임스의 강력한 눈빛에 압도되어 김우환이 엉겁결에 대꾸하고 말았다.


“프레임을 바꿔야죠. 상식적인 주장에 정면 대응하는 건 무모한 짓입니다.”


“김석규의 약점을 캐보려 해도 워낙에 술만 마시던 사람이라 특별하게 약점이라고 할 만한 게 없는 사람입니다,”


김우환이 난감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면 만들어 내야죠.”


“뭘 만들어요?”


“약점이 없으면 약점을 만들어내야죠. 털어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지만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먼지를 뒤집어씌워야죠.”


곁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콜린이 부연설명을 해주었다.


“그런데 왜 미국에서 김석규에게 관심을 가지죠?”


김우환의 질문에 제임스가 난감한 듯 콜린을 쳐다보았다. 콜린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주억거리자 제임스가 말문을 열었다.


“지금 금주운동으로 한국 경제가 피해를 입고 있잖아요. 만약 이 운동이 세계적으로 번진다고 생각해 보세요. 세계 경제가 어떨 것 같아요? 술이 우리 몸의 혈액순환을 돕는 것처럼 경제적 측면에서도 술은 선순환 역할을 하고 있죠. 술이 멈추면 경제도 멈춘다는 말까지 있을 지경이니까요. 그리고 세계 경제에서 술이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하고요.”


“아니, 미국이 한국 걱정해 주는 거야 한미동맹 차원에서 그런다 치지만 세계 경제까지 걱정하는 건 대단한 오지랖 아닌가요.”


박태갑 소설가greatop@hanmail.net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