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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도어스테핑 필요한가?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2.11.21 07:00 수정 2022.11.28 06:57

대통령 따라가며 소리 질러댄 기자

보도한 측에서 증거를 제시해야지

기자에겐 진실보도 사명이 있을 뿐

지난 18일 윤석열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을 지켜보고 있는 MBC 기자(빨강색 동그라미). ⓒ 김종혁 국민의힘 비대위원 페이스북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이렇게 다짐했다.


“퇴근길에는 시장에 들러 마주치는 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때로는 광화문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습니다.”

이런 약속도 했다. 아주 천역덕스럽게….


취임식이 끝나고 청와대로 들어간 후로는 문을 걸어 잠가버렸다. 지키지도 못할, 어쩌면 애초에 지킬 마음이 없었던 약속을 어떻게 그처럼 태연히 할 수 있었다는 것인지, 황당함을 넘어 모욕감까지 덮어 씌우는 대통령의 무신(無信)·오만이었다.

대통령 따라가며 소리 질러댄 기자

아마도 윤석열 대통령은 전임자들의 그 제왕적 의식을 털어내고 싶었던 듯하다. 일단 청와대에만 들어가면 군주 행세를 하게 되는 징크스를 깨뜨리는 게 대통령학 제1과라고 여겼음직하다. 그래서 무리를 해가며 ‘청와대 탈출’을 감행했다. 이어 도어스테핑(출근길 약식 기자회견)이라는 소통방식을 실천에 옮겼다. 국민과 소통하는 대통령, 국민에게 친근감을 주는 대통령, 국민에게 속일 것이 없는 대통령의 모습을 확인시키고 싶었음직하다.


그런데 정치경력이 거의 전무했던 윤 대통령의, 이 순진하지만 성급했던 시도가 몇 차례 뒤뚱거리나 했더니 결국 큰 사고를 부르고 말았다. 슬리퍼를 신고 팔짱을 낀 채 도어스테핑 자리에 있었던 MBC기자가 문답을 마치고 자리를 뜨는 대통령 뒤에 대고 큰 소리로 따졌다.


“뭐가 악의적으로 했다는 거죠? 뭐가 악의적이에요? 뭘 왜곡했어요?”

동남아 순방 때 대통령실은 MBC기자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배제했다. 윤 대통령이 18일 도어스테핑에서 그 배경을 설명한 데 대해 MBC 기자가 시비 걸듯 목소리를 높여 한 말이다. 대통령 홍보기획비서관이 저지하자 왜 비서관이 끼어드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군사정권 시절이냐” “이런 독재정권이 어디 있어”라는 말도 했다. 용기와 기백이 지나쳤다. 그런 말이 나올 계제가 아니었던 거다. 군사정권이라니?


“뭐가 악의적이냐, 증거를 내놔야 할 것 아니냐”며 따지고 든 그 기자에 대한 답변으로 대통령실이 10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그런데 그건 사실 필요 없는 응대였다. MBC기자가 무얼 가리켜 ‘악의적’이라고 하는지를 몰라서 그렇게 대들었든 게 아니다. 알면서도 그게 왜 우리 잘못이냐고 따진 셈인데, 이런 태도는 도리에 맞지 않다.


이는 취재의 자유도 권리도 아니다. 만용·행패로 비치기 십상이다. 대통령에게 대드는 것을 용기라고 여겨 성질 한 번 부려본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식의 태도를 취재의 권리라고 주장하는 순간 대통령과 기자들 사이의 관계는 악화되고 만다. 기자에게는 면책특권이 없다. 다만 만난을 무릅쓰고 진실을 밝혀서 보도하는 사명이 있을 뿐이다.

보도한 측에서 증거를 제시해야지

지난 9월 21일(현지시각) 윤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주최한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에 참석한 뒤 박진 외교부 장관,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등과 함께 자리를 떴다. 그 과정에서 윤 대통령과 일행 사이에 몇 마디 말이 오갔고 이를 풀(pool) 기자로 근접취재를 하던 MBC기자가 촬영해 방송사에 보냈다. 비속어 부분은 대통령실 기자들이 내용을 확인해 공유했다는 게 MBC측의 해명이다.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


MBC는 영상에 이런 자막을 달았다. 그런 말을 한 바 없다는 대통령실의 주장에 대해 MBC는 “140개 언론사가 다 그렇게 보도를 했는데 그게 잘못됐단 말이냐”고 맞받았다. 그러면서 ‘악의적’이라고 할 수 있는 증거를 내놓으라고 을러댔다. 음성 전문가가 내용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그 확인서를 제시해야 할 것 아니냐고 따지기도 했다.


이건 순서가 뒤바뀐 요구다. 그 내용을 대통령실 기자들이 확인했다고 MBC가 밝힌 만큼 그 근거부터 내놔야 한다. “영상이 있는데 무슨 말이냐”고 하는데 그 것으로는 확인이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일반인들은 더 못 알아듣는다. 그런데 당일 기자들은 그 내용을 동영상을 보고 확인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 근거를 제시하는 게 우선이다. 그 책임이 맨 먼저 문제의 자막을 달아 보도한 MBC 측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혹 풀 기자가 그런 의견을 붙여서 영상을 기자실과 방송사로 보낸 것이라면 그 배경을 설명해야 한다. 당연히 증거가 있었을 것이다. 기자 자신의 귀로는 분명히 들었는데 녹음기기의 한계성으로 명확한 발음을 잡아내지 못했다면 취재 기자나 기자실의 기자들은 해당 부분을 포기했어야 했다. 확실한 정황증거라도 있었다면 그걸 내놓든가.


그 이전에 MBC는 취재원에 대한 기본적 예의와 도리를 저버렸다. 문제의 비속어 발언은 동영상에서 파악하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다. 당연히 대화 당사자들이나 전문가들의 확인을 구할 일이었다. 그런데 일방적으로 자막을 달아 영상을 내보냈다. 게다가 미 국무부에 기사 내용을 알려주며 입장표명을 요청하기까지 했다. “우리 대통령이 귀국 대통령을 비하하는 표현을 했는데 기분이 어떠냐”며 싸움을 붙인 것이다. 미국 측이 “한국과 우리의 관계는 끈끈하다”고 회신했지만 이를 보도하지는 않았다. ‘악의적’이 아닌가?

기자에겐 진실보도 사명이 있을 뿐

언론의 자유는 물론 소중한 가치다. 그러나 그건 무제한적인 게 아니다. 절대적인 자유란 있을 수 없다. ‘진실보도’야말로 ‘언론의 자유’에 버금가는 가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기자니까 자유롭게 마음대로 쓴다는 것은 자유의 오용이고 남용이다. 기자가 신이 아닌 이상 오보를 낼 수도 있다. 그러나 잘못을 깨달은 순간 즉시 사과하고 정정해야 한다. 그게 자유에 상응하는 의무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하지만 비단 ‘자유’뿐이랴. 모든 행위에는 책임이 따르고 행위자는 그걸 회피해서는 안 된다.


이미 ‘윤 대통령의 비속어’는 기정사실화하고 말았다. 더불어민주당은 이걸 빌미로 박 외교부 장관에 대한 해임 건의안까지 본회의에서 의결했다. 거대정당의 전형적인 갑질이다. “지금이 군사정권 시절이냐”고 따진 기자는 그 시절에 어떤 고초를 겪으며 취재활동을 벌였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화법 또한 ‘갑질 문화’의 소산임을 깨달아야 한다. “내가 누구인줄 알아? 내가 기자야”라며 으스대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을 생각하며 자중해야 옳다.


그리고 대통령실 말인데, 도어스테핑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처음엔 신선한 변화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만 계속되면 감흥은 사라지고, 서로 갖춰야 할 예의도 흐려지고 만다. 슬리퍼, 팔짱끼기, 언쟁 이런 게 일상화될 수도 있다. 대통령을 상대로 대놓고 말싸움을 거는 기자가 없으란 법도 없다.


대통령이 주요 현안에 대해 다 말해 버리면 국무총리 이하 내각 구성원들은 무색해 지고 만다. 그들에게도 역할이 있고 권한과 책임이 있음을 잊으면 곤란하다. 대통령의 각료들에 대한 배려도 리더십의 중요한 덕목이다. 날마다 기자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다보면 ‘진지한 고민’의 흔적이 지워져 버리기 쉽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즉흥적‧충동적 리더십이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줄 알아? 대통령과 맞짱뜨는 기자님이야!”


이런 소리를 듣게 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오랜 우여곡절 끝에 겨우 확립된 언론의 자유다. 이 소중한 자산을 언론 스스로 훼손하고 굴절시켜서야 되겠는가. 상호 존중만이 언론과 정부, 정부와 언론이 상생할 수 있는 길이다. 길게 썼지만 요지는 간단명료하다.


“애먼 소리로 남을 궁지에 몰아넣는 건 언론인·언론사로서의 바른 태도가 아니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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