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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위대한 알코올중독자’<14>] 면회객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2.06.17 14:01 수정 2022.06.17 14:25

<작가 주> 우리나라는 음주공화국이라 할 만큼 음주에 관대한 사회입니다. 반면, 술로 인한 폐해는 매우 심각합니다. 주취자의 강력범죄가 증가하고 알코올중독자가 양산됩니다. 평화로운 가정과 사회가 풍비박산나기도 합니다. 술 때문에 고통 받는 개인과 가정, 나아가 사회의 치유를 위해 국가의 음주·금주정책이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술은 야누스의 얼굴을 가졌습니다. 항상 경계해야 하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들려드립니다.


ⓒ

제14화 면회객


택시는 정신병원 정문으로 들어와 주차장에 서더니 운전석에서 한 사람을 토해놓았다. 이희수보다 더 깡말라서 가냘파 보이는 중년의 남자였다. 흰 와이셔츠에 감색 면바지를 잘 다려 입은 남자는 머리가 벗겨지고 하관이 길쭉한 말상에 은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남자가 본관 건물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희수는 창문 쪽으로 향하고 있던 회전의자를 돌려 책상 앞에 당겨 앉았다.


“김석규 환자 면회객입니다.”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빼꼼 얼굴을 들이밀었다. 정신병원 규칙에 따르면 신입환자의 경우 두 달이 경과되기 전에는 면회객이 의무과장을 먼저 면담해야 했다. 그건 환자에 대한 정보수집뿐만 아니라 환자 앞에서 불필요한 언행을 삼가도록 사전 고지하기 위한 절차였다. 면회객이 환자에게 동정심을 갖고 대함으로써 왜곡된 생각을 갖게 하거나, 해서는 안 될 말을 함으로써 환자를 자극하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이었다. 간호사가 면회객을 안으로 들여보내고 다시 문을 닫았다.


“저는 김석규의 친구 이철백입니다.”


이철백이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하더니 이희수의 양해도 구하지 않고 곧장 응접소파에 가서 앉았다. 덩치가 작고 마른 체형의 이철백은 목이 유난히 길어 언뜻 조랑말처럼 보였다.


“그 친구 결국 이리될 줄 알았습니다.”


이철백이 오른손으로 은테안경을 고쳐 쓰며 태연하게 말했다. 듣기에 따라선 지독한 악담일 수도 있었지만 이철백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술만 마셨다하면 취하도록 마셔댔고 취했다하면 사람이 아니었어요. 바로 개였죠, 개. 하긴 술 취하면 개라는 말도 있으니 그게 욕은 아니겠죠? 술의 본성이랄까, 술꾼의 본성이랄까. 클클.”


김석규를 향한 욕인지 술에 관한 일반론인지 모를 말을 늘어놓으며 이철백이 스스로 만족하는 듯 낄낄거렸다. 이희수는 환자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더 얻기 위하여 마치 이철백의 말에 관심을 갖는 것처럼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니 개라고 하니까 생각난 건데 차라리 군견으로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네요. 술 마시는 일을 군인이 전장에서 적 소탕하듯 하니 비유하자면 군인 같은 개, 아니면 개 같은 군인? 에이, 간단하게 군견이라 하죠. 하하, 군견. 내가 말했어도 근사하군요. 그죠? 사람이 군견이 됐다는 건 미쳤다는 증거고, 그러니까 여기에 들어 왔겠지요. 담배 피워도 되나요?”


이희수가 천천히 책상 위에 있는 재떨이를 가져와서 이철백과 마주보며 소파에 앉았다.


“이왕이면 담배도 한 가치 주시겠어요?”


이철백이 미안한 기색도 없이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가위질하듯 짤깍거렸다. 담배를 끼우는 손가락 두 개로 엿장수처럼 가위질하는 것은 흔히 애연가들이 남에게 담배를 얻을 때 취하는 동작이었다. 이희수는 가운 바깥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이철백에게 내밀었다.


“불도 좀.”


이희수는 어이가 없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라이터를 건넸다. 이철백이 담배에 불을 붙이고 아주 깊게 연기를 빨아 댕겼다.


“그런데 병명이 뭔가요? 알코올중독으로만 알고 있는데 여기 입원한 걸 보면 정신병도 있는 것 같고.”


“말씀 드리기가 곤란하군요. 환자의 개인정보이기도 하니까요.”


“아이, 괜찮아요. 그 친구처럼 저도 남들은 알코올중독이라고 알고 있으니까요.”


난감한 기색이 역연한 이희수를 보며 이철백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쾌활하게 말했다. 살짝 술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지만 이희수는 자신의 코를 믿을 수 없었다. 그 역시 간밤의 숙취로 은근히 술 냄새를 풍기는 중이었다.


“저와는 절친입니다. 문우이기도 하고요. 저는 시를, 석규는 소설을 쓰지요. 사실 여기 들어올 사람은 따지고 보면 석규가 아니라 저예요.”


이철백의 전언에 따르면 김석규는 직장인 마인드에 충실해 삼시세끼 밥을 먹듯 술도 규칙적으로 마셨고 술에 취했어도 동석자들을 끝까지 챙길 정도로 매너가 좋았다. 그래서 별명이 술 취한 영국신사였는데 옥에 티라면 규칙적인 음주에 항상 과음과 폭음이 보태진다는 것이었다. 이에 반해 이철백은 프리랜서라서, 택시회사 역시 근무일이 정해져 있지만 이철백에게 그건 단지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밤과 낮의 구분도 없이 술을 마셨는데 문제는 김석규처럼 강골이 아니라 체력이 많이 부실해서 폭음을 하지는 못했지만 과음하면 주사가 있어서 한때 친구들에게 수신거부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이철백이 잠시 끽연하는 틈을 타 이희수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철백이 보여주는 행동양태는 취중이 아니라면 조울증을 의심하게 하는 모습이었다. 대개 면회객이 의무과장실에 들어서면 정신병원이라는 낯선 환경에 대한 부담감이라든지 아니면 입원한 환자에 대한 걱정 때문에 먼저 입을 여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묻는 말에만 간략하게 대답하곤 했다. 하지만 이철백은 처음 보는 주치의에게 맡겨둔 것처럼 담배를 달라하고 환자에 대해 묻지도 않았는데 전혀 거리낌 없이 말하고 있었다.


“제가 정신병자라는 게 아니라 소설가보다는 시인이 정신병 앓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입니다. 최승자 시인이라고 있어요. 최 시인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현상을 뛰어넘는 세계를 추구하느라 노장사상, 점성술 등 신비주의 공부에 빠지면서 정신분열증을 앓게 되었다 하더군요. 허허, 참 신기해요. 석병이는 시인도 아니면서 정신병을 앓게 되다니.”


“알코올중독이란 게 정신장애의 일종입니다만 선생께서 생각하시는 정신분열증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럼 뭔데요?”


“뭐랄까, 알코올성 편집증의 일종이라고나 할까요?”


이희수가 자신을 앞에 두고 젠체하는 이철백이 눈꼴사나워서 중간에 한번 무질렀더니 계속 반문을 해왔다. 이희수는 앞에 앉은 귀찮은 면회객을 얼른 내보내고 구내식당으로 가서 숙취에 쓰라린 속을 풀어줄 국물이라도 한 대접 마셔야 했기에 이철백의 질문에 일일이 대답해 줄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다음 환자도 봐야하니까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 있으면 해보라고 했더니 이철백이 이번엔 치료에 도움 될지 모르니 김석규가 자신에게 헌정한 단편소설을 한번 보여주겠다면서 진료실을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조악하게 제본된 얇은 책자 하나를 가지고 왔는데 표지에 ‘간디’라는 제목이 고딕체로 커다랗게 찍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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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갑 소설가greato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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