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초점] 애플표 시대극 '파친코', 일본인들 역사 왜곡 주장 오히려 반갑다
입력 2022.04.04 14:03
수정 2022.04.04 08:53
애플TV+ '파친코' 1회 939만회 기록
일본 네티즌 "반일드라마" 주장도
애플TV+재팬, '파친코' 홍보 활동 없어
애플TV+ '파친코'가 국내외에서 호평을 얻고 있는 가운데 일본의 일부 네티즌들은 역사를 왜곡한 드라마라고 주장하며 흠집을 내고 있다.
'파친코'는 금지된 사랑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로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을 오가며 전쟁과 평화, 사랑과 이별, 승리와 심판에 대한 잊을 수 없는 연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1900년대 초 한국부터 1980년대 한미일까지 시대상을 디테일하게 재현한 '파친코'의 완성도 높은 프로덕션이 극의 몰입감을 끌어올리고 있다.
공개 전부터 '파친코'는 로튼 토마토에서 신선도 100%를 기록하는 등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영국 매체 BBC는 '파친코'에 별점 5점 만점을 줬으며 비평 사이트 IMDb에서는 10점 만점 중 8.4점을 매겼다.
롤링 스톤(Rolling Stone)은 '파친코'에 대해 "예술적이고 우아한 방식으로 주제를 다룬다. 원작 소설의 촘촘함과 영상물 특유의 장점이 완벽하게 결합했다"라고 호평했으며, 할리우드 리포터(The Hollywood Reporter)는 "강렬하게 마음을 뒤흔드는 시대를 초월한 이야기"라고 극찬했다. 유력 비평 사이트 인디와이어(Indiewire) 역시 "섬세하고 부드럽게 전개되지만 강렬함이 공존한다"라며 '파친코'의 높은 완성도를 치켜세웠다.
더 플레이리스트의 제프리 장(Jeffrey Zhang)은 "'파친코'는 오랫동안 역사의 변두리로 밀려난 재일 조선족의 삶을 부드러움과 끔찍할 정도로 구체적으로 살펴본다"라면서 "표면적으로 '파친코'는 영원한 외부인(자이니치) 경험의 다양한 불평등을 다루고 있다. 재일조선인에 대한 인종차별과 편견은 100년 내내 괴롭힘, 사회적 불안정, 폭력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파친코'는 구체적이고 잊힌 역사의 범위 내에서 보편적인 질문을 던진다"라고 평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파친코'가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다. '파친코'는 첫 장면부터 1910년, 일본은 제국을 확장하며 한국을 식민지로 삼았다'라는 자막으로 시작되며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에게 가한 탄압, 강제 징용, 관동대지진 학살 등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다룬다. 또한 1980년대에는 일본에서 살아가는 한국인들을 향한 현지의 차별 역시 자연스럽게 담아냈다.
이에 일본 극우 세력과 일부 네티즌들은 '파친코'가 그리는 재일 한국인의 수난사가 역사 왜곡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파친코'의 기사에 "날조 영화로 내버려 두면 안 될 것 같다. 일본 정부는 '이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성명을 냈으면 좋겠다", "날조를 사실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무엇이지?", "영화나 드라마가 사실이 되는 이상한 나라가 있다", "강제 연행을 한 적이 없다", 차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돌아가면 되지 않나. 아무도 말리지 않는데 왜 떠나지 않는 거지"라는 등의 댓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트위터에서도 일본인들이 "'파친코'는 당연히 한국에선 방송되기 전부터 굉장히 평가가 좋았지만, 25일 공개된 후로는 해외에서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고. 이런 식으로 또 '드라마가 증거'라면서 사실이 무시될 것 같다", "또 역사 왜곡인가. 국제법에 따라 양국이 비준해서 정한 병합이다. 천년 속국의 이조의 참상이나, 병합 시대의 근대화가 무시당하고 있다" 등의 의견을 주고받고 있다.
일본 현지 매체들도 '파친코'의 호평이나 작품성에 대한 기사를 적극적으로 보도하지 않고 있다. '오징어 게임', '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 등 한국 콘텐츠가 나올 때마다 호평과 관심을 보였던 것과는 다른 온도다.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탓인지 애플TV+는 일본 공식 계정에 '파친코'의 트레일러를 업로드하지 않았으며 애플TV 공식+에 게재된 '파친코' 트레일러와 1회는 현재 댓글 기능이 차단됐다.
지금까지 영화 '밀정', '암살', '봉오동 전투',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등 한국 제작진들이 일제 강점기 시절을 배경으로 시대극을 만들 때도 극우 세력의 비난이 일긴했지만 거세게 번지지 않았다.
그러나 애플이라는 제3자의 국가의 기업이 만들었다는 점과, 이 콘텐츠가 전 세계에 공개되며 자신들이 불편해하는 역사를 조명하는 것을 두고 예민하고 반응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일본의 한 연예 관계자는 "'파친코'가 한국의 제작진이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이방인의 나라가 이 드라마를 만들었기 때문에 중립적이라는 인상이 있다. 일본인들에게는 이런 점이 더욱 거부감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 같다"라고 전했다.
이와 별개로 '파친코'를 향한 관심은 커지고 있다. 지난달 28일 '파친코'는 미국 트위터의 조회 수 등을 기반으로 한 버라이어티 트랜딩 TV 순위에서 10만 9600건으로 4위에 올랐다. 이는 제94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ABC), 브리저튼(넷플릭스), 문나이트(디즈니+)에 이은 순서다. 공개 전 로튼토마토 신선도 100%였으며 공개 후에도 98%로 비평가들뿐 아니라 시청자들의 호평세례가 계속되고 있다.
내년부터 일본 고등학교 2학년 이상 학생이 사용할 교과서에서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강제 연행'과 '일본군 위안부'라는 표현이 정부 검정 과정에서 빠지게 됐다.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역사 교육을 통해 잊지 않겠다고 약속한 1993년 고노 담화는 잊힌 약속이 되어가고 있다. 해외에서도 동해가 일본해로, 독도가 다케시마로 표기되는 등의 실수는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전 세계적으로 파급력을 갖는 '파친코'가 또 하나의 작은 물결을 만들 수 있다. 시청자가 역사 배경을 직접 찾아보게 만들거나, 허위 주장·의문에 대해 확인하도록 하는 역할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민호의 팬이라는 한 일본의 시청자(22)는 "이민호가 나와서 봤는데, 시대적 배경에 대해 잘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보고 역사를 제대로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전했다.
한편 한국, 일본, 캐나다 로케이션을 통해 제작된 ‘파친코’는 1915년 부산 영도의 소박한 하숙집부터 1989년 북적이는 뉴욕과 호황기인 일본을 배경을 설득력 있게 담아내기 위해 철저한 고증을 원칙으로, 한국과 일본 기와의 차이까지 세세하게 조사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