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집무실' 제동에 신구 권력 정면 충돌 …정국 뇌관으로
입력 2022.03.22 00:00
수정 2022.03.21 23:37
"취임 전 집무실 용산 이전" 尹 공약
사실상 제동 건 文…신구 권력 충돌
尹·文 회동도 당분간 쉽지 않을 듯
장기화될 경우 임기 말 여론 부담으로…협의 테이블 가능성 거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문재인 대통령의 회동이 계속해서 미뤄지고 있는 가운데, 윤 당선인의 집중 추진 공약인 '집무실 용산 이전'과 관련 양 측이 정면으로 충돌하며 신경전이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신·구 권력의 갈등이 뚜렷하게 불거지며 향후 정국의 뇌관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21일 정치권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확대 관계장관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새 정부 출범까지 얼마 남지 않은 촉박한 시일 안에 국방부와 합참, 대통령 집무실 등을 모두 이전하겠다는 계획은 무리"라는 뜻을 전했다.
5월 10일 시작되는 임기 전 용산 집무실 입주를 마무리 짓겠다는 윤 당선인의 공언이 있었던 만큼, 사실상의 반대 의사를 분명하게 피력한 것이다.
청와대 측은 "어느 때보다 안보 역량의 결집이 필요한 정부 교체기에 준비되지 않은 국방부와 합참의 갑작스런 이전과 청와대 위기관리 센터 이전이 안보 공백과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충분히 살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현 청와대를 중심으로 설정된 비행금지 구역 등 대공 방어체계를 조정해야 하는 문제도 검토돼야 한다"며 "시간에 쫓겨야 할 급박한 사정 있지 않다면 국방부·합참·청와대가 모두 준비된 가운데 이전 하는 게 순리이고, 정부는 당선인 측과 인수위에 이런 우려 전하면서 필요한 협의를 충분히 거쳐 최종 입장을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집무실 이전을 위해 필요한 예비비 집행 문제도 제동이 걸리며 실질적인 집무실 이전 절차에도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5월 9일까지는 예비비 집행 의결 권한이 문 대통령에 있기에, 전격적인 협조를 얻어내지 못하면 현실적으로 청와대를 이전할 방법이 사라지게 된다.
이 같은 갈등 국면은 관심을 모으고 있는 윤 당선인과 문 대통령의 첫 회동 시기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양 측은 지난 16일 한 차례 회동을 약속했다 인사권 문제가 불거지며 연기 사실을 알린 바 있다.
회동 성사를 위해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과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이 이날 만나 의견을 조율했으나, 집무실 이전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 두 인사가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겠냐는 데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당선인 측은 문 대통령의 반대 입장이 전해진 이후 강도 높게 반발했다. 이날 오전 박수현 수석이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윤 당선인의 의지가 지켜지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긍정적 평가를 내렸던 것에 비춰볼 때, 오후 들어 180도 달라진 입장에 결국 문 대통령의 개인적 의사가 강하게 반영된 것 아니냐는 시선이 많다.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입장문을 통해 "윤 당선인이 어제 대통령실 용산 이전에 대해 국민께 정중하고 소상하게 말씀드렸지만 문 대통령이 가장 대표적인 정권 인수인계 업무의 필수사항에 대해 협조를 거부하신다면 강제할 방법이 없다"며 "안타깝다"고 언급했다.
또 "윤 당선인은 통의동에서, 정부 출범 직후부터 바로 조치할 시급한 민생문제와 국정 과제를 처리해나갈 것이다. 5월 10일 0시부로 윤 당선인은 청와대 완전개방 약속을 반드시 이행할 것"이라며 문 대통령 측의 협조 여부와 관계 없이 청와대를 나오겠다는 공약을 접을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도 합동 성명서를 내고 "대통령 집무실의 국방부 청사로의 이전을 방해하는 것은 저급한 정치적 공세로 밖에 볼 수 없다"며 "현 정부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원활한 정권의 인수인계다. 현 청와대가 있지도 않은 안보공백을 언급하면서 새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을 방해하는 행위는 대선불복이라 볼 수밖에 없는 것으로,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는 새정부 출범의 발목잡기를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권에서는 당선인의 핵심 공약을 두고 충돌이 불거진 만큼 쉽사리 절충점을 찾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어느 한 쪽이 먼저 물러서는 선택을 내리기 쉽지 않은 탓이다.
하지만 정권 이양기에 신구권력의 갈등이 장기화될 경우 문 정부 임기 말 여론의 따가운 시선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어, 특정 시점에서 조율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앞서 쟁점이 됐던 문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와 집무실 이전 문제를 하나로 묶어 협상이 이뤄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차기 권력이 핵심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공약에 현 권력이 끝까지 제동을 거는 모습은 여론 지형상 득이 될 게 없다. 안보에 대한 우려 문제가 있다면 현 청와대와 윤 당선인 측이 함께 협의 테이블을 만들어 실무를 진행해 나가는 것도 방법"이라고 언급했다.
실제 김부겸 국무총리가 이날 오후 안철수 인수위원장을 만나 정부 내에 집무실 이전 관련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설치하는 방안을 전달한 사실이 전해지기도 했다.
안 위원장은 김 총리의 제안에 "문 대통령의 우려와 입장을 잘 알겠다. 인수위 내부 논의를 거쳐 윤 당선인과 상의할 것"이라며 "서로의 우려를 씻을 수 있는 해법을 찾기 바란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