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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크레딧(66)] 작사가 현지원, 포장된 가짜가 아닌 진짜가 되기 위한 여정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2.02.20 11:03
수정 2022.02.20 15:44

태연 '블루', 레드벨벳 '여름빛' 등 가사 비하인드 공개

"아티스트에 어울리는 스토리와 발음 디자인 중요"

플레이리스트에서 음악은 누군가에게 위로를, 누군가에게는 공감과 기쁨을 선사한다. 이 같은 노래 한 곡이 발표되기까지 보이지 않는 손들의 노력이 동반된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가수 외 프로듀서, A&R, 엔지니어, 앨범 아트 디자이너 등 작업실, 녹음실, 현장의 한 켠에서 노래가 나올 수 있도록 묵묵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봤다.<편집자 주>


"제가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잘 쓰이고 싶어요. 마치 콤마(,)처럼요. 사람과 사람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 음악과 음악 사이 어디든."


콜드플레이, 넬 등 밴드를 좋아했던 그는,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도전했고, 현재 6년째 진심이 담긴 노랫말을 쓰고 있다. 시들지 않기 위해 달려나가는 작사가 현지원의 이야기다.


현지원은 태연의 '블루', 동방신기 '써클'(Circle), 엑소 '코코밥(Ko Ko Bop)', '굿나잇'(Good night),카이 '컴 인'(Come in), 워너원 '열어줘','골드'(GOLD), NCT127 '굿 띵'(Good Thing) 레드벨벳, '여름빛' 등의 참여하며 작사가로서 이름을 알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려서부터 노래를 들으며 머릿속으로 자신만의 한 편의 뮤직비디오를 상상했던 일과 전시나 영화, 공연 등을 좋아했던 일이 가사를 쓰는데 좋은 영향을 줬다.


"어렸을 때부터 한 노래에 꽂히면 질릴 때까지 그 노래만 반복해서 듣는 습관이 있었어요. 그때마다 주인공이 살아 숨 쉬는 장면들을 생생하게 영화나 뮤직비디오를 그려 나갔죠. 이런 습관이 가사 작업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전시나 공연, 영화, 여행 등을 좋아하는 것도 좋은 영향이 됐고요. 새로운 경험들을 통해 시청각의 자극을 많이 쌓아두려고 하는 편입니다. 나중에는 가사의 중요한 소재가 되기도 하거든요."


현지원이 가사를 작업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곡과 아티스트에 어울리는 써 내려가는 일과 발음 디자인이다.


"영어 데모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영어 발음을 살려서 한글로 가사를 쓰면 노래를 부를 때도 편하고 좋거든요. 다만 내용이 탄탄하지 않은 채로 발음만 살리면 아무 의미 없는 가사가 되어버릴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해요. 그래서 무조건 내용을 먼저 잡고, 그다음에 발음을 살리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현지원은 지금까지 자신이 작업한 곡 중 NCT127- '굿 띵', '낮잠', 엑소의 '굿 나잇', 레드벨벳 '여름빛', 태연의 '블루' 다섯 곡을 꼽아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줬다.


'굿 띵'은 현지원의 작사가 데뷔곡으로, '음악과 춤을 즐긴다'라는 주제로 작업을 진행해 영화 '스텝 업'에서 영감을 얻었다.


"'스텝 업'을 몇 번이나 돌려보며 거리의 분위기, 사람들의 모습, 댄서의 움직임 등을 참고했습니다. 무겁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게. 신인인 아티스트에게 어울릴 수 있는 단어와 어투들로 써보려고 노력했어요. 코러스에 들어가는 네 글자('이 순간이', '날 보는 너'.. 등등)들이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문장들을 써 내려갔는지 모르겠네요."


NCT의 127의 '낮잠'은 감미로운 로즈 피아노(Rhodes Piano) 사운드가 인상적인 미디엄 템포의 R&B 곡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오후를 보내며 느끼는 설렘을 담았다. 달콤하고 다정한 세레나데다.


"이 곡은 햇살이 따스한 주말 오후 자주 가는 집 앞 카페를 배경으로 시작돼요. 통 유리창 앞에 자리한 푹신한 소파에 앉은 두 사람. 은은한 커피 향과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순간. 어깨에 기대 잠든 연인이 혹시 눈부실까 손 그늘을 만들어주는 모습을 상상하며 이 평범하고도 사랑스러운 시간을 표현해 보고자 했습니다. 이 곡을 통해 듣는 분들 모두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굿 나잇'은 엑소의 겨울 스페셜 앨범 수록곡으로, 부드러운 피아노 선율과 레트로 감성의 드럼이 돋보이는 팝 발라드 곡이다. 현지원은 스페인의 어느 밤거리를 달리는 버스 안의 풍경을 가사에 녹여냈다.


"거리에는 불빛이 하나도 없었고, 버스 안 사람들이 모두 잠들었죠. 창밖을 보니 버스가 달리는 길을 따라 작은 별빛들이 함께 따라오더라고요. 여기서 ‘저 멀리 하늘 위에 작은 별이 우리가 걸어가는 길을 비추고’라는 문장이 탄생했습니다. 처음 제목은 'Beautiful Night'이었는데, 수정 작업을 거치면서 최종적으로 'Good Night'이 되었어요. 소재가 잘 생각이 나지 않아서 어려웠는데 ‘감정을 꾸며내려고 하지 말고 지금의 감정에 집중해 보자 생각하며 작업했던 기억이 납니다."


현지원은 사랑하는 이와 여행을 떠나는 설렘과 아름다운 여름 풍경을 표현한 몽환적 분위기의 얼반 팝 곡 레드벨벳의 '여름빛'을 가장 재미있게 쓴 가사로 꼽았다.


"데모 가사 발음 살리는 게 너무 재미있었어요. 영어 가사가 다 little bit으로 끝나는데, 거길 초록빛, 레몬빛, 여름빛 등등 ‘빛’으로 끝나도록 작업했습니다. 여름에 바다로 떠나는 모습을 상상하니 해변의 모래가 생각났어요, 거기서 레몬빛을 떠올렸고요. 그다음에 자연스럽게 다른 색감들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지친 하루 속에 만난 너는 나의 Holiday, 네가 금요일이라면 필요 없어 Saturday’라는 구간은 데모 내용을 활용했는데요, 저도 참 좋아하는 구간입니다."


태연의 '블루'는 차분하고 절제된 분위기 속가 인상적이며 가사에는 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이별 후에 느끼는 감정을 이야기한다.


"'Blue'의 원 데모 명은 'Typically you' 였습니다. ‘넌 나의 Blue’라는 구간이 ‘So typically you’였죠.

-cally-you로 발음되는 구간이 계속 Blue로 들렸어요. 이 노래는 그때부터 Blue가 되었습니다. Blue는 한 사람이 존재하던 밤의 빛깔이며, 즉 그를 의미해요. 그가 떠나고 하얀 밤이 되어버린 거죠. 이 단어가 뭔가 너무 마음이 아파서 끝까지 바꾸고 싶었지만 끝내 그러지 못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는 멋지게 성공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끊임없이 노력 중이다. 음악은 결국 진심이 닿는 일이기 때문이다. 진심을 꾸며내는 건 한계가 있고, 그런 가짜는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여느 사람들처럼 저도 언젠가 성덕이 되는 날을 꿈꾸기도 해요. 허튼 수를 쓰지 않고 ‘진짜’로 열심히 하다 보면 닿을 거라 믿습니다. '좀 느려도 내 발로 걷겠어, 이 길이 분명 나의 길이니까, 돌아가도 언젠가 닿을 테니까'라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이 노래 가사처럼 말이죠."


현재 작사가란 일과 함께 IT 기업에 다니고 있는 그는, 자신을 '작사가'라는 틀에만 가두지 않으려 한다.


"음악 안에서 또 다른 일도 해보고 싶고, 완전히 새로운 분야의 일에도 도전해 보고 싶어요. 다만 무얼 하든 전 그럴듯하게 포장된 가짜가 아닌 ‘진짜’가 될 겁니다."


현지원은 현재 프리랜서 활동하며, 더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협업을 위해 오늘도 책상 앞에 앉는다. 언제나 진심을 담아 작업하는 일은 고된 일이지만 수고스럽지는 않다. 스스로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가사도 좋고, 어떤 다른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많은 경험을 하고 또 나누고 싶어요. 무언가를 상상하고 그려나가는 것은 저의 힘이고, 언제나 즐거운 작업이거든요. 전 제 인생의 엔딩 크레딧을 길게 남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 크레딧을 함께 채워주실 작업 의뢰는 언제든 환영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작사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당부의 말을 건넸다.


"작사가가 흥미롭고 재미있는 직업인 것은 분명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은 길일 수 있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받는 상처까지 감수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걷기로 하셨다면, 창작의 고통 이외의 다른 고통은 없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작업하는 순간은 늘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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