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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이슈] SNS 악플 테러…과몰입은 유도, 부작용은 외면하는 예능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2.02.19 09:46 수정 2022.02.19 09:47

"제작진, '악플=관심'이라는 생각부터 고쳐야"

당부·경고에 머무는 대처...실질적 대비책 없어

“모든 팀들이 스케줄과 상관없이 매일 연습하고 있습니다. 저희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니 조금만 더 너그럽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SBS 축구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이하 ‘골때녀’)에 출연 중인 국악인 송소희는 프로그램에 과몰입한 시청자들에게 조심스럽게 당부를 전했다. 매주 수요일, 방송이 끝난 이후에 시청자들은 여지없이 출연진의 SNS로 몰려가 온갖 악플을 쏟아낸다.


ⓒSBS

FC액셔니스타 골키퍼인 배우 장진희는 FC개벤져스와의 경기에서 팀이 패배한 이후 악플의 고충을 토로했다. 그는 방송에서 “너만 나가면 우승한다. 골키퍼만 실력 발전이 안 됐다. 왜 쟤는 팀에서 민폐가 되냐”는 악플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같은 팀의 멤버인 배우 김재화도 쏟아지는 악플에 프로그램 하차까지 고민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몸이 힘든 건 괜찮은데, 정신적으로 힘들다. 그래서 개인 인스타그램을 닫았다”라고 말한 바 있다.


기존 FC원더우먼의 골키퍼로 활약하던 방송인 박슬기는 FC구척장신과의 경기 당시 6실점을 내주면서 자책의 눈물을 흘렸다. 이 모습이 방송된 이후 많은 시청자들의 악플이 쏟아졌다. 박슬기는 “응원과 따끔한 질책 모두 내 부족함 때문이다. 정말 많이 긴장됐고 부족했다. 정신 바짝 차렸어야 했는데 면목 없다. 더 열심히 해서 좋은 경기로 보답하겠다”고 심경을 전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 출연진이 실력이 부족하거나 패배의 원흉이 되도록 그려지면서 악플에 시달려야 했다.


‘골때녀’는 아나운서, 배우, 가수, 모델 등이 팀을 나눠 대항전을 펼치는 과정에서 출연진이 축구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피 나는 연습을 거듭해 성장하는 모습을 담는다. 여기에 예측할 수 없는 스포츠 경기라는 리얼함까지 더해지면서 매회 10%에 가까운 시청률을 내놓고 있다. 앞서 FC구척장신과 FC원더우먼의 경기가 편집을 통해 조작, 송출된 일이 알려진 이후 시청자들이 불같이 화를 낸 것도 이 프로그램을 ‘리얼’로 받아들인 것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었다.


이처럼 축구를 향한 출연진들의 열정과 리얼하게 그려지는 프로그램의 서사는 시청자들을 진심으로 몰입하도록 한다. 그러나 동시에 많은 시청자들이 과몰입하면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출연진이 악플에 대한 고통을 호소함에도 제작진은 이를 방송의 소재로 사용할 뿐 악플러에 대한 마땅한 대응책은 내놓지 않는다.


비단 ‘골때녀’만의 문제는 아니다. 과거 단발성 에피소드로 채워지던 예능 프로그램이 관찰예능, 리얼버라이어티의 색을 띄면서부터 이미 출연자들은 악플에 노출되어 있었다. 한 편의 드라마처럼 예능에도 서사가 입혀지면서 시청자들의 과몰입을 유도한 것에 대한 부작용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최근 예능가에서 가장 뜨거운 포맷인 ‘데이팅 예능’의 경우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NQQ·SBS플러스 ‘나는 솔로’, MBN ‘돌싱글즈’, 카카오TV ‘체인지 데이즈’, 넷플릭스 ‘솔로지옥’, 티빙 ‘환승연애’ 등 수많은 데이팅 예능 프로그램들은 리얼함을 더하기 위해 일반인 시청자들을 내세우면서도 이렇다 할 보호 장치는 없다. 실제로 출연진에 대한 악플과 신상털기가 이어지고 있지만, 한 방송에선 ‘관심만큼 쏟아지는 악플’이라는 표현을 쓰는 등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가장 큰 문제는 예능을 예능으로 보지 않고 과몰입해 악플을 남기는 일부 시청자들이지만, 제작진 역시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한 예능 작가는 “프로그램을 기획, 편집하면서 최대한 출연진을 보호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과몰입으로 인해 오는 악플을 제작진이 일일이 막을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한다.


다만 한 기획사 관계자는 “대부분 심각한 악플을 유도할 만한 장면은 충분히 제작진이 사전에 편집을 통해 조율할 수 있는 문제임에도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화제가 되기 때문”이라며 “시청자들의 몰입을 유도하는 것까지는 좋지만 ‘악플=관심’이라는 생각부터 고쳐야 한다. 당부나 경고 등 말로만 출연진을 보호하는 것이 아닌, 실질적인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꼬집었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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