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에너지부 공약에 술렁이는 관가…산업부·환경부의 속내는
입력 2022.01.28 08:47
수정 2022.01.28 11:13
李 "에너지·기후 총괄 단일부처 만들자"
주무부처 "부처 쪼개기 쉬운 문제 아냐"
산업·환경장관, 공식석상 반대의견 피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기후에너지부'를 신설하겠다고 공약하면서 관가가 술렁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 파트와 환경부 '기후' 파트를 떼어 '2050 탄소중립' 정책을 총괄하는 부처를 신설하겠다는 내용인데 이 방안이 실현될 경우 관련 기능을 가진 부처 입장에선 대규모 조직 대수술이 불가피하다.
기후에너지부 신설 논의 '뜨거운감자'
이 후보 측이 기후에너지부 신설을 주장하는 핵심은 기후위기 시대에 에너지 전환 정책을 추진할 컨트롤타워(단일부처)가 마련돼야 한다는 논리다. 기후정책에 걸맞게 에너지 전환을 관리해야 하는데 현재 에너지 정책을 산업부가 맡고 있으니 환경부가 규제 기관으로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후에너지부가 신설된다면 에너지 전환이 가속화되고 친환경에너지로 통용되는 재생에너지업계에 각종 혜택 등 유리한 정책을 펼 가능성이 높다.
기후에너지부 신설은 이번 단계에서 처음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19대 대선 후보들도 여·야 할 것 없이 기후 정책과 에너지 정책을 함께 관장하는 가칭 기후·에너지부 신설 필요성을 피력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에너지 독립 부처(기후에너지부) 신설을 검토하겠다면서 공약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탄핵정국 이후 정부 조직개편 최소화 방침에 최종 무산됐다.
오는 5월 들어서는 새 정권은 탄핵 후 급하게 새 대통령을 앉힌 5년 전과 달리 정부 조직을 손 볼 시간이 충분히 있다. 이재명 후보 당선 시 10년 만에 정부조직 개편 가능성이 커진 만큼 유관부처 내부에서는 대책 논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환경부의 한 관료는 "기후에너지부 신설에 대대적 조직개편이 불가피한 만큼 동향을 주시하며 시나리오를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간단한 문제 아냐"…관가 내부엔 우려 목소리↑
하지만 기후에너지부 신설은 실무부처 입장에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에너지와 기후는 이미 수십년간 거미줄 형태처럼 얽히고설킨 정책 분야라 따로 떼어내려면 큰 파장과 변화는 물론 심지어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공약을 바라보는 산업부와 환경부 속내가 복잡한 이유다.
산업부 내부에서는 회의적인 입장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에너지 부문은 ▲산업 진흥 ▲통상 ▲에너지 등 부처가 운영하는 3대 핵심 분야 중 하나다. 기후에너지부 신설은 조직과 권한의 대폭적인 축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에너지를 쓰지 않는 산업은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산업과 에너지는 불가분 관계인 만큼 에너지가 기후에너지부로 떨어져 나갈 경우 산업 정책 자체가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크다.
산업부 한 고위 관료는 "탄소 감축을 해야 한다면 발전 부분이야 한전 등 발전공기업이 공적인 영역에서 컨트롤이 가능하지만, 철강·시멘트·정유화학 등 산업 부분은 공적인 영역이 직접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라며 "전반적인 산업체 컨트롤이 없이 어떻게 탄소 감축을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회의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이어 "결국은 산업체와 기업들이 기술개발을 통해 생산과정에서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하는 것인데 부처가 쪼개지면 산업 쪽 탄소중립을 정부가 담보하기가 어려운 구조가 된다"고 덧붙였다.
환경부 내부에서는 찬반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분위기다. 반대 쪽에서는 기후에너지부가 신설돼도 결국 기후 위기보다는 에너지 정책 위주로 운영될 수밖에 없고, 기후 부문이 아직까지 대규모 조직은 아니지만 이를 떼어낼 경우 조직 축소를 피할 수 없다는 우려를 나타낸다. 찬성 쪽에서는 이왕 합치는 김에 기존 대기환경, 물관리 등까지 기후에너지부에 합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종합적으로 볼 때 관가에서는 기후와 에너지 동력이 소관 부처에서 분산되면 동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의견이 대체로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기재부 한 관계자는 "독일, 영국 등 선진국을 보면 산업-에너지-탄소중립 등을 통합한 공영부처를 만드는 형태로 나아가고 있다"며 "이 나라들도 처음엔 우리와 같이 기후에너지부 신설을 시도했다가 메가 부처가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우회한 것이라 이를 참고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계부처 장관들 역시공식석상에서 기후에너지부 신설에 부정적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정애 환경부 장관은 기후에너지부 신설에 대해 "지금은 모든 것이 연결된 상황이라 세분화해서는 효과를 내기 어려운 시대"라며 우회적으로 제동을 걸었다. 문승욱 산업부 장관도 "에너지, 탄소중립 이슈는 산업과 같이 연결돼 추진돼야 한다"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