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2022 검찰개혁 ①] 졸속 검경수사권조정이 남긴 것들
입력 2022.01.01 05:29
수정 2022.01.01 20:21
검경 수사역량 약화 우려 현실화…대장동·LH 수사 '헛발질'만
경찰 전문성 부족에 업무만 과중…수사 공전 및 지연, 고소장 임의 반려 등 민생치안 악화
법조계 "검찰과 경찰, 핑퐁게임만 반복…범죄자 천국, 피해자 지옥 세상으로 변질"
"현 시스템 제도적 점검과 개선, 안착 선행돼야…대국민 홍보 및 피로감 줄이는 속도조절 필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지난 3월 검찰총장직을 사퇴하면서 "검수완박은 부패완판"이라는 말을 남겼다. 이는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면 부패가 완전히 판친다'의 줄임말로, 문재인 정권의 무리한 검찰개혁은 적잖은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는 우려를 담은 것으로 풀이됐다.
발언이 나온지 10여개월이 지난 현재, 법조계 안팎에서는 윤 후보의 우려가 현실이 됐다는 비판이 중론이다. 독점적이고 정치 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검찰에 대한 통제·견제 장치의 필요성은 누구도 이견을 달 수 없지만, 충분한 준비 없이 졸속으로 밀어붙인 개혁은 결국 국민들에게 피해만 주며 국민적 피로감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차기 정권은 성급한 개혁보다는 제도 안정에 힘써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주문이다.
앞서 정부는 '범죄 대응 역량 저하를 초래한다'는 각계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검경 수사권 조정과 검찰 대규모 직제개편을 단행해 검찰의 직접 수사 기능을 대폭 축소시켰다. 보완수사·재수사·이의제기 등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새로 도입된 절차들은 가뜩이나 복잡한 형사사법 절차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 일선 현장에서 혼선을 초래했고, 혐의 별로 담당 수사기관을 잘게 쪼갠 것은 수사기관이 서로 눈치만 살피며 민감한 사건을 회피할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에 따른 부작용이 단적으로 드러난 예가 대장동 개발 로비·특혜 의혹 사건과 LH 부동산 투기 사건이다. 특히 대장동 사건의 경우 의혹이 불거진 와중에도 수사기관들은 관할 문제를 이유로 차일피일 수사를 미뤘고, 이는 핵심 관계자들이 증거를 인멸할 시간을 벌어줬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경찰은 화천대유의 수상한 자금 흐름 첩보를 입수하고도 5개월째 내사만 진행한 사실이 드러나 '사건 뭉개기' 의혹을 키웠다.
성급한 검찰개혁은 경찰의 역량 저하까지 야기했다. 독립된 수사권과 수사종결권을 처음 갖게 된 경찰은 권한과 위상이 커졌지만, 일선 경찰들은 전문성 부족에 가중된 수사 업무 부담을 호소했다. 이때문에 수사 진행이 장기간 공전하며 지연됐고 고소·고발장 가운데 일부를 임의로 반려하는 경우도 계속됐다.
전 광주지검 순천지청장 출신 김종민 변호사는 "수사권 조정 이후 민생치안이 더욱 강화되고 안전한 사회가 되기는커녕 전부 엉망이 됐다"며 "형사사건 처리 절차가 검찰 출신 변호사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 복잡해졌고, 검찰과 경찰이 핑퐁게임만 반복하는 사이 범죄자 천국, 피해자 지옥으로 세상이 바뀌어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차기 정권의 과제로 차분한 검찰개혁 제도 보완과 부작용 해소를 꼽았다. 대한변호사협회 전 대변인 최진녕 변호사는 "검경 수사권 조정은 국민의 인권과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인데 실체적인 측면에서 어떤 성취와 성과가 있었는지 굉장히 의문"이라며 "다른 것을 새로 만드는 것도 좋지만, 현재 만들어진 시스템이 정밀하고 빈틈이 없는 지에 대한 제도적 점검과 개선, 안착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변호사는 특히 "이번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변경된 제도가 너무 복잡해 경찰의 불기소 불송치 결정이 나오면 어디에 이의신청을 해야 되고, 어떤 경우에 재정신청을 해야 하는지 변호사들도 잘 모른다"며 "경찰 불송치 결정에 따른 구제 절차를 국민들이 알기 쉽도록 만드는 일이 더욱 시급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법조계 전문가는 "수사권 조정이 야기한 여러 변화들에 대해 세세한 준비가 없었음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며 "이제는 불편을 겪는 국민들을 위해 세부적인 부분들을 보완하는데 주력해야 할 단계"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수사권조정, 공수처 설치 등 검찰개혁을 둘러싼 각종 사회적 갈등으로 국민의 피로도가 많이 높아진 상황"이라며 "국민적 화합 차원에서도 당분간 검찰개혁은 속도조절을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수사·기소의 일체 혹은 분리는 각각의 장단점이 있어 한쪽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준비도 검토도 없이 밀어붙이는 검찰개혁은 수사를 방해해 정권의 비리를 숨기려는 의도처럼 보이고, 실제로 그 의도대로라면 부정부패가 더욱 판치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비대해진 경찰 권력을 견제할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종민 변호사는 "정보와 검사의 지휘를 받지 않는 독립된 경찰수사의 결합은 무서운 권력이 됐다"며 "정보와 수사의 분리, 경찰수사에 대한 검사의 수사지휘와 사법통제는 훨씬 강화되고 실효적인 체계로 부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오병두 홍익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는 "경찰의 권한은 늘어났으나 이에 대한 통제장치는 충분하지 않다. 특히 불송치 결정에 대해 재수사를 요청할 수는 있으나 소극적인 수사 미진을 견제하기는 쉽지 않다"며 "경찰 내사로 종결되는 사건 역시 검찰에 의한 통제에서 벗어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