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인터뷰] 결코 흘러넘치지 않는, 유아인의 ‘지옥’
입력 2021.12.28 08:36
수정 2021.12.28 08:37
사이비 종교 새진리회 의장 정진수 역
"기존과는 또 다른 광기...업그레이드된 표현법 찾았다"
배우 유아인은 강렬하고 격동적이지만, 결코 흘러넘치지 않는다. 아슬아슬 경계를 유지하면서 극강의 몰입감을 전달한다. 유아인의 매혹적인 감정선은 ‘지옥’에서도 여전했다. 그렇게 그는 지난달 19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지옥’에서 사이비 종교 새진리회 의장 정진수를 연기하면서 적당한 무게감과 긴장감으로 대중을 설득해냈다.
유아인은 선인인지 악인인지 짐작하기 힘든 미스터리한 연기를 펼친다. ‘최소한의 등장으로 최대의 긴장감을 만들어내야 하는 인물’ 정진수를 표현하기 위해 그는 텅 빈 눈빛을 보여주기에 적당한 눈꺼풀 높이까지 연구할 정도였다. 그에게 ‘연기의 신’이라는 찬사도 부족할 만큼, 그는 작품을 깊게 파고들었다.
“기본적으론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종교단체 수장이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있는 상태에서부터 시작했어요. 최소한의 등장으로 최대치를 만들어내야 했기 때문에 매 씬마다 주어진 미션들을 잘 수행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속내를 시원하게 드러내지 않고, 두터운 가면을 쓴 것 같은 상태에서 가면 밖으로 삐져나오는 가벼운 장면들, 농담들이 정진수를 미스터리한 인물로 만들어준 것 같습니다. 최대한 내면에 어떤 흐름들을 가지고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상상하면서 접근했죠. 그 결과 누구도 알지 못하는 절대적인 외로움과 고독이라는 키워드를 대입시켰습니다. 초자연적 현상을 통해 자신의 죽음이 예측되어지고 그 순간으로 다가가는 진수의 느낌이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하지만 뒤틀린 세상을 통해 발현이 되는 거죠.”
유아인은 그간 여러 작품을 통해 강렬한 에너지를 보여줘 왔다. 예컨대 영화 ‘사도’의 ‘사도세자’ 역, 영화 ‘베테랑’의 ‘조태오’ 역 등 통제하지 못하는 감정들을 폭발적으로 드러내는 역할들이었다. ‘지옥’의 정진수 역시 강렬하지만, 분명 기존 캐릭터들과는 다른 지점이 있다. 유아인은 정진수만의 강렬함을 표현하기 위해 연기에 ‘변주’를 줬다.
“감독님이 터지는 연기를 원했는데, 어떻게 하면 다르게 연기할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마구잡이로 터지는 것보다는 삐져나오는 감정을 스스로 수습해버리는 식으로 표현했죠. 진수는 그것들이 삐져나오는 것을 계속해서 통제하는 거예요. 스스로를 통제하는 모습이 가미가 된다면 또 다른 광기가 표현되어질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사실 제가 많이 듣는 비평 중에 하나가 ‘과장되어 있다’는 거잖아요. 그런 인물이 요구될 때는 충실한 편이었는데, 이번엔 그런 부분까지도 관객들이 전사를 느끼지 못하게끔 다른 방식으로 새롭게, 업그레이드 되게 표현하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천사가 나타나 특정인에게 지옥행 날짜를 고지하고, 예고된 시간에 지옥의 사자가 나타나는 내용이나 초자연 현상에 대한 새진리회의 해석을 믿지 않는 이들에 대한 혐오 등 ‘지옥’의 세계관은 얼핏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유아인은 ‘지옥’을 지극히 현실적인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나약한 존재들은 강하게 서기 위해 믿음, 신념, 지식, 정보 같은 것들이 필요하고, 그걸로 지탱하며 살아가죠. 그것들이 위험한 건 변화하지 않고 한 인간에게 고착되어 그 인간을 프레임 안에서 썩게 만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나빠 보이지만, 또 어디에서인가는 그들 역시 나약한 사람들일 수 있잖아요. 그들이 군중이 되었을 때 훨씬 강한 폭력으로 소수를 향하게 되고, 그런걸 보는 것 자체가 상당히 고통스럽더라고요. 비현실적인 작품이라고 하지만 극중에서 일어나는 상황들은 현실세계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해요. 동시대를 살아가는 분들이 ‘지옥’을 보고 믿음, 신념, 인간성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주신다고 한다면 이 작품의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옥’의 마지막회에선 박정자(김신록 분)가 부활하는 모습이 담기면서 시즌2 제작 가능성을 암시하기도 했다. 유아인 역시 “박정자처럼 진수도 반드시 부활하길 바란다”며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질 시즌2에 대한 기대감을 전했다. 동시에 그는 정진수 의장처럼 20년 뒤에 죽게 된다는 고지를 받는다면 “더 과감하게 살고 싶다”고 말한다.
“20년이든 10년이든 1년이든, 조금 더 시원시원하고 과감하게 살고 싶어요. 더 많은 시도를 하고 싶고, 실패하고 싶달까요. 요즘은 너무 몸을 사리게 되는 것 같아요. 저에게도 이런 시절이 오네요(웃음). 열정적으로 이어져야 할 이 시기에 그런 제 모습이 스스로 달갑지가 않아요. 과거에 제가 의미 있게 살 수 있었던 건 ‘죽어도 상관없다’는 마음가짐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죽을 거니까 막 살겠다’는 게 아니고, 나를 더 과감하게 던지고 실험하면서 나를 성장시키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유아인은 극중 정진수의 대사인 ‘새로운 세상으로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를 비틀어 시청자들에게 반문했다.
“우리가 살고 있던 세상을 바라본 여러분,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