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부실펀드 CEO' 제재 유보…체면 구긴 금감원
입력 2021.10.28 11:14
수정 2021.10.28 11:45
법원 판단 이후로 판단 미뤄
징계 주장한 금감원만 '난처'

금융위원회가 펀드 상품 부실 판매로 논란을 빚은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들에 대한 제재를 법원의 판단 이후로 미뤘다. 금융사에게 분명 잘못이 있기는 하지만, CEO에 대한 제재 수위의 적절성을 두고 지적이 계속되자 결국 한 발 물러선 모양새다.
결과적으로 CEO를 상대로 중징계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반복해 온 금융감독원의 주장에 상급 기관인 금융위가 제동을 걸면서 금감원만 체면을 구기게 된 모습이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날 금융위는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등 최근 투자자 손실을 낳은 각종 펀드의 판매 금융사에 대한 제재 조치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금융위는 우선 자본시장법과 관련돼 금감원이 제기한 위반 사항은 현재의 논의 일정에 따라 차질 없이 심의해 신속히 결론을 도출하기로 했다. 금감원이 자본시장법을 이유로 금융위에 징계를 요청한 곳은 KB증권과 신한금융투자, 대신증권 등 세 곳이다.
다만, 금융사 지배구조법상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위반 사항에 대해서는 사법부의 판단에 대한 법리 검토와 관련 안건들의 비교심의 등을 거쳐 종합적으로 판단하겠다는 방침이다.
금감원은 지배구조법상 내부통제기준 위반을 이유로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과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부회장 등에게 중징계인 문책경고를 의결한 상태다. 또 윤경은 전 KB증권 사장과 김형진 전 신한금융투자 사장, 나재철 전 대신증권 사장에게는 직무정지, 박정림 KB증권 사장에게는 문책경고를 내렸다.
종합해 보면 금융위는 펀드 사태를 둘러싼 금감원의 제재 요청 가운데 금융사 자체에 대한 기관 제재는 조만간 처리하는 대신, 이와 관련된 CEO 대상 징계는 추후 진행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손태승 회장 승소 '변곡점'

금융위가 장고 끝에 이같이 입장을 정리하게 된 데에는 손 회장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손실 사태를 두고 금감원부터 받은 중징계에 불복해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손 회장이 승리했기 때문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는 지난 8월 손 회장이 금감원장을 상대로 낸 문책경고 등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금감원은 우리은행이 DLF를 불완전판매하고 경영진의 내부통제도 부실했다며 손 회장에게 문책 경고 처분을 내렸고, 손 회장은 지난해 징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끝내 손 회장이 승소 판정을 받아낸 것이다.
애초에 금융권에서는 펀드 손실을 갖고 CEO에 직접 철퇴를 휘두르는 금감원의 행보에 무리수라는 불만이 끊이지 않아 왔다. 금감원이 근거로 댄 지배구조법 조항이 금융사로 하여금 반드시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토록 의무화하고는 있지만, 금융사고가 터졌을 때 이를 근거로 경영진에 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내용은 명시돼 있지 않아서다.
금융위가 CEO에 대한 제재를 미룬 것도 이런 비판을 염두엔 둔 행보로 풀이된다. 법적 불확실성이 확인된 만큼 사법부의 최종 판단을 지켜본 뒤 징계를 결정해야 부담을 덜 수 있어서다.
이래저래 난처한 상황에 놓인 곳은 금감원이다. 법적 논란을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확신을 갖고 징계안을 밀어 붙였지만, 최종 결정권을 가진 금융위가 난색을 표하면서 동력을 잃게 된 형국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이 자신감 있게 제재를 의결할 때만 해도 펀드 사태에 대한 CEO 징계가 불가피해 보였지만, 금융위가 법원의 판단으로 공을 돌리면서 금감원의 입장만 더 난처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