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히든캐스트(61)] “내가 여기 있다”…이종영이 증명한 존재의 이유
입력 2021.10.17 11:01
수정 2021.10.16 18:02
뮤지컬 '엑스칼리버' 색슨족·울프 커버 역
11월 7일까지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뮤지컬에서 주연배우의 상황을 드러내거나 사건을 고조시키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코러스 혹은 움직임, 동작으로 극에 생동감을 더하면서 뮤지컬을 돋보이게 하는 앙상블 배우들을 주목합니다. 국내에선 ‘주연이 되지 못한 배우’라는 인식이 있는데, 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앙상블은 주로 ‘무대의 꽃’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 등으로 소개된다. 백번 맞는 말이다. 그러나 앙상블 배우들이 개인의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지난해 tvN에서 방영됐던 ‘더블캐스팅’은 그런 면에 있어서 매우 반가운 프로그램이었다. 일부 아쉬움도 있었지만, 주목 받지 못했던 앙상블들에게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뮤지컬 배우 이종영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그는 당시 “난 나를 보여줄 거야” “우리가 여기 있다”고 말하면서 뮤지컬 ‘위대한 쇼맨’ 넘버 ‘This Is Me’를 불러 큰 울림을 줬다. 역할이 아닌 앙상블로 무대에 오르면서 개인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이종영은 늘 무대에 있었다. 그리고 그는 무대 위에서 존재해야 할 이유를 스스로 증명해내고 있다.
-지금은 뮤지컬 ‘엑스칼리버’에 출연 중이죠. 이 작품과는 어떻게 인연이 됐나요?
2018년에 ‘엑스칼리버’ 초연 오디션을 보고 처음으로 EMK 작품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얼마나 좋고 짜릿했는지 소리를 지르며 기뻐했어요. 그 이후 재연에 출연 제안을 받고 좋아했던 작품이라 다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극중 색슨족, 울프 커버를 맡고 계신다고요. 캐릭터 설명 부탁드립니다.
저는 극중 악역인 울프스탄의 색슨족 부하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울프스탄의 왼팔(?) 같은 역할입니다. 어떤 장면에선 선량한 시민으로도 나옵니다. 또한 앞서 말씀 드린 울프스탄 역의 커버를 맡고 있습니다. 커버(cover)는 해당 역할의 배우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무대에 오르지 못할 경우 대신 무대에 오르는 배우를 뜻합니다.
-캐릭터를 어떻게 분석했고, 어떤 노력들을 했는지도 궁금합니다.
색슨족 역할은 영화 ‘패스파인더’, 드라마 ‘바이킹스’를 참고했습니다. 보통 야만족이라고 한다면 언어도 잘 구사하지 못하고 그저 동물적인 감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표현과 행동 환경이 거칠 뿐 오히려 서로의 유대관계가 깊고 사회성도 좋아 체계적인 전략을 가지고 엄청난 힘으로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극적으로는 야만적이게 보이는 것도 필요하기에 그로테스크한 움직임을 표현하고 싶어 여러 괴물 귀신 좀비의 움직임을 참고하기도 했습니다.
울프스탄의 경우는 매우 어려운 캐릭터입니다. 종잡을 수 없는 성격과 악랄함, 그리고 그 안의 차분함도 있으며 머리도 좋고 무엇보다 본인이 하는 일에 명분을 만들어야 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인물을 특정하여 베이스를 만들어 내기보다는 제가 아는 한 이 캐릭터에 맞는 정서와 행동의 다양한 인물들 소스를 조합하여 대입시키고 있습니다. 이는 영화, 극, 책의 인물도 있고 제 주변 사람들도 있고 그 중 울프와 맞을 만한 특징, 억양, 행동들을 구상해 나가는 중입니다. 언제 어떻게 울프스탄으로 무대에 서게 될지 모르기에 공연 시작 전 무대에서 10분 정도 혼자 연습 시간을 갖거나 퇴근 후엔 매일 집에서 자기 전에 머릿속으로 울프스탄으로서의 공연을 머리에 미리 그려보며 취침하고 있습니다.
-무대에 오르면서(혹은 연습 중)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나요?
연습실에서 커버 리허설을 했을 때가 기억나요. 그때 블로킹이나 동선 등을 모든 걸 상상으로만 하고 실제로 진행한 게 처음이라 많이 긴장했었습니다. 근데 스태프, 배우분들 그리고 울프스탄 역을 맡고 계신 이상준 선배님께서도 너무 많이 도와주셨어요. 역시 뮤지컬은 절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됐죠. 저희 팀이 너무 든든했습니다. 잘 해냈고 굉장히 뿌듯했습니다.
-배우들과의 합이 매우 좋은 것 같네요.
저는 운이 정말 좋은 사람 같아요. 매 작품마다 좋은 배우분들을 만나거든요. 이번 시즌 ‘엑스칼리버’에 함께하는 배우분들은 저랑 몇 년 동안 알고 지낸 분들도 계시고, 처음 만나는 분들도 계시는데 저희들의 팀워크가 최고고 다들 성격이 너무 좋으시고 실력도 뛰어나신 분들만 계셔서 서로에게 배울 점들이 많아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이종영 배우가 생각하는 ‘엑스칼리버’는 어떤 작품인가요.
‘엑스칼리버’의 내용 그대로 선택 받은 자만 뽑을 수 있는 검 같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태프, 배우분들 모두 각자의 ‘엑스칼리버’를 쥐고 아무나 할 수 없는 작품이라 생각하며 자부심을 가지고 공연에 임하고 있습니다. 공연의 모든 파트가 최정상급의 컨디션이고 특히 화려한 무대가 매력인 것 같습니다.
-‘엑스칼리버’의 다음 시즌에 또 함께 하게 된다면, 맡고 싶은 캐릭터가 있나요?
단연 울프스탄입니다. 감사하게도 이렇게 커버 롤을 하게 돼서 공부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영광이지만 제가 그 만한 배우로 성장하여 준비가 된다면 저만의 울프스탄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간 ‘광주’ ‘킹키부츠’ ‘위윌락유’ ‘올슉업’ 등 많은 작품에 출연하셨는데요. 가장 의미있었던 작품(혹은 캐릭터)이 있나요
모든 작품이 정말 소중하지만 하나를 꼽자면 저는 ‘광주’입니다. 장병구 역할과 광주시민 역할을 같이 맡았는데 제가 처음으로 해본 역사적 사건을 주제로 한 대한민국의 뮤지컬 작품이고 배우로써 많은 생각을 하게 되며 저에게 전환점을 만들어준 작품이었습니다.
특히 두 번째 런쓰루를 할 때였는데 마지막에 총을 맞아 죽기 전에 하는 대사가 있는데 고선웅 연출님께선 그냥 순수하게 별일 없을 사람처럼 대사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디렉팅을 해주셨어요. 그런데 감정이 너무 복받쳐서 이미 눈물 콧물 범벅이 되고 여기서 이미 죽을 걸 안다는 것에 너무 억울하고 화나고 두려워서 오열하며 대사를 하다가 실수를 한 기억이 납니다. 또 그걸 다 받아주며 같이 숨 쉬어주는 배우분들과 뜨거운 눈물이 오가던 그 연습 날이 잊히지가 않습니다. 이런 게 뮤지컬의 매력인 것 같아요.
-벌써 데뷔 5년차입니다. 데뷔 당시는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을까요?
데뷔는 꿈만 꾸고 이룬 것 하나 없던 대학교 뮤지컬 전공의 학생이 처음으로 자기가 매일같이 원하던 직업을 갖게 된 순간이었고, 제 인생에서 뮤지컬 배우라는 수식어를 만들어준 감사한 순간이었습니다. 학생 때 내가 과연 배우를 할 수 있을까 불안해하면서 연습하고 울고 웃고 하던 그 시간들을 보상받은 기분이었고, 내가 잘못된 길을 가지 않았구나 하며 확신이 생긴 때였습니다. 첫 커튼콜 때 받은 박수가 잊히질 않아요.
-데뷔 전 ‘딤프’(DIMF) 대학생 뮤지컬부문 개인 연기상 수상 이력이 있더라고요. 뮤지컬 배우를 꿈꾸게 된 것도 이맘때 즈음인가요?
뮤지컬 배우는 중학교 때부터 가수가 되고 싶었던 저에게 어머님께서 이왕 노래를 할 거면 뮤지컬 배우는 어떻겠냐고 말씀을 해주셨어요. 고민하다가 2008년 TV를 통해 ‘노트르담 드 파리’ 한국 공연 실황을 보게 되었는데 윤형렬 선배님의 콰지모도를 보고 ‘저게 뮤지컬이라고? 나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훗날 뮤지컬 페스티벌 때 윤형렬 선배님과 듀엣을 하게 된 영광스러운 순간도 있었고요!
‘딤프’에서 수상한 것에 대해서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때는 이미 대학에서 뮤지컬 공부를 하고 있을 때였는데 학교 공연으로 뮤지컬 ‘셜록 홈스 -앤더슨가의 비밀’에서 셜록 홈스 역을 맡았었습니다. 열심히 준비하기도 했지만 운이 많이 좋았던 것 같고 경쟁 학교가 다 너무 유명한 학교들이고 뛰어난 분들이 많아서 수상은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어요. 마치 거짓말 같았죠. 그냥 “너 열심히 했다” 하고 주신 것 같아요. 덕분에 브로드웨이도 다녀올 수 있어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는 순간이었고 데뷔를 할 수 있었던 사건이기도 합니다.
-데뷔 전과 후, 마음가짐이나 달라진 부분들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데뷔 후 더 큰 세상에 나와 보니 이젠 눈앞에서 너무 뛰어난 배우분들과 작업을 하니까 ‘내가 과연 그렇게 특별한 사람이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더 노력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공부를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배우라는 직업은 정해진 정답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매력을 찾아야 하는 직업이라 생각합니다. 매 순간 내가 가진 재능은 무엇이고 나의 단점은 무엇인가 항상 객관적인 시선으로 자기성찰을 하려고 합니다.
-지난해 방영된 ‘더블캐스팅’에 출연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했던 말이 기억에 남았어요. “조연으로 데뷔했지만, 앙상블로 콜이 온다”고 말씀하시면서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겠다”고. 당시 심경이 어땠을지 여쭤보고 싶어요.
“난 나를 보여 줄 거야!”라는 말은 모든 앙상블 배우분들을 대변해서 얘기한 것이었습니다. 개인의 매력을 보여주기 힘든 앙상블 배우들은 어필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여기 있다’고 얘기 한 것 같습니다. 듀엣 미션 곡으로 했던 ‘This is me’의 가사 의미도 당시 저희의 심경과 맞아떨어졌기도 했고 무대에선 두 명 밖에 없었지만 저희와 수 백 명의 앙상블 배우분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임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 상황들, 환경에서부터 오는 슬럼프가 있었을 것도 같은데요.
예전에는 제가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이 맞는 길인지, 잘하고 있는 건지 확신이 서지 않는 순간들을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조급한 마음에 얼른 성공하고 싶고 더 높은 자리에 서고 싶은데 저의 상태는 항상 제 자리인 것 같아서요. 배우라는 직업이 제가 어느 정도에 위치에 있는지 직급처럼 딱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발전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잘 모르겠으니까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더라고요. 요즘은 그냥 신경 쓰지 않고 현재를 즐기면서 살고 있습니다.
-당시 ‘위대한 쇼맨’ 무대를 했을 때, 심사위원이 ‘저런 노래도 되네’ ‘잘하네’라는 칭찬을 했던 게 기억나는데요. 이종영 배우에게 가장 와 닿았던 심사위원의 칭찬이나 충고, 조언들이 있었나요?
방송에 나오진 않았지만 1차 예선 때 뮤지컬 벤허의 ‘나 메셀라’를 불렀는데 심사위원이셨던 선배님들께서 “왜 이제 나타난 거냐고 하시면서 정말 잘했다”고 극찬을 해주셨던 게 기억납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느낀 점이나, 기억에 남는 점들이 있는지도 궁금해요.
같이 참여했던 앙상블 배우분들을 보면서 다들 정말 뛰어난 실력을 가진 보석 같은 배우들이라고 생각했고 그분들의 무대를 보며 저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앞으로 이런 프로그램이 만들어진다면 또 출연할 마음이 있으실까요?
당장은 ‘아니요’라고 말하고 싶네요. 하하. 첫 방송이라 공연과 같이 병행하며 쉬는 날이 없이 진행을 하다 보니 정말 힘든 상태로 하게 되어 너무 아쉬웠습니다. 아주 나중에 마음의 여유가 생겼을 때 다시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뮤지컬 배우로서 가지고 있는, 절대 변하지 않을 이종영 씨의 신념이 있다면?
‘좋은 인간과 깊이 있는 배우가 되자’. 제가 존경하는 홍유선 안무감독님께서 선물해 주신 책에 손수 써주신 글인데 마음에 쏙 들어 항상 품고 있는 신념입니다. 또 여러 작품의 앙상블로 활동하다 보면 저만의 색깔을 잃어버리는 순간이 많은데 저의 개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목표도 듣고 싶습니다.
일단 배역으로 올라가는 게 목표입니다. 차근차근 경력을 쌓고 더 깊이 있는 배우가 되면 언젠가는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회가 왔을 때 꼭 잡을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스스로를 어필해볼까요?
아직 보여드리지 못한 모습이 너무 많습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좋은 기회가 온다면 꼭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절 기억해 주시고 훗날 좋은 무대에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