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의 여자
입력 2021.05.27 07:36
수정 2021.05.25 08:38
함정에 빠진 사람들
산업 경쟁력 막은 ‘지난 4년의 오만’
불안과 절망의 쳇바퀴, 어떻게 이겨낼까
인간의 적응력은 무섭다. 아베 코보가 1962년에 쓴 소설 ‘모래의 여자’는 교사 니키 준페이가 주인공이다. 주인공은 1955년 8월 18일 집을 떠나 희귀 곤충을 채집하러 해변의 사구(砂丘)로 향한다. 막차를 놓친 그는 인근 마을에 홀로 사는 여인의 집에서 민박을 하게 된다.
그 민박집은 모래구덩이 속에 있다. 이때부터 상황은 공포·스릴러 영화 ‘미저리’처럼 변한다. 이튿날 외부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줄사다리가 없어져 모래구덩이 속에 꼼짝없이 갇히기 때문이다.
탈출시도는 번번이 실패했고 결국 6개월 후인 1956년 3월에 이르러 민박집 여주인이 임신을 계기로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자유의 몸이 된 그는 말한다.
“도주 수단은, 그 다음날 생각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그는 탈출하지 않았고, 7년 후인 62년 10월 5일 법원은 일본 민법 제30조에 의거 니키 준페이를 실종자로 확인한다는 판결을 내린다. 그렇게 자유의 몸이 되고자 온갖 시도를 다 해 왔던 그는, 막상 자유의 몸이 되자 스스로 그곳에 갇히기를 선택해 귀가를 포기한 것이다.
어째서 자유가 극심하게 제한되는 환경을 스스로 선택하는가. 인간의 뛰어난 환경적응력 때문일 것이다. 모래먼지 속에서 물이 없어서 샤워조차 할 수 없는 환경에 격렬하게 저항하고 분노하지만, 고작 6개월 만에 적응하는 것이 인간이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그의 소설에서 이미 갈파했지만, 가장 열망했던 것이 달성되는 순간, 엄청난 성공의 순간을 취소하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일어나는 복잡한 심리구조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정치권의 불통과 오만이 지배하던 지난 4년간 기업 환경은 악화될 대로 악화됐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주 52시간제, 탈원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화관법과 화평법, 기업규제 3법이 기업을 짓눌렸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결정타를 먹였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작년 말에 통과된 기업규제 3법에 대하여 ‘이들 법안이 기업의 경영활동을 옥죈다는 비판도 있다’는 지적에, “기업들은 항상 그런 소리를 한다”고 했다. 그는 기업들이 어떻게든 적응해 갈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가 이겼고, 기업들이 졌다. 과연 기업들은 악전고투 속에서도 적응해 간다. 대신 사회를 지탱하는 근본은 서서히 무너져갈 수밖에 없다.
여기다 작은 성공이라도 있으면 현실에 안주 가능성은 높아진다. 소설 속에서는 주인공이 민박집 여주인을 임신시켜 아이를 얻을 수 있게 되는 한편(소설에서는 자궁 외 임신으로 진단되어 병원으로 실려 간다는 것까지만 언급된다), 우연히 모래구덩이에서 생명수를 공급할 유수(流水)장치를 개발한다.
그런 사유로 도저히 인간으로서 살 수 없을 환경에서도 그는 서서히 적응해 갔다. 정치인들은 남의 돈을 빼앗아 청년들,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에게 거두어 뿌리겠다고 선언한다. 심지어는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으로 전 국민에게 뿌릴 태세다.
그러나 국가는 가정이 아니다. 가정이라면 들어올 돈이 얼마이고 그 돈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가 명확하게 나온다.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병원비, 등록금, 보험금 등에게 우선적으로 투입된다. 국가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가혹하게 세금을 뜯어내 자기 돈처럼 뿌리지만, 분배는 무작정이 될 수밖에 없고, 부정수급자가 생긴다. 그래도 돈을 받은 사람은 유수장치를 개발한 주인공처럼 기쁘다.
이 수상한 시절에 운 좋게 집을 마련한 사람들, 또는 집을 가질 수도 있다는 희망고문을 당하는 사람들은 아이를 얻게 될 기대에 부푼 니키 준페이처럼, 어떤 이에게는 가혹한 현실이, 본인 스스로에게는 대견하고 만족스러운 느낌이 들 법도 하다. 공짜 돈을 얻는 작은 행복, 우연히 집을 샀거나 사게 될 가능성에 횡재한 느낌이 행운처럼 생활에 스며들어 굳이 미래를 바꾸고 싶지 않은 상태가 된다.
변화를 원해 선택했건만, 또 다시 변화를 시도해 본들 별 볼 일 없을 것이라는 것도 이유가 된다. 주인공은 일상에 변화를 주기 위해 곤충 채집을 위해 집을 떠났다. 그리고는 모래 함정에 빠졌고 여자에게 그 모래구덩이 집에서 함께 탈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자는 “하지만 밖으로 나가봐야 딱히 할 일도 없고 …”라고 말한다. “걸어다니면 되잖아!”라고 말하자, “하지만 볼 일도 없는데 나다녀 봐야 피곤하기만 할 뿐이니까요 ….”라고 답한다. 일상이라는 함정에서의 탈출을 위해 나섰지만 또 다른 모래구덩이라는 함정에 빠진 주인공 니키 준페이 역시 새로운 함정에서 더 이상의 탈출을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길을 택한다.
소설의 진짜 주인공은 니키 준페이가 아니다. 모래 속에 갇혀 살면서도 그것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끔직한 현실에 안주한 여자, 더 이상 변화를 바라지 않는 여자, 바로 ‘모래의 여자’다. 모래의 여자는 바로 우리들일지도 모른다.
글/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