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초점] 재연 배우·성인 배우이라서…그들은 ‘여전히’ 서럽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1.03.29 05:00
수정 2021.03.29 06:40

민도윤, 김영희 감독 데뷔작 '기생춘' 주연

김하영 "이미지 바꾸기 위해 코수술까지"

영화나 드라마, 연극에서 전문적으로 연기를 하는 모든 사람을 우리는 배우라고 부른다. 하지만 모두가 배우라는 평가나 시선을 받지 않는다. 드라마나 예능에 출연한 배우는 '재연 배우'라는 꼬리표가 붙어 정극에 출연하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재연 프로그램들이 줄어들면서 이들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졌다. 2004년 MBC '타임머신',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SBS '솔로몬의 선택', KBS2 '사랑과 전쟁' 등이 방송할 때는 재연 배우들이 얼굴을 내밀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나, 지금은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채널A '다시 뜨거워지고 싶은 애로부부', KBS Joy '연애의 참견3' 등 대폭 줄었다.


'서프라이즈 걔', '서프라이즈 김태희'라고 불리는 김하영은 고착화된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코수술을 감행하기도 했다. 또 김하영은 MBN '모두의 강연 가치 들어요'에 출연해 "여주인공급으로 제가 출연하게 됐다. 하지만 중견 배우가 뒤에서 '재연 배우를 캐스팅해서 좋은 시간에 편성 안 된거다'라고 험담하는 것을 들었다"고 당황스러웠던 에피소드를 털어놨다.


정형돈은 MBC '돈플릭스' 영화 프로젝트 '끈'을 통해 시나리오 작가에 도전했는데 주, 조연을 재연 배우로 캐스팅 해 화제를 모았다. 정형돈은 '서프라이즈' 연기자들에게 재연 배우라는 타이틀을 지우고 본인들의 연기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는 의도였다.


정형돈과 함께 작업한 박재현은 "이 영화에 출연해서 뭐가 달라졌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달라지는 건 없다. '서프라이즈'를 주력으로 하고 있을 뿐 우리도 그냥 배우다"라고 호소했다.


'연애의 참견'은 과거 재연 프로그램과 달리 트렌디함과 사연 속 공감으로 배우들의 연기력을 어필하고 있지만 관심은 일시적이라고 말한다. 출연 경험이 있는 한 배우는 "좋은 기회가 있어 출연을 해봤다. 얼굴을 비출 때마다 팔로워들이 늘어나긴 하지만 꾸준히 이어지지는 않았다"면서 "배우 선배가 재연 프로그램에 고정이나 자주 출연하면 배우의 무게감이 가벼워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편견이 느껴져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전했다.


연기에 대한 애정을 갖고 시작했지만 편견에 갇혀있는 배우는 이들 뿐만이 아니다. 2015년 '용주골'로 데뷔한 민도윤은 100편이 넘는 영화를 찍으며 '성인 영화계 이병헌'으로 불리지만, 아직 대중에겐 낯선 이름이다. 최근 개그우먼 김영희가 감독으로 나선 성인 영화 '기생춘'의 주연으로 나서며 이제 조금씩 성인 배우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김영희가 성인 영화 감독을 고집한 이유 중 하나가 민도윤이다. 재능있고 연기력이 출중한 민도윤이란 배우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성인 영화 장르를 수면 위로 올리고 싶어서였다. 또 김영희는 민도윤이 성인 영화 뿐 아니라 일반 드라마, 영화 등에도 출연했으면 한다고 바람을 밝혔다.


성인 배우 백세리, 이채담도 채널A '아이콘택트'에 출연해 성인 배우로서의 고충을 전했다. 백세리는 활동을 중단한 이유에 대해 "악플로 인한 자괴감이 들었다. 나는 열심히 살며 연기를 한 것 뿐인데 사람들은 돌을 던진다"고 털어놨다.


이같은 사연이 알려질 때마다 인식 개선과 배우들에 대한 차별을 거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금방 또 잊히고 마는 탓에 여전히 제대로 된 연기력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백세리의 말처럼 다른 배우와 똑같이 연기를 할 뿐이지만, 하면 할 수록 입지가 좁아지고 편견은 더해지고 있는 환경이 아쉬움을 자아낸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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