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수사 vs 징계' 윤석열과 정권의 시간과의 싸움
입력 2020.12.03 11:39
수정 2020.12.03 12:45
복귀 직후 文과 청와대 정조준한 윤석열
징계처분까지 주어진 시간에 수사로 승부
이미 文정권과 돌아올 수 없는 강 건넜다
추미애, 盧사진으로 각오 다지며 지지층 결집
극적으로 직무에 복귀한 윤석열 검찰총장은 기다렸다는 듯 월성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에 칼을 빼들었다. 같은 날 문재인 대통령은 법무부 차관 후속인선을 하루 만에 종결, 예정된 징계위 기일에 윤 총장을 세울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윤 총장을 징계하라는 시그널과 다름없다. 권력을 수사하는 검찰총장과 징계로 이를 막으려는 권력의 정면충돌이다. 양쪽 모두 출구전략은 닫았다.
월성1호기 조기폐쇄는 문재인 정부의 아킬레스 건이다. 감사원은 이미 폐쇄결정의 근거가 된 경제성 평가에 조작이 있었다고 못 박았다. 폐쇄하기로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과정을 짜맞췄다는 얘기다. 이를 숨기기 위해 산업통상자원부가 감사원 감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도 받는다. 최재형 감사원장은 "범죄의 개연성이 있어 수사자료를 검찰에 보냈고, 이의를 제기한 감사위원은 없었다"고 단언했다.
핵심은 누가 이를 결정하고 지시했느냐다. 감사원 감사 전날, 산자부 공무원은 관련 자료 444건을 불법폐기했다. 정보를 사전 인지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기가막힌 타이밍이다. 그런데 해당 공무원은 "신내림"을 운운했다. 자신의 입으로는 '윗선'을 밝히지 않겠다는 뜻이다. 직무에 복귀한 윤 총장은 2일 밤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승인했다.
모든 심증은 "월성1호기를 언제 폐쇄하느냐"고 물었다는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를 향하고 있다. 하지만 물증이 없다. 물증을 찾아내야 국민적 여론을 방패로 살아남을 수 있다. 윤 총장 측은 앞서 직무배제 집행정지 심판에서 "정부에 반하는 수사를 했다는 이유로 위법한 직무집행정지 처분을 했다"고 공개적으로 주장, 이미 문재인 정부와는 돌아설 수 없는 강을 건넜다.
하지만 윤 총장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생사여탈을 결정할 징계위 개최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 징계위를 3일 연기하겠다고 밝혔지만 핑계에 불과하다. 고기영 법무부 차관 사의로 개최가 불가능해진 징계위를 물리적으로 가장 빨리 열 수 있는 시점으로 재설정했을 뿐이다. 문 대통령은 하루 만에 이용구 변호사를 후임으로 낙점, 징계위를 재개할 길을 열었다.
민주당의 압박도 점점 강도를 더해하고 있다. 전날 밤 윤 총장이 산자부 공무원에 대한 구속영장을 승인하자 곧바로 "검찰권 남용"이라고 맞받아쳤다. 법원의 윤 총장 직무복귀 결정은 "면죄부가 아니"라고도 한다. 그간 아웃복싱과 잽으로 윤 총장이 스스로 나가떨어지길 기다렸던 민주당은 이제 가드도 내린채 인파이팅 중이다. 그만큼 이번 수사는 정권에 위험하다는 방증이다.
물론 단 한 번의 징계위로 윤 총장을 해임하기는 어렵다. 법무부 감찰위원회는 윤 총장에 대한 감찰과 징계가 "부정적하다"고 의결했다. 사전고지와 소명기회 부여라는 절차적 정의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법원도 "방어권 보장과 충분한 소명기회를 줘야 한다"는 취지의 결정문을 내놨다. 속전속결로 끝내려다 쓴 맛을 본 만큼, 이번에는 형식적으로라도 2~3차례의 징계위를 개최할 공산이 크다. 윤 총장 입장에서는 시간을 번 셈이다.
그렇다고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윤석열을 끌어내리겠다'는 당초 목표가 수정된 것 역시 아니다. 3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검찰개혁에 흔들림없이 전진할 것"이라고 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영정사진까지 동원해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 이낙연 대표는 "검찰개혁에 좌절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미 정치권 관계자들은 '검찰개혁'이라 쓰고 '윤석열 찍어내기'로 읽은 지 오래다.
주사위는 던져졌지만 결과는 예측불허다. 윤 총장을 퇴진시키고, 공수처를 일정대로 출범시켜 위기를 넘기면 문재인 정권은 다소 안정을 찾을 수 있다. 87년 이후 역대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레임덕 없는 대통령으로 남을 가능성도 크다. 거대여당에 대한 청와대의 장악력은 여전히 살아 있고, 집권 4년차 미래권력으로 힘의 무게추가 옮겨가는 현상도 아직은 없다.
반대로 청와대의 혐의가 포착될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레임덕이 시작되고, 차기를 생각해야 하는 여당인사의 난파선 탈출러시를 배제할 수 없다. 최악의 경우 역대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이 수사선상에 거론되는 일도 피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정권의 명운을 건 전쟁이 본격화됐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