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 제재심 '역풍모드'…거세지는 금융당국 책임론

이충재 기자 (cj5128@empal.com)
입력 2020.11.12 06:00
수정 2020.11.11 15:01

판매 증권사 CEO에 대한 중징계 결정에 "그럼 윤석헌도 책임져야"

판매사 제재결정 반발에 줄줄이 행정소송 나설 듯…금감원도 부담


금융감독원이 라임자산운용의 펀드를 판매한 증권사와 최고경영자(CEO)에 대해 중징계를 결정한 것을 두고 금융사에만 책임을 전가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금감원이 휘두른 징계수위의 무게만큼 금융당국 책임론도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안팎에선 "금감원이 자신의 관리‧감독 부실 책임도 중징계 수준이란 걸 자인한 꼴"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 10일 제재심의위원회에서 신한금융투자‧KB증권‧대신증권 등 3곳의 증권사와 전‧현직 CEO에게 중징계를 결정해 윤석헌 금감원장의 '결재'만을 남겨두고 있다. 윤 원장은 사모펀드 사태에 대한 금융당국 책임론과 맞물린 금융사 제재 수위 결정을 두고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제재심은 금감원장의 자문기구로 금감원장의 승인 이후 효력이 발생한다. 중징계에 해당하는 '문책경고'까지의 임원 징계는 금감원장 전결로 제재가 확정된다. 금감원장이 제재안을 수용하거나 감면·감경·가중할 수 있다. 즉, 윤 원장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라임펀드를 판매한 증권사 전‧현직 CEO들의 명운도 갈리게 되는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제재심에서 결정한 증권사 전‧현직 CEO에 대한 중징계 수위가 그대로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그동안 윤 원장은 "제재심 결론을 존중한다"며 심의 결과에 손을 대지 않고 결재했다. 올해 초 논란이 됐던 DLF 사태와 관련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에 대한 중징계(문책경고)도 제재심 원안 그대로 승인했다.


당장 중징계를 받은 임원은 연임은 물론 3∼5년간 금융사 재취업이 제한돼 사실상 금융권을 떠나야하는 만큼 제재에 불복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금감원의 징계논리대로라면 라임펀드를 비롯해 환매가 중단된 사모펀드를 판매한 금융사 수십곳의 CEO들이 금융권을 떠나야 한다. 연말 예고된 은행권 제재심 이후 금융사들이 대거 소송전에 나서는 등 금융권 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금감원의 과도한 책임전가…이러면 임기 제때 마칠 CEO 있겠나"


아울러 금융권에선 이번 결정이 잘못된 선례로 남을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금감원이 증권사의 '내부통제기준 마련 미비'란 모호한 근거로 CEO까지 중징계하는 것은 과도한 책임 전가라는 지적이다. 향후 금융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CEO가 옷을 벗어야하는 금융권 혼란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사 한 관계자는 "펀드 판매사는 물론 내부 통제 미비를 근거로 CEO에 대한 중징계를 내리는 건 금융사에 대한 과도한 책임전가"라며 "은행장을 비롯한 CEO들이 임기 내에 남아나질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런 논리대로라면 금감원 내부통제를 제대로 하지 못한 윤석헌 원장도 중징계감"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금감원은 사모펀드 사태에 따른 관리‧감독 부실 책임론을 받고 있는 당사자다. 라임사태의 경우, 전·현직 임직원이 연루된 정황이 포착되며 총체적 내부통제 부실을 드러냈다. 금감원 출신 전 청와대 행정관이 라임사태와 관련해 뇌물을 받고 문건을 빼돌린 혐의로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윤모 전 국장은 옵티머스 대표에게 금융권 인사를 소개해 주는 대가 등으로 수천만원대 금품을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와 압수수색까지 받았다.


사태의 책임을 져야할 금감원이 과도한 징계로 책임론을 피하려한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동안 금감원에 우호적이었던 시민단체도 금감원의 부실 감독에 대한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금융정의연대 등은 연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실 감독으로 피해를 키운 금감원의 책임있는 자세"를 촉구했다.


이와 관련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금감원 제재심의 내용을 보면 금융사 CEO들에겐 책임을 전가하고, 금융사에는 투자자들에 대한 보상을 유도하며 자신의 책임을 피하려는 면피성 징계 방향"이라며 "이번 제재의 근거대로 '내부통제 미비'를 금융사 CEO가 책임져야 한다면 앞으로 임기를 제때 마칠 CEO가 있겠나"라고 되물었다.


윤 의원은 이어 "금감원이 빠져나갈 구멍을 찾을 게 아니라 관리‧감독 부실에 대한 책임을 지고, 뼈를 깎는 자기 개혁을 하며 적정한 수준의 제재를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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