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영의 스펙트럼] 사모펀드 도태 위기…재발방지 대책 시급

이나영 기자 (ny4030@dailian.co.kr)
입력 2020.10.20 07:00
수정 2020.10.19 21:04

추정 손해액만으로 배상하라는 금감원에 은행·증권사 반발

신뢰 무너지고 외면…“소비자보호 등 감독 제도개선 필요”

최근 금융감독원은 손해액이 확정되지 않은 사모펀드에 대해 추정 손해액을 기준으로 배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운용사나 판매사 검사 등을 통해 사실관계가 확인되고 자산실사 완료 등을 통해 객관적으로 손해 추정이 가능한 경우 이 같은 방침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추정 손해액을 기준으로 조정 결정을 통해 우선 배상하고 추가 회수액은 사후 정산하는 방식이 적용된다.


그러나 은행·증권사 등 펀드 판매사들은 강하게 반발한다. 만약 확정된 손해액이 추정 손해액보다 적게 나올 경우 이미 지급한 배상액을 투자자들에게 돌려받아야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우려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판매사가 사전에 합의한 경우 추정 손해액 기준으로 분쟁 조정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했지만 사실상 판매사들이 나서 배상하라는 압박이나 다름없다"며 "확정이 되지 않은 손실에 대해 배상을 하라고 하는 건 말이 안된다"고 말했다.


그동안 금감원은 손해 확정 전 분쟁조정은 어렵다는 원칙을 고수해왔다. 금감원이 사모펀드 관련 부실감독의 비판을 수습하기 위해 내놓은 대책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은행이나 증권사나 사모펀드 판매를 더욱 꺼려할 가능성도 높다. 가뜩이나 현재 사모펀드 신뢰 등의 문제로 은행이나 증권사들이 신규수탁을 중단하면서 관련 시장이 위축된 상태다. 지난 7월 금융위원회가 판매사에 분기마다 사모펀드 운용 현황을 의무적으로 점검하라는 내용으로 행정지도를 하달한 점도 영향을 줬다.


실제로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개인투자자 대상 사모펀드 판매 잔액(설정액 기준)은 19조3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6조3983억원) 대비 27% 줄었다.


문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사모펀드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모펀드 사태가 금융권을 넘어 정치권으로까지 확산돼 로비 의혹이 쏟아지면서 사모펀드 피해자를 막기 위한 대책 마련이 지연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라임과 옵티머스는 사건 내용은 다르지만 두 사태 모두 정·관계 인사들 간 관계가 있어 보인다. 야당은 금융당국의 책임론과 함께 여권인사 연류 및 권력비호 의혹에 대해 공세를 펼치고 있다.


지난 13일 열린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서 윤재옥 국민의힘 의원은 "라임과 옵티머스 사태의 공통점은 청와대 인사가 관여돼서 금감원의 감독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 의원은 옵티머스 펀드에 관여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실 행정관 이모 변호사가 최근 금감원 감철에 투입됐는지 따졌다. 또 이 감찰이 금감원에 압박으로 작용했지는도 물었다.


이에 대해 윤석헌 금감원장은 "이 전 행정관은 금감원 감찰에 나오지 않은 걸로 확인했고 청와대가 부담을 줬다는 건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답한 바 있다.


같은 당 강민국 의원도 "옵티머스 사태의 본질이 사전에 사기라는 걸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음에도 금감원이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채 동조 내지 방조를 했다는 게 드러나고 있다"고 꼬집었다.


금융위가 투자자 보호를 위해 설치하겠다던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판정위원회는 당초 8월 달에 출범했어야 했으나 두 달 넘도록 아직 출범하지 못했다. 판정위는 금융회사가 고난도 금융상품 해당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 판단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사모펀드가 민간 모험자본을 공급하는 등 혁신성장에 기여하는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감독 제도 개선이 시급해 보인다. 또 다른 비극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진짜 대책이 마련되길 기대해본다.

이나영 기자 (ny4030@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