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제치고 부동산'…금융당국까지 동원된 총력전

이충재 기자 (cj5128@empal.com)
입력 2020.08.14 06:00
수정 2020.08.13 16:27

부동산정책 실패 따른 민심이반에 '대출규제 위반' 점검‧감독 강화

펀드사태 , 코로나19 금융지원 등 산적한 과제 뒤로하고 '지원사격'


금융당국이 산적한 금융과제를 뒤로하고 부동산 투기와의 전면전에 뛰어들자 금융권 불만이 커지고 있다. 부동산정책 실패로 악화된 민심 수습을 위한 여론전에 금융당국도 동원된 것이다. 여기에 정부가 부동산 감독기관 신설을 공식화하면서 '밥그릇'을 사수하기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당장 금융정책 우선순위도 부동산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감시할 상설기구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금융당국은 고강도 부동산 대출규제 위반 점검 나섰다. 금융감독원은 6·17부동산대책으로 전면 금지된 주택 매매·임대사업자의 주택담보대출이 규제를 우회하는 사례 등을 집중 점검할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개인사업자대출·법인대출·사모펀드 등을 활용해 대출규제를 우회하는 편법대출에 대한 감독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정부가 부동산 대출 규제를 대폭 강화한 7·10대책을 내놨는데도 7월 가계대출은 역대 최대폭으로 늘어났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7월중 금융시장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가계 대출은 전월보다 7조6000억원이 증가했다. 7월 증가액만 비교하면 2004년 이후 최대 증가 폭이다. 세부 내용을 보면, 전세대출은 물론 주택거래대금 등에 쓰이는 기타대출도 늘었다. 부동산 정책 실패의 책임론에서 '금융'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표다.


이에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12일 금융협회장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주택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대출규제 위반 여부를 점검하는 등 시장 교란행위를 차단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협회장들에게도 "주택시장 안정 대책의 금융 부문 조치가 일선 창구 등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돼 의도한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힘써 달라"고 당부했다.


여기에 정부가 부동산 감독기구를 띄우겠다고 밝힌 것도 금융당국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실제 부동산 감독기관이 신설될 경우 금융당국은 대출 규제 등의 칼자루를 뺏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학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부동산 정책 기능까지 포함된 종합 컨트롤타워 설립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 경우 금융당국의 권한분산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부동산 정책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부처까지 동원되면서 금융당국도 만사 제치고 부동산 규제 정책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다. 집값 안정을 목표로 지난 5일부터 매주 열리고 있는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는 금융당국 수장인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물론 윤석헌 금융감독원장도 공식 멤버로 참여하고 있다.


부동산감원독에 '밥그릇' 뺏길라…대출규제 위반사례 '실적' 압박


그동안 정부는 투기세력에 의한 부동산시장 교란을 적폐로 규정하고 세금과 규제 정책을 쏟아냈다. 시장에선 '부동산 불패'라는 믿음과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을 집값 상승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지만, 정부는 '다주택자와 투기세력 탓'으로 돌리고 있다. 정부의 진단과 정책 방향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선 금융당국의 '실적'이 필요한 상황이다.


아직까지는 집값 상승이 투기세력 때문이라고 몰아세울 근거가 부족하다. 실제 국토교통부의 '부동산시장불법행위대응반 활동현황'에 따르면 올 2월부터 7월까지 대응반이 내사에 착수해 완료한 110건 가운데 단 2건만 기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증거 불충분이나 혐의가 없어 종결된 55건 중 33건은 지자체로 이첩돼 결과가 불분명했고, 시장 교란 행위로 판단해 정식 수사가 이뤄진 입건 건수도 18건에 그쳤다.


이에 윤석헌 금감원장은 부동산시장 불법행위 대응반과 긴밀히 협력해 대출규제 위반거래에 대한 단속활동을 확대하라고 지시했다. 윤 원장은 지난 11일 임원회의에서 "대출규제 위반사례가 적발되면 엄중 조치하라"며 "편법대출에 대해서도 대응을 강화하라"고 강조했다. 현재 국토부 주관으로 운영 중인 부동산시장 불법행위 대응반은 금융위·검찰·국세청·감정원 직원 등 15명 규모로 운영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당국은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해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부터 시행하는데, 지금은 온통 부동산뿐"이라며 "과제가 산적한 금융당국이 부동산 투기세력의 편법 대출 등을 사활을 걸고 찾아내야 하는 '실적압박'에 내몰리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사 한 관계자는 "금감원이 집값 잡는 기관이 아니지 않나"라며 "금융당국의 원래 설립목적을 다시 살펴봐야할 때"라고 지적했다.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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