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세법] 서민 볼모로 잡고…기승전 '부자증세' 프레임
입력 2020.07.22 14:20
수정 2020.07.22 15:17
고소득자 세율 인상으로 턴 빙 나라곳간 메우기
홍남기 부총리 “전체적 세수중립…부자증세 아니다” 선 그어
정부가 발표한 2020 세법개정안은 '부자들에게 더 걷고, 서민들에게 베푼다'라는 확실한 프레임을 보여주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부자'에게 증세하겠다는 내용밖에 찾아 볼 수 없다. 특히 소득세법은 노골적으로 고수익군을 노린 흔적이 역력하다.
올해 상반기 3차례 추가경정예산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쓰인 긴급재난지원금 등 텅 빈 나라곳간을 부자증세로 메우겠다는 포석이 깔려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전체적인 세법개정안이 기업 투자심리를 살리고 서민 안정을 꾀한다는 정부 취지와 달리, 법인세 인하 등 실질적인 혜택은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증세 아니라는 정부…과표구간 불균형은 묵묵부답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번 세법개정안이 부자증세에 집중돼 있는 것 아니냐는 기자들 질문에 “증세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소득세법 인상 등 세수 증대에 대한 불만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홍 부총리는 “거의 300조원에 이르는 국세 수입 규모에 비해 2021년 54억원 증가, 2021~2025년 676억원 증가에 불과하다”며 “세목별 개편 및 제도 변경으로 인해 세수가 늘어나는 항목도 있고 또 줄어드는 항목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개정안에는 여러 가지 투자세액 감면도 있고 서민 감면도 있다. 전체적으로는 증가하는 항목과 줄어드는 항목이 서로 균형이 된다”며 “조세 중립적으로 하려 노력했다. 세수 감면과 별도로 늘어나는 항목만 보고 증세라고 하면 적절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홍 부총리 발언과 달리 시장에서는 일찌감치 부자증세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코로나19로 주요 경제지표가 하락하면서 정부가 각종 경기부양책을 내놓은데 따른 부작용을 정상화시키려면 증세는 필요한 과정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실제로 정부 재정건전성은 위험수위까지 올라왔다. 3차 추경으로 국가채무는 840조2000억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해 본예산보다 99조4000억원 늘어나는 규모다.
2차 추경 때 41.4%로 예상됐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3차 추경으로 43.7%까지 치솟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세법개정안은 정부와 시장의 괴리감이 크다. 정부의 ‘조세중립’ 의도와 달리 부자증세는 더욱 도드라진 모양새다.
◆기업에게 ‘당근’ 준다는데…법인세는 그대로
주요 세수 증가 타겟을 고소득자로 잡은 정부는 기업 투자심리를 끌어내기 위해 ‘당근’을 준비했다. 투자세엑공제 통합으로 지원 범위 확대와 유턴기업 혜택 강화 등을 내놨다.
여러가지 당근책을 내놨지만 정작 기업 입맛에 맛는 메뉴는 빠졌다. 시장에서는 법인세 인하에 대한 기대감도 컸다. 이번 세법개정안에서는 법인세 인하 문구가 단 한 줄도 나오지 않았다.
민간전문가들은 기업이 매력을 느낄 만큼 법인세 절감 효과가 크지 않다며 세법개정안에 제시된 내용들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양준석 가톨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뉴시스와 전화 통화에서 “기재부가 융통성을 발휘해 지원 방식을 포지티브에서 네거티브로 바꿔 긍정적”이라고 전제한 뒤 “그러나 법인세 절감 효과가 작년 법인세수의 1%에도 못 미치는 점을 고려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이번 조처의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느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홍기용 인천대학교 경영대학 교수(한국납세자연합회 회장)는 “작년 법인세 신고 기업(78만7000여 곳) 중 절반 가량이 세금을 내지 않는 면세 기업이다. 면세 기업이 많은 중소기업에 기업 투자 지원책의 초점을 맞춘 이번 세법 개정안은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법인세 절감 효과가 너무 작다. 이번 세제 개편안은 기업 살리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도 부자증세 불가피…귀 닫은 정부
정부의 이번 세법개정안을 놓고 전문가들은 부자증세가 불가피하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정부가 아무리 증세가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더라도 결국 나라곳간을 채우려면 부자에게 세금을 더 물려야 한다는 심리가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홍석철 서울대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정부가 서민, 중소기업 관련 세제지원을 확충했고 줄어든 세수를 메우기 위해서는 부자증세가 불가피하다”며 “부자증세는 더 많이 버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세금을 더 내는 등 조세 형평성을 높인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선택 납세자연맹 회장은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이 세수를 증대하는 효과는 거의 없다. 연 소득 10억원 이상이라 최고세율을 부담해야 하는 이들 숫자가 얼마되지 않는다”며 “이에 늘어나는 세수도 적고, 재분배 효과도 미미할 것이다. 재분배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중산층 실효세율을 높이고 복지를 강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