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뻗어 나가는 K-농업…성공 비결은 ‘협업’ [新농사직썰-케이팜⑭]
입력 2024.12.12 13:15
수정 2024.12.12 13:15
김황용 농촌진흥청 기술협력국장
세계 67개국 개발도상국 농업 발전 지원
“기술 수출로 양국 경제 발전에 기여할 것”
#. 新농사직썰은 조선시대 편찬한 농서인 ‘농사직설’에 착안한 미래 농업기술을 소개하는 코너다. 지난 2021년 7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50회 시리즈로 시즌1을 마무리했다. 2023년 출발한 시즌2는 그동안 시즌1에서 다뤘던 농촌진흥청이 연구개발한 기술들이 실제 농가와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 효과는 있는지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기위해 구성됐다. 시즌1과 시즌2가 국내 농업기술에 초점을 맞췄다면, 시즌3는 해외에서 맹활약 중인 ‘한국 농업기술’이 핵심이다. 시즌3 부제는 ‘케이팜(K-Farm)’이다. 한류 문화를 이끌고 있는 ‘케이팝(K-Pop)’과 같이 세계의 척박한 땅에서 우리 농업기술을 전수하는 이들의 눈부신 ‘농업외교’ 성과를 집중 조명한다. <편집자 주>
“우리나라 농업기술은 이미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최적의 농업 기술과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기후변화 등 미래의 농업에 대비하기 위한 대책도 착실히 수행 중이다. 이런 과정에서 농촌진흥청의 역할은 빼 놓을 수 없다. 이렇게 축적된 기술들이 이제 전 세계 개발도상국에 전파되고 있다. 농촌진흥청의 해외사업이 농업외교로 불리는 이유다.”
김황용 농촌진흥청 기술협력국장은 요즘 청에서 가장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올해 추진된 해외사업들의 성과를 평가하고, 내년 사업을 구상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전 세계 개발도상국들이 농진청의 농업기술을 전수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해 우선 순위를 정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김 국장은 “농진청에서 추진 중인 해외사업에 대한 인지도와 신뢰도가 해를 거듭할 수록 높아지고 있다”며 “그동안 진행했던 해외사업들의 성과가 하나 둘 나오기 시작하면서 일부 국가는 농진청 농업기술을 국가 아젠다로 삼을 정도로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60년간 축적한 노하우 세계에 전파
농진청은 우리나라 농업기술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국가기관이다. 1970년대 녹색혁명과 1980년대 백색혁명을 이끌며 농업 생산성 향상에 기여했다. 지금도 미래지향적 기술혁신을 주도하면서 농업정책을 뒷받침하고 농촌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김 국장은 “1962년 설립 이래 60여년 간 축적해 온 다양한 경험과 과학기술 역량을 기반으로, 기아극복과 빈곤퇴치 등 인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개발도상국의 농업기술 발전을 지원하고 있다”며 “특히 2개의 개발협력 프로그램을 통해 전 세계 67개 개발도상국의 국가 농업연구기관과 공동으로 국제협력 사업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농진청의 개발협력프로그램은 크게 양자협력과 다자협력으로 구분한다. 양자협력은 23개국에 해외농업기술개발사업(KOPIA・이하 코피아) 센터를 설치하고 경험 많은 농업기술전문가를 파견해 국가별 맞춤형 농업기술을 개발, 실증, 보급하는 사업이다. 코피아 센터는 현재 아시아 7개국, 아프리카 8개국, 중남미 6개국, 독립국가연합(CIS) 2개국에서 운영되고 있다.
다자협력은 국제 농업기술 R&D 협의체인 대륙별 ‘농식품 기술협력 협의체(AFACI, KAFACI, KoLFACI)’다.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대륙별 공통 현안 문제를 해결하고 국가간 기술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두 프로그램 모두 이제 10년 이상 꾸준한 사업으로 정상궤도에 진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렇게 해외사업이 성공한데는 농진청의 분명한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 국장은 농진청 개발협력프로그램의 성공요인으로 주저 없이 ‘협업’을 꼽았다.
그는 “우리 기술을 그대로 전해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국의 연구자와 함께 현지 맞춤형 기술을 개발한 후 현지 시스템을 최대한 활용해 기술개발 성과를 확산하는데 집중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11월 25일 개발협력의 날에 코피아 사업과 관련해 표창 3건을 받았다. 이 가운데 파키스탄의 경우 코피아 파키스탄 센터와 파키스탄 농업연구청이 함께 현지 맞춤형 무병 씨감자 수경재배 기술을 개발(2021~2023년)해 씨감자 생산성을 6배 이상 향상시켰다.
김 국장은 “코피아의 성과가 가시적으로 나오니 파키스탄 정부는 코피아의 무병 씨감자 보급사업(2023~2028년)을 국책사업으로 지정하고 250만 달러를 매칭펀드로 공동투자하고 있다”며 “또 4개 주정부가 참여하는 대규모 사업으로 확대했다. 이 사업이 성공하면 향후 파키스탄이 전체 씨감자 수요의 30% 이상을 자급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아프리카에서 청은 아프리카라이스(AfricaRice)라는 국제연구기관과 함께 2016년부터 ‘아프리카 벼 개발 파트너십 사업’을 추진해 지금까지 39개 우량품종을 개발·등록했다. 그 성과를 기반으로 농림축산식품부와 함께 K-라이스벨트 사업을 추진 중이다.
김 국장은 “향후 아프리카 7개국에서 도합 연간 1만t 벼 우량종자 생산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그 첫걸음으로 코피아 가나 센터는 가나 과학산업연구청과 함께 벼 우량종자 생산기술을 정립하고 2023년에 벼 종자 330t을 생산했다”며 “해당 종자는 가나 농업부에 인계돼 전국으로 보급 중이다. 평균 생산량은 5.3t/ha로 기존 생산량(3.0t/ha)보다 훨씬 많다”고 설명했다.
▶︎농진청, 전 세계 농업의 디지털 전환 중심에 서다
코피아가 각 국의 맞춤형 농업기술을 전수한다면, 대륙별 협의체(3FACIs)는 국가 차원의 다자협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최근 화두로 떠오른 농업의 디지털 전환이 핵심이다.
농진청은 대륙별 협의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2023년에는 유엔식량농업기구(FAO)와 함께 아시아 주요국(48국)을 대상으로 국제토양분류체계(World Reference Base)에 부합하는 ‘아시아 토양지도’를 발간했다. 지금은 각 회원국에 전자토양정보시스템을 구축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협의체별 성과도 눈에 띈다. KAFACI는 지난 6월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후속조치로 14개국이 신규 가입해 회원국이 37개국으로 확대됐다. 아프리카 54개국 중 3분의 2가 참여하는 대규모 농업 R&D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이다.
김 국장은 “올해 8월에 열린 KAFACI 총회에서는 아프리카 식량안보 강화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농업기술 협력을 강화하자는 새로운 비전을 선포했다”며 “관련 신규 과제를 기획해 내년부터 2029년까지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KoLFACI는 중남미 소농의 기후변화 대응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가뭄 저항성 강낭콩(프리홀) 4품종 개발을 완료했다. 농업용수 절약, 생산성 향상, 농업소득 증가 등 성과가 뛰어나서 올해 국무조정실이 국제개발협력 기후변화 우수과제로 선정한 바 있다.
또한 2023년 한-카리콤 정상회의 후속조치로 2025년에 한-카리브 농업연구 혁신플랫폼(KoCARIP)을 출범시키기 위해 카리브공동체(CARICOM)와 함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앞으로 식량·영양 안보를 개선하고 카리브 지역의 농업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카리브 14개국이 참여하는 다양한 협력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코피아 센터, 대한민국 ODA 공급기지로 활용해야”
김 국장은 농진청의 개발협력프로그램이 향후 공적개발원조(ODA) 농업기술 공급기지로 활용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를 위해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 등 협업체계로 완성도 높은 농업ODA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는 견해도 내놨다.
김 국장은 “농업은 여러 개도국의 주요 산업이다. 빈곤층 중에는 농촌지역 소농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며 “따라서 대규모 ODA 사업이 성공하려면, 소농의 소득을 증진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역설했다.
그는 이어 “이때 현지 여건에 적합한 농업기술의 확보가 절실하다. 코피아 센터를 대한민국 ODA의 농업기술 공급 기지로 활용해야 하는 이유”라며 “최근 코이카가 혁신적 농촌공동체 개발사업을 기획 중이다. 주요 협력대상국의 농촌 빈곤 문제를 다차원적으로 개선하는 프로젝트다. 코아카 사업을 성공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청과 코이카는 사업기획 초기 단계부터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최근 대륙별 협의체를 중심으로 한 R&D 네트워크가 급격하게 확대되고 있는 점을 강조했다. 2023년에 50개국이던 협의체는 올해 65개국, 내년에는 77개국, 2026년에는 90여개국으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 국장은 “이 네트워크를 잘 활용하면 농업기술 R&D 추진방향에 대한 국제적 여론을 조성할 수 있다”며 “실제로 지난 2개월간 51개 회원국과 8개 협력기관으로부터 기후변화 대응 현황 정보를 수집했다. 이를 자료집을 작성해 국제사회에 공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협의체에서는 개별 국가가 할 수 없는 초국가적 연구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AFACI와 KAFACI를 묶어 국제적인 해충 감시체계를 구축하면, 장거리 이동성 해충(열대거세미나방 등)이나 분포범위가 확산 중인 해충(토마토뿔나방 등)의 동태를 신속하게 파악해 대응할 수 있다”며 “우리나라의 식물검역 역량이 획기적으로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밖에 ODA 사업성과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수출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제언도 했다. ODA와 수출을 잘 연계하면 수원국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국장은 “무엇을 수출하는 지가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값싼 원료를 수입해서 비싼 소비재를 만들어 수출한다면 교역 상대국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우수한 농기자재를 적정한 가격에 수출한다면, 수원국은 농업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제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