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의 딜레마, 채권단 "매각 속도 더 내라"…'알짜'도 매각?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입력 2020.06.11 12:21
수정 2020.06.11 13:03

두산솔루스·모트롤BG 등 가격 이견차로 매각 난항

채권단 매각 시한 압박하면 두산 추가 카드 고민할 듯

두산그룹 본사가 위치한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 전경.ⓒ두산

두산그룹이 3조원 규모의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사업부·계열사 매각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비주력 계열사의 매각이 여의치 않아 알짜 계열사를 매각하는 상황까지 내몰리게 될 경우 그나마 수익성을 보장해주는 캐시카우가 사라진다는 점에서 고민이 클 것으로 보인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두산그룹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핵심 자산을 비롯한 각종 사업부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두산은 '팔 수 있는 자산은 다 판다'는 전제 하에 (주)두산, 두산중공업 , 두산건설 등의 핵심 자산 및 사업부를 대거 시장에 내놨다. 그러나 적정 가격에 대한 인수 후보군과의 이견차로 매각 작업은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 모습이다.


전기차용 배터리 동박(전지박)을 생산하는 두산솔루스는 애초 사모펀드와 매각 협상을 진행했으나 가격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결렬됐다. 이후 공개적으로 인수 후보군을 모집했지만 최근 진행된 예비입찰에서 롯데, SK 등 주요 대기업들이 불참하면서 흥행에 실패했다.


(주)두산이 가진 두산솔루스 지분은 약 17%에 불과하나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등 주요 주주를 포함한 특수관계인(44%)들이 61%를 보유하고 있다. 두산은 두산솔루스 지분 매각을 통해 1조원 규모의 유동성을 조달할 계획이었다.


(주)두산의 모트롤BG도 최근 원매자들을 대상으로 예비입찰을 진행했으나 흥행은 저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과 원매자측은 매각 가격에서 1000억원 가량 입장차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두산건설 역시 매각을 진행중이나 진전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정보 제공 부족으로 기업 파악에 어려움이 있다는 불만을 제기한다.


이 밖에 두산타워, 두산중공업이 보유한 골프장 클럽모우CC 등의 매각이 진행중이다. 그러나 이 정도만으로는 두산이 채권단에 약속한 3조원 단위의 자금을 확보하기 어렵다.


채권단은 두산이 계열사 매각에 좀 더 속도를 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현재까지 채권단이 두산중공업에 투입한 자금은 3조6000억원으로, 경영정상화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두산이 좀 더 진정성 있게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두산은 당초 매물로 내놓은 계열사 및 자산이 별다른 성과가 없고 채권단의 압박이 심화될수록 두산인프라코어, 두산밥캣 등 핵심 계열사 카드를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 계열사는 두산그룹의 대표적인 '캐시카우'로, 시장에 내놓을 경우 상당한 흥행이 예상된다. 채권단에 약속한 3조원 자금 조달에도 한층 가까워질 수 있다.


그러나 일단 매각하게 되면 앞으로는 두산인프라코어와 같은 탄탄한 '자금줄'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현재 두산의 체력으로는 두산중공업 등 나머지 계열사 위주로 그룹을 이끌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두산중공업은 친환경 에너지 기업으로의 전환을 이제 막 추진하는 단계로, 안정화까지는 앞으로 수 년의 기간이 필요하다.


급하다고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를지, 아니면 그대로 기를지 두산그룹은 한동안 매각 '딜레마'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거위를 가르게 되면 당장의 굶주림을 해소할 수 있으나, 앞으로는 먹거리 확보를 위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만 한다.


두산 입장으로선 매각 일정을 놓고 채권단을 설득하면서 두산인프라·밥캣 등 핵심 계열사를 제외한 나머지 매물들을 속도감 있게 처분하는 것이 가장 최선의 선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채권단은 두산의 정상화가 더딜 수록 추가 지원을 해야 한다는 고민을, 두산은 적정 매각으로 최대한 많은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는 고민을 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 간극을 해결하면서 계열사와 사업부 매각을 성공시키는 것이 두산의 과제"라고 말했다.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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