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0] 복잡해진 반도체 투자 방정식…한-미 윈윈 피력해야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입력 2025.01.20 11:40
수정 2025.01.20 11:40

트럼프 2기 출범…중국 제재·미 우선주위 위한 행정명령 쏟아낼듯

관세 올리면 수출 기업 타격…中 밀어내기에 '이중고' 우려도

반도체법 불편한 기색 트럼프, 안보·경제적 이득 적극 피력해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3월 2일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새롭게 출범하는 트럼프 2기 정부에서는 경제·통상·산업 등 측면에서 중국과의 패권 다툼이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메이드 인 아메리카', '중국 때리기' 전략이 1기 때 보다 더 전방위적으로, 더 강력하게 실행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관세, 반도체법 영향권에 놓인 삼성, SK 등 국내 기업들은 한층 더 복잡해진 미·중 공급망 해법을 풀어야 한다. 민·관은 외교·통상 역량을 총동원해 현지 반도체 투자가 한-미 안보·국익 차원에서 크게 도움이 된다는 점을 적극 어필함으로써 트럼프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데 매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관세 올리면 韓 수출 기업 타격…中 밀어내기에 '이중고' 우려도

20일 업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21일(한국시간) 취임해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다. 그는 취임 이후 속전속결로 '미국 우선주의' 기치를 내건 다양한 행정명령 폭탄을 쏟아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선거 구호로 트럼프 당선인은 그간 관세 인상, 이민자 추방,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종식, 전기차 의무화 취소 등 경제 회복 및 자국 산업 보호 정책을 강력히 어필해왔다.


이같은 정책 기조는 반도체 산업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전망이다. 업계는 반도체 시장에 미칠 주요 키워드로 관세 인상, 반도체지원법(CHIPS Act) 지원 축소 등을 꼽는다.


앞서 그는 모든 수입품에 10~20%의 보편관세를, 중국산엔 6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멕시크와 캐나다에는 25%의 추가 관세를 매기겠다고 했다.


시장은 반신반의했지만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14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투르스소셜'에서 관세 징수를 전담으로하는 '대외세입청(ERS)'를 신설하겠다며 그의 의지를 재확인했다.


관세 카드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수출 기업들은 현지 판매가격이 높아지니 경쟁력이 떨어진다. 중국에 공장을 두고 중간재를 수출하는 업체들도 마찬가지다. 미국 수출길이 막힌 중국이 한국 등에 자국산 밀어내기를 시도할 경우 부담은 더 커진다.


산업연구원은 '트럼프 보편관세의 효과 분석' 보고서를 통해 대미 수출은 9.3~13.1% 감소하고 이로 인한 국내 부가가치는 약 7조9000억원~10조6000억원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멕시코, 캐나다에 25%, 중국을 포함한 그 외 국가들에 10%의 관세를 부과한다는 가정 아래 반도체 수출 감소 효과는 4.7~8.3%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산업연구원은 "반도체는 미국의 대세계 관세 수준이 높을수록 우리나라에 불리하다"고 했다.


국내 기업으로서는 트럼프발 관세가 현실화되고 해당 수치도 높아질수록 현지 투자, 수출선 다변화 등 공급망 재배치 압박을 받게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이를 절묘하게 파고들어 직접 미국에 투자 깃발을 꽂으라고 요구한다. 미 현지 투자로 관세 우려를 덜고 '미 중심 공급망 정책'에 가세하라는 것이다. 후보 시절 그는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관세를 높이면 그들(외국 기업)이 와서 반도체 회사를 공짜로 만들 것"이라며 미국 내 제조시설 내재화 전략을 언급한 바 있다.


SK하이닉스 곽노정 대표이사 사장이 11월 4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SK AI 서밋 2024’에서 ‘차세대 AI 메모리의 새로운 여정, 하드웨어를 넘어 일상으로’를 주제로 기조연설을 진행하고 있다.ⓒSK하이닉스
반도체법 불편한 기색 트럼프, 안보·경제적 이득 적극 피력해야

또 다른 리스크는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지원법에 따른 보조금 지급 여부다. 트럼프 당선인은 반도체지원법과 해외 기업을 대상으로 한 보조금 지원을 줄곧 비판해온터라 해당 정책에 변화를 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반도체지원법은 미국에 투자하는 기업에 총 527억 달러 상당을 지원하겠다는 제도다. 구체적으로 반도체 제조(390억 달러), 연구개발(132억 달러)로 나뉘며 미 본토에 제조 설비를 짓는 기업에게는 25%에 달하는 세액 공제도 제공한다.


삼성전자는 삼성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가동 시기는 오는 2026년이다. SK하이닉스도 인디애나주에 패키징 공장을 세울 예정으로 양사 모두 미 상무부와 반도체 보조금을 확정지은 상태다. 그러나 트럼프 2기 정부가 예정대로 보조금을 전액 지급할지는 미지수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바이든 정부에서 보조금을 확정했다 하더라도 트럼프 정부에서 집행을 중단시킬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면서 "인텔 등 자국 기업에게는 보조금을 주려고 하겠지만 TSMC, 삼성 등 해외 반도체 기업에도 동일하게 적용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이 모두 미 투자를 확정지은 상황에서 이같은 불확실성이 가시화될 경우 투자 전략은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보조금을 철회하는 초강수를 두게 되면 자국 내 첨단 반도체 생산설비 구축 정책에 제동이 생기게 되는 만큼, 제도는 유지하되 내용 측면에서 변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구체적으로 미 현지 기업에 대한 지원 비중을 늘리거나 동맹국을 대상으로 한 가드레일 조항 및 보조금 지원에 대한 추가 조건을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미 미국에 투자를 확정지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로서는 부담이 커진다.


산업연구원은 '미국 대선 향방에 따른 한국 산업 영향과 대응 방안' 보고서에서 트럼프 집권 시 "자국 기업 편향 지원 강화에 더해 새로운 협상 조건을 제시할 가능성이 있지만 국가 전략상 현실화 가능성은 낮다고 평가된다"면서 "기존 보조금 대비 투자금 확대 또는 기존 투자금 대비 보조금 축소" 가능성을 제기했다.


삼성전자,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파운드리 공장 건설 현장ⓒ연합뉴스

중국 견제와 자국 내 투자 확대를 골자로 한 트럼프 정부 기조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국내 업계는 미 정부로부터 최대한의 수혜를 얻어내기 위해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지난해 11월 한국경제인협회 주최로 열린 '트럼프 신정부 통상정책 전망과 한국 경제계의 전략적 대응책 모색' 좌담회에서 박태호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2011~2013년 통상교섭본부장)은 반도체법 등으로 보조금 또는 세액공제 규모가 줄어들까봐 우리 기업들이 소극적으로 대처하기 보다는 오히려 투자 규모를 늘려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종훈 제19대 국회의원(2007~2011년 통상교섭본부장)도 "AI 시대를 감당할 반도체 설계-제조 공급망 구축은 미국 혼자서는 할 수 없다. 결국엔 협업하고 협상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미국이 갖지 못한 핵심 제조 경쟁력을 갖고 있다. 핵심 파트너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시간이 갈수록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관여가 축소될 것으로 예상되므로, 중장기 반도체 전략도 제대로 세워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지난해 9월 열린 ‘한미 산업협력 컨퍼런스’에서 권석준 성균관대 교수는 "국내 메가 클러스터 생태계 확충, 차세대 기술에 대한 R&D·인력 투자 등 중장기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 범위를 HBM(고대역폭메모리)로 확대하는 등 중국의 AI 반도체 개발을 막는데 사활을 걸고 있는 점은 기회이자 위기요인으로 꼽힌다. 국내 기업이 메모리 등 반도체 경쟁에서 중국을 따돌릴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기회와, 중국향 반도체 수출 축소라는 위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기회와 위기가 모두 상존하는 상황에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미 정부로부터 최대한의 수혜를 이끌어내고, 중국과의 갈등은 최소화해 안정적인 팹(생산 시설) 운영을 꾀하는 것이 최선이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낸드플래시 40%를, SK하이닉스가 우시와 다롄에서 D램과 낸드를 40%, 20% 생산할만큼 중국 내 생산 규모가 적지 않다. 따라서 장기적인 지정학적 리스크, 시장 수요, 팹 운영 효율성 등 종합적인 부분을 고려한 전략이 요구된다.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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