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후보자 모르게 선거사무실 계약…정치자금법 위반 아냐"

박상우 기자 (sangwoo@dailian.co.kr)
입력 2024.12.02 14:00
수정 2024.12.02 14:01

선거운동에 쓸 목적으로 사무실 빌리고 정치자금 1407만원 불법으로 기부한 혐의

1심, 벌금형→2심, 무죄…"정치자금 부정수수죄 미수범 처벌 규정 없어 처벌 불가"

대법 "한쪽에 의해 자금 마련 됐지만 건네지지 않아…정치자금법 위반죄 처벌 불가"

서초구 대법원 전경.ⓒ뉴시스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를 위해 비용을 들여 사무실을 빌렸지만 관련 사실을 후보자가 몰랐다면, 사무실을 임차한 이를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정치자금이 결과적으로 전달되지 않았으며, 정치자금법에는 미수범 처벌 규정이 없어 후보자와 기부자 모두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오모 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지난 10월 31일 확정했다.


오씨는 2017년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이흥수 당시 인천 동구청장의 재선 선거운동에 쓸 목적으로 선거사무실을 빌리고 임대료와 관리비 등을 지급해 1407만원의 정치자금을 불법으로 기부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이 전 구청장도 오씨의 임대료 지급 사실을 알았을 것이라고 보고, 두 사람을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함께 2019년 재판에 넘겼다.


법원은 불법 정치자금을 기부받은 혐의를 받은 이 전 구청장에 대해서는 1·2심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그가 사무실을 빌리는 과정에 관여했거나 최소한 빌렸다는 사실을 알았는지도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준 쪽'인 오씨에 관한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오씨가 이 전 구청장의 재선 선거운동에 쓸 목적으로 사무실을 빌려 임대료 상당액을 정치자금으로 준 게 맞는다고 보고 벌금 90만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은 '대향범' 법리를 주된 근거로 무죄를 선고했다.


대향범이란 2명 이상의 참여자(기부자·수수자)가 서로 다른 방향에서 동일한 목표(정치자금 불법 기부)를 실현하는 범죄로, 주는 행위와 받는 행위가 둘 다 있어야 죄가 성립한다.


이 전 구청장이 정치자금을 받았다고 평가할 수 없으므로 오씨가 정치자금을 줬다고 인정할 수도 없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었다. 나아가 정치자금 부정수수죄는 미수범 처벌 규정이 없어서 오씨가 기부하려고 했다는 것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검찰은 이 전 구청장의 무죄에는 상고하지 않았지만, 오씨에 대해서는 법리 오해 등을 이유로 상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며 검찰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한쪽에 의해 정치자금이 마련은 됐으나 건네지지 않은 단계에서는 정치자금법 위반죄로 처벌할 수 없고 해당 사건에서 오씨가 정치자금 제공행위를 완료했다고 볼 수 없어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단은 잘못이 없다"고 설명했다.

박상우 기자 (sangwoo@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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