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한동훈 대표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 [기자수첩-정치]
입력 2024.10.18 07:00
수정 2024.10.18 07:00
韓, '대통령실과 차별화' 전략에 10·16 재보궐 승리
'당 지지율' 상승해야 '정부 지원·정권 방어'도 가능
김 여사 관련 억지 의혹에 정직·무고함 증명 나서야
최근 여당과 정부를 달구는 이슈는 한동훈 대표의 입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한 대표는 지난 9일 처음으로 김건희 여사가 공개 활동을 자제할 것을 요구했고 이후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에 대해) 검찰이 납득할 만한 결과를 내놔야 한다"(10일)거나"김건희 여사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와 걱정을 불식시키기 위해 대통령실의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12일) 등 연일 김 여사와 관해 강력한 발언을 꺼냈다.
심지어 대통령실이 "여사 라인이 어디 있느냐"고 대응해도 전혀 움츠러들지 않고 한 대표는 "김 여사가 공적지위가 있는 사람은 아니지 않느냐. 그런 라인은 존재해선 안된다"(14일)고 맞받은 한 대표는 명태균 씨가 김 여사와 주고받은 문자를 공개한 이른바 '오빠 사태'가 터지자 "국민들이 보시기에 안 좋은 일들이 반복해서 생기고 있다"고 불편한 심정을 감추지 않기도 했다.
한 대표가 이 같이 날선 발언들을 꺼낸 것은 10·16 재보궐선거를 위해서라는 것은 정치권의 누구나 다 인정하는 대목이다. 공식 선거운동기간 동안 김 여사가 공천에 개입했단 의혹의 핵심 인물인 명태균 씨가 나라를 뒤흔들었고, 대통령실 행정관 출신인 김대남 씨가 여사의 이름을 팔아 한 대표를 향한 공격을 사주하는 등 모든 부정적인 이슈가 여사를 향했다. 이를 보는 국민들이 여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건 너무 당연한 처사였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윤 대통령, 김 여사 부부와 차별화를 선택한 한 대표의 전략을 성공을 거뒀다. 이번 재보선에서 최대 격전지로 분류되던 부산 금정구청장 보선에서 윤일현 후보는 61.03%(5만4650표)를 얻어 38.96%(3만4887표)를 획득하는데 그친 김경지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22.07%p(1만9763표) 차이로 제쳐냈기 때문이다. 선거 직전 등장했던 불안한 여론조사들을 고려하면 한 대표가 기적적인 승리를 이끌어낸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실은 선거 이튿날인 17일 이번 재보궐선거 승리에 대해 "어려움이 있더라도 의료개혁 등 4대 개혁과 저출생 극복 등 개혁 방안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 미래로 나아가겠다"는 메시지를 냈다. 그 앞에 "부족한 부분은 국민의 뜻을 받아들여 바꾸어 나가겠다"는 말이 붙긴 했지만, 절대 정부 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읽히기에 충분한 반응이다.
국민들이 윤석열 정부에 실망하고 있는 건 그 정책의 방향이 틀려서가 아니다. 다만 방법에서의 거친 부분이 있다는 점과 김 여사가 국민 정서에 반하는 행동과 발언들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 실망감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재보궐선거는 이를 방증하는 좋은 결과다. 김 여사 사태로 패배 위기까지 떨어진 보수층 결집을 이끌어낸 건 한 대표의 대통령실과의 차별화 전략이었다는 걸 윤 대통령 부부와 대통령실도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번 선거 결과를 취재하는 와중에 거의 모든 국민의힘 관계자들이 하나 같이 한 말이 있다. "앞으로 더 이상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과 "떨어지는 대통령 지지율을 당 지지율의 상승으로 상쇄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번 선거를 거치면서, 정확히는 '김 여사 사태'를 거치면서 대통령과 당의 지지율은 바닥을 찍었다. 그래도 당 지지율이 선방하고 있다는 건 보수층이 대통령실이 아닌 당에 희망을 걸고 있다는 뜻이다.
한 대표는 17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공개석상에서는 처음으로 "(김 여사에게) 제기되는 의혹에 대해 솔직하게 설명하고,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여사를 '악마화'하자는 것이 아니다. 야권의 주장대로 김 여사를 구속하고 기소해서 현 정권을 끝내자는 뜻이 아니라, 제기되는 억지 의혹들에 맞서 정직함과 무고함을 증명하라는 의미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독대할 날도 이제 머지 않았다. 이르면 내주 초 두 사람은 테이블을 가운데에 두고 마주 앉아 허심탄회한 얘기를 나눌 예정이다. 정치는 언제나 민심을 따르는 쪽이 승리한다. 그리고 지금 민심은 올해 초 총선 지원을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고, 재보궐선거 지원에 온 힘을 쏟았던 한 대표가 더 체감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2022년이 아니라 2024년이다. 말머리에 얘기했듯 한 대표의 입은 최근 여당과 정부의 이슈를 이끌고 있다. 윤 대통령은 당 지지율과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제 한 대표가 전달할 민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