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호 "언제나 믿음 주는 배우가 될 때까지" [D:인터뷰]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4.09.01 13:52
수정 2024.09.01 13:52

'폭군'으로 박훈정 감독과 재회

배우 김선호가 최근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군'을 통해 또 한 번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며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폭군'은 폭군 프로그램의 마지막 샘플이 배달사고로 사라진 후 각기 다른 목적으로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서로 쫓고 쫓기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추격 액션 스릴러로 김선호는 최국장을 연기했다.


그가 맡은 최국장은 엘리트 국정원으로 외부 세력으로부터 폭군 프로그램을 사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이다. 김선호는 최국장을 그늘이 깊게 드리워 눈빛과 절제된 움직임으로 캐릭터의 무게감을 완벽하게 표현했다. 김선호는 이번 작품에서 선한 얼굴 뒤에 숨겨진 냉철함과 목표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을 드러내며, 캐릭터의 복잡한 내면을 섬세하게 담아냈다.


'폭군'은 공개일인 8월 14일부터 25일까지를 기준으로 디즈니플러스 한국에서 가장 많이 시청한 작품 1위를 기록했다. 김선호는 '폭군'의 좋은 반응에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우리가 즐겁게 찍은 작품을 예쁘게 봐주신 것 같아 기분이 좋아요. 처음에 반응이 어떤지 찾아보지 못했어요. 촬영이 있는데 계속 그것만 보고 있을까 봐요. 그런데 회사 분이 보내주신 댓글 보고 반응이 나쁘지 않은 것 같아 2시간을 붙들고 반응을 봐버렸네요."


'신세계' '마녀' 시리즈 등 개성 강한 캐릭터와 장르적 쾌감을 선사하는 연출로 독보적인 세계관을 구축해온 박훈정 감독과 김선호는 이전 작품 '귀공자'에서 한 번 호흡을 맞춘 바 있다. 김선호는 박훈정 감독의 페르소나라는 평가에 "저 아닌 것 같다"라며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늘 같이 하고 싶고 가까운 존재인 박 감독님과의 작업을 즐거워요. 사실 누구나 호불호가 있고 누군가에게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당시 귀공자와 최국장이 다르게 보일 거란 믿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박훈정 감독님에 대한 확신을 갖고 걱정 없이 출연했습니다."


최국장은 어떤 위기 상황에도 차분함을 잃지 않으며 극에 무게감을 더한다. 그 동안 김선호가 맡았던 역할과 달리 쓸쓸하고 외로움이 묻어난다. 김선호는 감정의 표출과 미세한 변화까지 신경 쓰며 최국장에 숨을 불어넣었다.


"가장 말 없고 묵직한 인물을 연기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어요. 또 최국장이 아예 말이 없는 건 아니거든요. 상황 별로 말을 하는데 진지할 때도 있고 능청스러울 때가 있잖아요. 저에게 가장 큰 숙제는 저 때문에 작품이 지루하거나 목적 없어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죠. 그래서 말을 툭툭 던져서 하려고 했고요. 폴이랑 한강에서 만나 이야기하는 신에서는 그림 그릴 때 빼고 움직임을 최소화 했어요. 그래야 말의 무게가 실리고 둘의 관계가 보일 것 같더라고요. 감정을 외적으로 표출하는 인물들이라면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자신의 의도를 들키지 않으려고 농담반, 진담반을 던져가며 신마다 목표를 잡아가는 게 힘들었죠. 그래도 인물을 구축해 나가는 게 설레는 일이구나를 또 한 번 느낀 작업이었어요."


작업하면서 킬리언 머피 주연의 넷플릭스 시리즈 '피키 블라인더스'를 참고하기도 했다.


"그 작품 인물들이 움직임이 많지 않아요. 시선이나 가리킴 하나로 정적인 인물을 만들어 나가더라고요. 캐릭터성이 엄청나지 않은 인물들이 가장 조금 움직였을 때 효과적인 건, 움직임 하나하나가 다 갈무리가 되어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움직임도 대사라는 걸 염두에 두고 연기했어요"


'폭군'의 마지막은 최국장의 희생으로 마무리 된다. 김선호는 처음부터 '폭군'의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 최국장의 성정이 그대로 반영된 끝이었다. 마지막 자신의 얼굴에 총구를 가져가는 김선호의 복합적인 눈빛 연기는 많은 이들의 호평을 얻기도 했다.


"최국장은 처음부터 이너서클로 발탁돼 나라를 위한 전사로 키워진 거죠. 가족이 나라와 국정원 사람들인 거죠. 선배들이 자기를 믿고 희생했다는 걸 알았으니 무게감도 엄청났을 테고요. 국가와 민족에 대한 신념이 강한 사람이 그런 책임감까지 더해졌으니 아마 처음부터 이 계획에는 죽음이 각오됐을 거라고 느꼈어요. 폭군 프로그램의 완성인 자경을 보면서 최국장은 무언가를 준비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감독님과 나눴어요. 최국장의 죽음이 끝이 아닌 거죠. 최국장은 자신이 계획한 최종 목적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희열이 느껴질테고 , 철저하기 준비했을 테니 성공했고, 이제 마무리를 지어야지라는 느낌이랄까요. 마지막 주헌 선배님의 엄청난 연기 도움이 있어서 몰입할 수 있었어요. 사실 총구를 저에게 갖다 대는 게 살짝 무섭더라고요. 이런 환경적인 것에도 도움을 받았어요."


김선호는 배우로서의 여정에서 자신만의 연기 스타일을 찾아가기 위해 깊은 고민을 해왔다. 그는 자신이 가진 외적인 요소나 특정한 이미지에 국한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더 깊이 있는 캐릭터를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했다.


"대본 보면서 무게감과 수장이라는 것에 대해 늘 고민했어요. 배우로 살아보니 타고난 걸 이길 수가 없더라고요. 그렇게 생긴 사람이 그런 연기를 한다는 것. 어떤 연기를 할 때 말 한마디로 믿어지게 만드는 배우들이 있잖아요. 그런 템포감이 좋은 배우들을 못 이기겠더라고요. 그래서 전 생김새를 바꿀 수는 없으니 제가 할 수 있는 걸 계속 찾았어요. 그래서 찾은 건 전 특색이 크게 없으니 유연하게 연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그렇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보여주면 앉아있기만 해도 '우와' 소리는 나오지 않더라도 그 인물로 어느 정도 살아있을 수 있겠다 싶었죠."


동경했던 배우 차승원과 '귀공자' 이후 재회한 김강우와의 만남 역시 김선호에게는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차승원 선배님과는 거의 마지막신에서만 붙었어요. 촬영하는 걸 다 보진 못했지만 제주도에 놀러 가 맛있는 거 사들고 응원하러 자주 갔어요. 그 때보다 차승원 선배님과는 연기보다 사적인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눴어요. 배역과 일상을 분리하는 선배님의 모습, 본인만의 루틴이 있어야 연기에 활력이 생긴다는 이야기들을 듣고 많이 배웠고 존경하게 됐죠. (김)강우 선배는 연기가 진짜 정확해요. 무슨 말을 하려는지 정확하게 와닿아요. 대사로 표현 안 되면 액션, 서브텍스트로라도 툭툭 던져줘요. 그런 모습을 보며 '나도 잘 표현할 줄 알아야 완급 보절을 할 텐데' 싶어요. 그런 걸 보면서 감탄하죠."


몇 년 전 사생활 스캔들로 부침을 겪었지만 지난해 '귀공자' 이후 김선호는 배우로서 커리어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현재는 드라마 '이 사랑 통역이 되나요?' 촬영 중이며 '망내인', '현혹' 출연도 검토 중이다. 언제나 믿음을 주는 배우가 목표인 김선호에게 이 모든 과정은 하나의 큰 즐거움이자 도전이다.


"작품을 쉼 없이 하게 돼 너무 좋아요. 물론 저에 대한 안 좋은 평도 있을 테지만 잘 걸러서 발전할 수 있는데 쓰려고요. 사실 쉴 새 없이 달린다고 말 해주는데 그런 표현은 조금 안 맞는 것 같고, 전 제가 좋아서 일하고 있는 거예요. 제가 건강해지기 위해서 제가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것에 몰두하려고 해요. 전 이 과정이 너무 즐거워요. 지금 배우로서 최선을 다하며 '또 잘 해내겠지' 이런 믿음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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