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토 투혼’ 선배들 꺾은 김원호·정나은 조의 책임감 “중국은 우리가 잡을게요”
입력 2024.08.02 10:29
수정 2024.08.02 13:07
김원호(삼성생명)-정나은(화순군청)이 예상을 뒤엎고 결승에 진출, 은메달을 확보했다.
‘세계랭킹 8위’ 김원호-정나은은 2일(한국시각) 프랑스 파리 포르트 드 라샤펠 아레나에서 펼쳐진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혼합복식 4강에서 ‘세계랭킹 2위’ 서승재(삼성생명)-채유정(인천국제공항)을 2-1(21-16 20-22 23-21)로 꺾고 결승에 올라 은메달을 확보했다.
한국 배드민턴의 파리올림픽 첫 메달. 김원호 어머니인 길영아 삼성생명 배드민턴 감독은 1996 애틀랜타 올림픽 혼합복식 금메달리스트다. 김원호가 은메달을 목에 걸며 '모자 메달리스트'라는 진기록이 나왔다.
한국 배드민턴이 혼합복식에서 결승에 진출한 것은 2008 베이징올림픽 이용대-이효정 금메달 이후 16년 만이다.
준결승 결과는 이변이다. 국제경기 경험과 상대 전적을 떠올릴 때, 대다수 전문가들과 팬들은 서승재-채유정 조의 승리를 예상했다. 김원호-정나은 조는 상대전적에서도 5전 5패로 절대 열세였다. 4강까지 오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게임 득실을 따져 가까스로 8강에 올랐다.
그러나 승자는 김원호-정나은 조였다.
누구보다 상대를 잘 아는 사이인 만큼 경기는 치열하게 전개됐다. 1게임과 2게임을 주고받은 가운데 3게임은 혈전이었다. 경기 도중 김원호가 구토 증세를 보일 정도로 치열한 랠리가 계속됐다. 김원호-정나은 조는 20-18 매치포인트를 만들어 놓고도 김원호의 컨디션 난조로 20-20 동점을 허용했지만 3점을 더해 승리를 확정했다.
선배 서승재-채유정 조는 후배들의 ‘반란(?)’에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보냈다. 후배 김원호-정나은 조는 활짝 웃지 못했다. 금메달만 바라보며 뛰어왔던 선배들이 탈락했기 때문이다.
경기 후 정나은은 “믿을 수 없는 결과다”라는 소감을 남겼고, 김원호는 “우리보다 한 수 위의 실력을 가진 선배들이라 우리가 더 적극적으로 해야한다고 서로 얘기했다. 경기 막판에 흔들렸을 때, (정)나은이가 내 정신력을 잡아줬다”고 말했다.
3세트 중반에 갑자기 호흡곤란 탓에 의료진으로부터 받은 비닐봉지에 구토한 뒤 다시 코트에 섰던 김원호는 “코트 안에서는 힘든 티를 내지 않았는데 하필 올림픽 무대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게 됐다”며 “(그때)나는 배터리가 끝난 상태였다. 나은이에게 ‘네가 해줘야 한다’고 부담을 줬다. 나은이가 부담을 안고 나를 다독이며 이끌어줬다”고 정나은에게 승리의 영광을 돌렸다.
정나은은 “그 한마디가 부담으로 다가왔지만 그 상황에서는 내가 해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오빠를 좀 잡아줬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듀스까지 가는 접전 끝에 2세트를 내준 뒤 3세트에서도 중반까지 접전 양상이 이어지면서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한계에 도달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김원호는 파이팅을 불어넣은 정나은과 함께 듀스 끝에 기어코 3세트를 따내고 포효했다.
김원호-정나은은 2일 ‘세계랭킹 1위’ 정쓰웨이-황야충(중국)과 금메달을 놓고 겨룬다. 준결승에서 와타나베 유타-히가시노 아리사(일본) 조를 2-0(21-14 21-15)으로 정상급 강자들이다. 김원호는 “우리가 이겼기 때문에 책임감이 있다. 꼭 결승전에서 이겨야 한다”고 의욕을 보였다.
객관적인 전력이나 준결승 혈전 여파에 따른 체력 상태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김원호-정나은 조는 이미 이변을 일으켰다. 책임감을 안고 나서는 결승에서 구토 투혼을 넘어서는 절실함을 안고 서로 끌어준다면, 선배들을 밀어내고 올라온 후배들의 금메달도 달성 가능한 목표다.
혼합복식 결승은 동메달결정전(2일 오후 10시~)에 이어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