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 오스틴 버틀러, ‘유머’ 스텔란 스카스가드…‘듄2’ 내한 5인 5색 말맛➁ [홍종선의 연예단상㊶]
입력 2024.02.26 07:01
수정 2024.02.27 16:56
커피도 말도 ‘다정하게’ 티모시 샬라메…‘듄2’ 내한 5인 5색 말맛①…에 이어서
영화 ‘듄2’(감독 드니 빌뇌브, 수입·배급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홍보 차 한국을 찾은 5인방은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내한 기자회견에서 한국인들의 환대와 영화를 향한 관심에 깊이 감사했다.
드니 빌뇌브 감독과 배우 티모시 샬라메, 젠데이아 콜먼, 오스틴 버틀러, 스텔란 스카스가드(당시 착석한 왼쪽부터의 순서)가 자리한 가운데, 한국어 사회자와 영어통역사가 참석자들에게 질문을 전하고 동시통역사가 배우들의 대답을 실시간 전하는 방식으로 회견이 이뤄졌다. 같은 언어로 원활히 의사를 주고받는 게 아님에도, 한 사람의 동시통역사에 의해 전달되는 것임에도 내한한 ‘듄2’ 주역들, 5인 5색의 말맛은 사뭇 달랐다.
젠데이아 콜먼은 ‘영광’과 ‘책임’이라는 말을 많이 썼다. 한국에 처음 온 자신을 반겨주신 것도, 자신 이외의 대단한 분들과 함께 온 것도,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 영화로 올 수 있었던 것도 너무나 기쁘고 감사한데 그 정도가 ‘영광’에 이를 만큼 높고 크고 그래서 책임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표현이 구체적인 것도 눈에 띄었다.
“공항에서 너무 따듯하게 맞아주셔서 감사해요. 직접 그린 그림을 비롯해 선물들도 감사해요. 한국에 와서 기뻐요, 이분들과 와서 기뻐요, 자랑스러운 작품을 가지고 오게 돼서 매우 기쁩니다.”
“주신 편지들을 아직 다 읽지 못했어요. 드디어 마주할 수 있다, 생각하고 있고요. 그분들에게 ‘저를 만난다는 게 의미 있는 일인 것’ 같은 게 제게도 의미 있어요. 특별한 유대감을 느낍니다. 손 편지, 맛있는 한국 과자, 다 기뻤고 그 정도로 따뜻했어요. 이런 팬들 세상 어디에도 없어요, 우리 엄마 집에 가도 이러지 않아요. 한국에 더 오래 있고 싶습니다.”
“원작 소설을 어렸을 때부터 읽고 자라진 않았지만, 이 책에 대한 감독님의 애정이 느껴졌어요. 대본에도, 영화에도 드러나 있어요. 제가 이런 팬덤, 유니버스의 일원인 것에 책임감을 느낍니다. 감독님 덕분에 들어온 유니버스에 저도 사랑에 빠졌어요. 이런 큰 유니버스의 일원인 것에 감사해요, 아름다운 채널(영화 ‘듄’)을 통해 이 세계에 들어와 행운이에요. 감독님의 열쇠로 문을 따고 이 안에 들어오니 내 인생에도 ‘듄’과 관련된 레퍼런스가 있었는데 몰랐구나,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제가 몰랐던 새로운 세상에 들어온 게 영광스럽지만, 원작 팬들이 계시니 책임감도 지니고 있어요. 그래도 팬 분들을 생각하면 (제가 ‘듄’에 출연하고 이 세계관의 일원이 된 것에) ‘영광’이라는 단어 제일 먼저 떠올라요. 팬분들도 영화를 보시고 충분히 존중받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이 유니버스의 일원이 된 걸 즐기듯 팬분들도 즐기시면 좋겠습니다.”
관객 기준에서 젠데이아 콜먼은 1편부터 출연한 배우지만, 콜먼 본인은 원작을 읽고 자란 세대가 아니고 뒤늦게 승차한 자신 이전에 소설 팬들이 있음을 중요하게 의식하고 있음이 보였다. 챠니 역에 본인이 캐스팅된 것을 비롯해 영화 내의 모든 표현 요소와 결과들이 원작 팬들에 마음에 들고, 부족하게 만들어지지 않은 영화에서 팬들이 ‘우리를 존중하고 있구나’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이 보였다. 원작 소설 팬들에까지 책임감을 느끼는 자세가 숙연해 보였다.
가장 깊이 있는 표현으로 본인이 맡은 캐릭터와 노력에 대해 진지하게 설명한 것은 배우 오스틴 버틀러였다. 영화 ‘엘비스’(2022)에서 했던 엘비스 프레슬리 분장도 인상적이었는데, 이번엔 그 특유의 목소리가 아니면 언뜻 알아보기도 힘들게 눈썹조차 없는 민머리 분장으로 폴(티모시 샬라메 분)과 황제의 명운을 건 일대일 대결을 펼치는 적장 페이드 로타로 등장한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환대해 주셔서 감사했어요. 전 세계에서 좋아하는 영화에 한국영화도 있어서 한국에 와 보고 싶었습니다.”
“캐릭터 준비 과정은 감독님과의 대화에서 시작했습니다. 물론 소설을 읽었죠. 저에 대한 감독님의 바람은 외적인 것부터 있었습니다. 해서, 체중을 늘렸고 칼릭이라고 필리핀 전통 무술을 연습했어요. 티모시도 그렇고 저도, 부다페스트 촬영 수개월 전부터 훈련받았습니다. 첫 촬영부터 티모시와의 대결이었어요, 그게 제 캐릭터 연기에 기본이 돼 주었습니다.”
티모시 샬라메는 “오스틴이 이걸 해낸 것은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오스틴, 또 스텔란 스카스가드(하코넨 남작 역, 혼자 걷는 게 힘들 만큼의 거구로 분장)의 외모 변화는 제게도 영감을 불어넣어 줬습니다. 캐스팅 테이블에서 오스틴의 이름을 보자마자 ‘나도 잘해야겠다’ 생각했어요(웃음). 오스틴의 에너지가 큰데, 나도 그만큼 에너지를 넣어야겠다 생각했어요”라는 극찬으로 동료의 캐릭터에 대한 설명을 보탰다. 계속해서 오스틴의 얘기를 소개하면.
“15세 때 처음 소설을 읽었습니다. 작가 허버트가 만든 세상에 몰입해 즐거웠어요. 감독님을 만났으나 출연할 줄 몰랐어요, 출연을 앞두고 다시 읽으니 새롭더라고요. 이미 1편을 본 뒤 참여해서, 뛰어난 멤버들과 일원이 돼서 기쁩니다. 1편을 팬으로서 여러 번 봤어요. 참여한 게 영광이에요, 진짜로 닭살이 돋울 만큼요. 그동안 (영화를 하며) 여러 도전이 있었지만, 여러분들께서 제가 이번에 이겨내며 해냈다고 생각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한국 팬들에 감사함이 가득해요, 영광이고요. 오늘 이 자리에 와 주셔서 기쁘게 생각하고요. 제게 이러한, 깊이 영광스럽게 대해 주신 분들께서 ‘듄2’를 보실 거 생각하니 가슴 벅차게 기대됩니다.”
배우 오스틴 버틀러는 영화 ‘엘비스’ 인터뷰 당시에도, 캐릭터의 시작을 ‘바즈 루어만 감독과의 대화’로 설명했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수개월 동안, 여러 도시에서 감독을 만나 엘비스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고. 두 번 연이어 들으니, ‘아, 이 사람은 출연할지 말지 모르면서도 감독을 만나 얘기 나누는 배우’라는 상상과 추측이 펼쳐졌다.
회견이고 인터뷰가 아니다 보니 이번에도 여러 차례 만났는지 되물을 수 없었지만, 적어도 영화를 신중하게 고르고 영화는 결국 감독의 생각을 펼치는 작품이라는 생각으로 감독의 얘기를 듣고 내 생각도 전하는 시간을 갖는 배우다. 함께할 수 있는 접점이 있는지를 보고, 결국 감독의 선택으로 자신이 출연하게 되면 ‘출연 미정의 시간’에 나눴던 얘기들부터가 캐릭터의 시작과 바탕이 되는 것이다. 어떤 배우보다 작품 일부가 되어 영화 속에 박히는 느낌을 주는 오스틴 버틀러의 캐릭터 레시피 중 하나다.
내한 기자회견에서 가장 큰 웃음을 준 이는 배우 스텔란 스카스가드였다. 박찬욱 감독의 영국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의 주연 배우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그의 장남이다. 알렉산더와 함께 연인 역으로 주연한 배우 플로렌스 퓨도 ‘듄2’부터 시리즈에 참여한다. 아들 셋이 모두 아버지의 길을 따라 배우를 업으로 택했다.
본론으로 돌아와, 72세의 관록과 여유 덕분인지 스텔란 스타스가드는 짧은 발언 하나로도 웃음을 유발했다.
“이렇게 오게 돼 기쁩니다. 평소 한국 음식을 좋아해요. 3일만 머무른다니 안타까워요, 계속 먹어야 해요.”
코미디의 기본엔 자신을 낮추는 비법이 있다. 후배 배우들이 공항을 환대를 말하고, 젠데이아 콜먼과 함께 한국 디자이너 준지(정욱준)가 만든 한복을 연상시키는 의상을 입고 회견에 참석한 티모시 샬라메가 “준 제이, 우리는 준지라고 말하는데요. 준지 디자이너의 의상입니다. 현지 디자이너를 지원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라는 말로 복장을 설명할 때는 가만히 있었던 그가. 엉뚱한 타이밍에 그 얘기들을 연상시키는 얘기를 갑자기 꺼낸다.
“저는 다른 분들보다 조금 늦게 왔어요, 공항이 텅텅 비어 있었어요. 저는 스스로 한복을 입고 있지는 않은데 그래도 행복해요.”
선배의 돌발 발언에 ‘진지맨’ 오스틴 버틀러는 얼른 “죄송해요, 공항이 비어 있다니. 스태프가 밥 먹으러 갔나 봐요”라고 말하는가 싶더니 역시 유머였다. “그림을 받아서만은 아니고 저도 스텔란처럼 행복해요”.
공항 환영인파가 없었다거나 나도 한국을 좋아하는데 한복을 받지 못했다고 불평하는 소리로 들리지 않게, 그러나 한국에 대한 사랑은 충분히 드러나게 표현하는 센스에 후배들도 회견장의 참석자들도 다 함께 웃었다. 스카스가드의 말에는 당연히 살아온 세월에 걸맞은 깊은 안목도 담겨 있었다.
“‘듄친자’라는 표현, (다른 나라의) ‘듄’ 팬클럽들이 좋아할 것 같아요. 전 세계적 현상 같지만, 한국이 가지고 있는 영화에 대한 사랑 덕분입니다.”
“‘듄’은 좋은 영화입니다. 무엇보다 ‘영화’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영화관에서 보세요, 아이폰으로 보자면 별로고요.”
보통 언론인이 참석하는 행사에서는 감독에게 가장 많은 질문이 간다. 이번엔 내한 배우들이 워낙 세계적 유명인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덜했다. 그러나 드니 빌뇌브 감독은 가장 중요한 관람 포인트이자 주제의식에 대해 선명하게 밝혔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말하길, ‘듄’은 이 시대 ‘(스타워즈:) 제국의 역습’이다. 공감합니다. 원작 소설의 작가 프랭크 허버트는 책을 통해 맹목적 지도자에 대해 경고합니다. 허버트의 원작에 충실하게 만들려 했습니다, 경고의 메시지도 충실히 담고요.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에 대한 경고, 컬트 집단이 생기게 되고 국민이 컬트 집단이 되면 위험하다는 원작 메시지에 충실했습니다. ‘듄’ 시리즈는 젊은 청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자기 길을 찾아가는, 유전(DNA)을 버리고 교육 등 훈련을 통해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 인생을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게 책에 담겨 있습니다.”
“한 남성이 다른 문화에서 온 여성을 사랑하게 되는 것에 큰 영감을 받아 시작한 영화입니다. 파트 2는 전편에 비해 훨씬 더 강력합니다. 평생 했던 작업 중 가장 힘들었습니다, 액션신이 정말 많아 저로서도 겸손해지는 작업이었습니다.”
서기 102세기 말을 미래로, 낯설고도 드넓은 우주 환경에 새로운 제국을 건설하고, 그 거주 환경에 맞춰 또 지역별 민족별 서로 다른 옷들을 입혀, 생경한 괴생명체와 우주선과 무기 등을 고안한 뒤, 특이한 에너지원을 둘러싼 전쟁과 그럴싸한 전설을 바탕으로 한 메시아를 출현시켜 현재의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이 중요한가의 문제를 다시금 제시하는 영화 ‘듄’.
당연히 한 편의 영화로 담아질 수 없는 거대 서사시이기도 하지만, 간단히 글로 적기에도 쉽지 않은 이야기를 영상으로 우리 눈앞에 생생하게 펼치려니 얼마나 많은 이이의 아이디어와 공력이 필요했을지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제작비를 얼마 투입했다, 무려 이 배우가 주연이다, 그보다 관객을 감동하게 하는 건 ‘공’이다. 영화 몇 편 흥행하면, 시리즈 좀 잘되면 잊기에 십상인 ‘공들인’ 결과물을 한국영화로 다시 보고 싶다. 어려울 때일수록 기본 바탕이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는 영화 ‘듄’ 시리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