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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이별 후에…’가 아닌 이유 ‘사랑 후에 오는 것들’ [OTT 내비게이션㉓]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입력 2024.10.29 13:26
수정 2024.10.29 17:41

눈빛부터 사랑이 멈추고 난 후의 두 연인 ⓒ이하 쿠팡플레이 제공

처음엔 제목이 왜 ‘이별 후에 오는 것들’이 아니고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인지 몰랐다. 드라마를 보노라니 그 의미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별 후에’는 그가 없다, 나만이 있다. ‘사랑 후에’는 사랑한 두 사람이 오롯이 남는다.


사귀는 동안을 ‘사랑 후’ ‘사랑하기 시작한 후’라고 하지는 않는다. ‘사랑 후’라는 말에는 이미 두 사람의 마음이 달라졌음이 내포된다. 그러함에도 ‘이별 후’라고 하면 마음뿐 아니라 관계마저도 차갑게 끝난 느낌이 드는데, ‘사랑 후’라고 하면 사랑의 감정을 현재 서로 나누고 있지는 않다고 해도 그리움이나 아쉬움 같은 또 다른 감정이 존재하는 느낌에 더해 적어도 두 사람이 철천지원수로 돌아섬 없이 추억으로 남은 인상을 준다.


첫눈에 서로를 알아본 준고와 홍이(왼쪽부터) ⓒ

그래서일까. 앞으로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지 결말이 어떨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도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라는 제목은 아련한 멜로를 기대케 했다.


실제로 보니 그 이상이다. 이 건조한 계절을 촉촉이 적시는 가을비, 세상살이에 찌들고 상처받은 마음이 쌀쌀한 날씨에 덧나지 않게 포근하게 보듬는 손길이 드라마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다. 연애 경험이 없어도 공감할 마음의 지점들이 있고 위로를 주는 서사. 본래 사랑이 그렇듯 알콩달콩 달콤한 봄볕의 사랑도, 서로를 알아가고 맞춰가며 서로를 아프게도 하고 성숙해지기도 하는 단풍의 사랑도 담겨 있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변할 리 없고 끝도 없을 ‘영원한 사랑’을 확신하던 그때 ⓒ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주인공들의 사랑엔 남과 여라는 생물학적 대립 항에 한국과 일본으로 국적과 문화적 배경이 다른 데서 오는 예고된 마찰도 난관으로 끼어든다. 특히나 여자 주인공 최홍(이세영 분)이 일본 도쿄로 유학을 간 상황에서 남자 주인공 아오키 준고(사카구치 켄타로 분)를 만나는 설정이다 보니, 홈그라운드에서 사랑을 시작한 준고와 아는 이 없는 타국에서 부초처럼 불안한 감정을 지닌 채 사랑하게 된 홍이 사이엔 감정적 평등이 쉽지 않다.


목숨이 오가는 전쟁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을 비롯해, 사실 작품 속 모든 사랑은 난관을 딛고 이뤄지는 것이 기본인지라 두 사람 앞에 놓인 난제들은 걱정을 부르기보다 ‘얼마나 더 크고 뜨거운 사랑이 될 것인가’에 관한 기대를 낳는다. 예상대로 두 사람은 그림 같은 사랑을 시작한다. 일본 이름 준고를 한국식 ‘윤오’로, 한국 이름 홍을 일본식 ‘베니’로 바꿔 두 사람만이 아는 호칭을 쓰기도 하고 서로를 한없이 배려하고 아끼며 사랑을 키워 간다.


함께 있어도 각자인 ‘고독’, 사랑이 사그라지는 슬픔은 종종 분노로 표출된다 ⓒ

사랑에도 인생처럼 생로병사가 있어서 화창한 봄날 같고 청량한 여름 같던 두 사람의 사랑에도 낙엽이 지고 마른 나뭇가지가 되어 눈을 맞게 된다. 애정 표현이 부족한 윤오와 표현을 바라는 베니, 윤오 말고는 기댈 곳 없는 베니와 이제 사랑하는 이도 생겼으니 인생을 더 안정화하기 위해 집밖의 경제활동을 늘린 윤오. 두 사람은 한 공간에 존재하기는 하되 일상을 ‘함께하지 않는’ 빈 껍데기 짝꿍이 되어 간다.


이세영은 한층 성장한 연기력으로 ‘홍이의 고독’을 독립적이지 못한 의존이나 아이 같은 투정으로 오해되지 않고 쓸쓸한 ‘인생의 단면’으로 다가오도록 풍부히 전달한다. 사카구치 켄타로는 홍이를 외롭게 하는 준고의 어긋난 선택을 사랑보다 제 앞가림부터 챙기는 남자의 이기심으로 보이지 않게, 책이 되어 5년 후에 공개한 ‘뒤늦은 후회’를 집착이나 무례가 아니라 ‘홍이에 관한 깊은 이해의 노력’으로 비추게 섬세하게 연기했다.

우리의 감성을 사람 안의 영역에 머무르게 하는 힘을 지닌 ‘멜로’ ⓒ

베니와 윤오가 재회해야 해피엔딩은 아닐 것이다. 사랑 후에 찾아온 각양각색의 감정들, 말 그대로 갖은 모양과 색깔을 띤 저마다의 복잡다단한 감정들을 마음의 창고 안에 잘 담아두는 것 역시 내가 했던, 우리가 나눴던 사랑을 이별로 휘발시키지 않는 ‘아름다운 엔딩’ 아닐까.


‘이별 복수’, ‘이별 살인’이라는 표현이 사회 기사에 쉼 없이 등장하는 요즘이다. 깊이 사랑했을수록 사랑 후에 닥쳐오는 것들을 순리대로 받아들이고 변화된 관계를 존중하는 것이 문화적 교양이고 사회적 예의다.


영화, 드라마, 책 등의 분야에서 가을이 멜로 대세인 때가 있었다. 교양과 예의의 바탕이 되는 부드러운 감성을 멜로로 자연스레 익혔다. 깊어 가는 가을 쿠팡플레이 드라마 ‘사랑 후에 오는 것들’(감독 문현성, 극본 정해심·문현성, 제작 ㈜실버라이닝스튜디오·CONTENTS SEVEN)을 추천하는 이유 중 하나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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