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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2005 이전, 2024 윌리 웡카의 ‘초콜릿 진심’ [홍종선의 명장면⑦]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입력 2024.02.19 08:46 수정 2024.02.19 08:46

조니 뎁 있는데 티모시 샬라메의 윌리 ‘웡카’가 필요했던 이유

초콜릿 공장주가 되기 전 윌리 웡카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영화 ‘웡카’에서 윌리를 연기한 배우 티모시 샬라메 ⓒ이하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너무 좋은 건 그대로 꽁꽁 얼리거나 박제해 마음속에 고이 간직하고픈 욕심을 부르기도 한다.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감독 팀 버튼, 2005)의 초콜릿 천국 주인, 배우 조니 뎁이 탄생시킨 윌리 웡카가 그렇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영화 ‘웡카’(감독 폴 킹, 2024)가 나온다고 했을 때, 배우 티모시 샬라메를 매우 좋아하면서도 ‘굳이?’라는 반응이 마음 안에서 먼저 일었다.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찰리 버켓 없는 윌리 웡카 이야기는 필연이었나, 로 생각이 바뀌었다.


1971년 영화 ‘윌리 웡카와 초콜릿 공장’. 제목엔 찰리가 없지만 영화는 원작소설처럼 아이들 중심의 어린이를 위한 판타지였다 ⓒ

사실, 찰리가 제목에서부터 없어진 건 1971년부터 그랬다. 1964년 발간된 로알드 달의 어린이소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1971년 뮤지컬영화 ‘윌리 웡카와 초콜릿 공장’(감독 멜 스튜어트)이라는 제목을 달고 스크린으로 옮겨졌다. 영화의 제작을 지원한 제과업체 네슬레가 초콜릿 메이커를 부각하려는 목적으로 제목에서 어린이 주인공인 찰리를 빼고 윌리 웡카를 넣은 것이다.


그것 때문은 아니었겠으나 영화는 개봉 당시 주목을 받지 못했고 우여곡절 끝에 파라마운트의 판권이 워너 브러더스로 넘어가는 상황에 이른다. 하지만 1980년대 TV 방영과 집에서 보는 비디오테이프 인기 속에 재조명되고, 1994년 개봉 25주년 기념 재개봉에 이르러 되레 더 큰 흥행의 맛을 보았고, 2014년에는 미국 국립영화 등기부에 올라 영구 보전되는 영예를 누리고 있다.


작품 구성이 탄탄하고, 컴퓨터 그래픽 등 특수효과가 없던 시절 아이디어와 제작진의 땀을 통해 원작 동화의 마법과 환상 분위기를 잘 표현했으며, 윌리 웡카 역의 진 와일더를 비롯해 출연 배우들의 연기도 안정적이다. 뮤지컬영화답게 윌리 웡카와 찰리 엄마, 움파룸파 등 어른을 비롯해 찰리와 버루카 등 아이까지 등장인물들이 부르는 노래가 귀에 속속 스미고, 아카데미 시상식 음악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2024년 ‘웡칸’의 공간이나 의상은 1971년 판에 가깝게 현실적이지만 영화의 색채와 분위기는 2005년 판처럼 환상적이다 ⓒ

잠시 삼천포로 빠져 노래 얘기를 하자면, 2005년 판에는 소인 움파룸파들이 부르는 노래만 남고 공장 초대 행사가 시작될 때 이후 녹아내릴 초콜릿 인형들이 부르는 웰컴 송이 있기는 하지만, 뮤지컬영화가 아닌 만큼 가사 없는 연주곡들이 주류를 이룬다.


2024년 ‘웡카’에서는 1971년 윌리 웡카 역의 진 와일더가 불렀던 ‘Pure Imagenation’(순수한 상상)을 티모시 샬라메의 노래로 들을 수 있고, 1971년 판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움파룸파의 노래도 휴 그랜트의 맛깔난 소화로 귀에 착착 감겨 중독성이 강하다.


윌리가 부르는 ‘A Hatful of Dreams’(모자 가득한 꿈)와 ‘You’ve Never Had Chocolate Like This’(이런 초콜릿은 처음일 거야), 누들과 윌리의 듀엣곡 ‘For a Moment’(잠시라도), 세탁소 식구들과 악덕 고용자들이 함께 부르는 ‘Scrub Scrub’(박박 문질러) 등의 명곡들이 추가됐다. 신기한 건 좋은 노래가 9곡이나 나옴에도 1971년 판처럼 뮤지컬영화로 다가오지 않고, 극영화에 노래가 자연스레 녹아든 느낌이다. 노래와 안무를 삽입하느라 이야기 전개를 잠시 멈추는 여느 뮤지컬영화와 달리, 노래를 부르는 동안에도 스토리가 계속 흐른다.


2005년 영화의 제목 ‘찰리와 초콜릿 공장’엔 윌리 웡카가 없지만, 포스터의 중심은 이미 웡카였다 ⓒ

다시 글 초반으로 돌아가서. 우연으로 시작한 일이 필연이 되는 일이 흔하다. 어린이 찰리가 주인공이었던 소설이 1971년, 내용은 그대로라고 해도 어른 윌리를 내세운 제목으로 영화화되더니. 2005년 판은 소설의 원제목 그대로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됐고 찰리 역의 어린이 배우 프레디 하이모어가 연기를 아주 잘했음에도, 불세출의 배우 조니 뎁이 판타지영화의 마법사 팀 버튼 감독과 짝을 이뤄 빚은 초콜릿 천국의 창조주 윌리 웡카가 너무 강력했다. 조니 뎁이 발성과 말투를 바꾸고 변화를 준 윌리는 이 콤비가 짝을 이룬 영화 ‘가위손’(1991)에서 팀 버튼이 건설했던 것 이상으로 환상적인 초콜릿 왕국에서 마음껏 놀았다.


그렇게 점점 중심이 찰리에서 윌리로 기울던 이야기는 2024년 판에서는 제목부터 ‘웡카’다. 시간적 배경이 웡카가 초콜릿을 만들기 시작해 결국 공장을 짓는 시점에서 끝나기 때문에, 찰리는 없다. 정확히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1971년 판과 2005년 판은 연대기적으로 같은 시기다. 윌리가 15년 동안 공장을 운영하다 산업스파이들에 의해 특별한 레시피가 누출된 후 3년간 공장을 쉬고 재개장하는 시점이 배경이다. 말하자면 2024년 영화의 결말 시점으로부터 18년 정도가 흐른 시점인데, 찰리는 이제 열 살 남짓의 나이이므로 ‘웡카’에서는 출생 전이다. 제작 연도로는 최신작이지만, 내용으로는 1971년과 2005년 영화 이전의 이야기, ‘프리퀄’ 작품이다.


왼쪽부터 프로드노즈, 슬러그워스, 피켈크루버 ‘초콜릿 카르텔’ 3인방 ⓒ

여담으로, 1971년 영화에서 초대된 5명의 아이와 부모에게 접근해 웡카의 초콜릿 공장에서 아무거든 시제품을 가져다주면 보상해 주겠다고 말하는 어른이 나오는데, 이때 자신을 ‘슬러그워스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실제론 아이들을 테스트하는 웡카의 직원인데, 이 말을 통해 웡카의 공장을 닫게 한 악질 스파이가 슬러그워스 쪽 사람임을 확인시킨다.


이번 2024년 ‘웡카’에서 슬러그워스의 실물을 확인할 수 있다. 대형 초콜릿 제조업자인 슬러그워스는 동종 업체 대표들인 피켈그루버(‘가난’이라는 단어를 말하지 못하고 들으면 헛구역질하는), 프로드노즈와 공동 구축한 성당 지하 거대한 비밀금고에 저장한 초콜릿을 비자금으로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이를 무마한다.


지금까지 이런 초콜릿은 없었다!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꿈을 심는 초콜릿을 만드는 윌리 웡카에 위협을 느낀 독과점 3인방은 윌리가 제품을 판매할 수 없도록 훼방 놓는 것으로 모자라 영구 축출을 도모한다. 세탁소에서 만나 동고동락한 동료들을 위해 ‘슬러그워스’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떠나려던 윌리는 함정이었음을 깨닫고 탑에 갇힌 누들(칼라 레인 분)을 구하기 위해 친구들과 손잡고 거사를 단행한다.


왼쪽부터 윌리 웡카(티모시 샬랴메 분)와 움파룸파(휴 그랜트 분) ⓒ

혼자인 것 같은, 닫힌 초콜릿공장 안에서 외톨이로 지낸 고독감이 물씬 풍겼던 1971년과 2005년의 윌리 웡카와 달리 2024년 ‘웡카’의 윌리는 사람을 믿고 사람 안에 있고 친구를 믿고 친구와 연대한다.


그 시작에는 해마다 아들의 생일선물로 사각 초콜릿바를 만드는 엄마가 있었다. 유품으로 남은 마지막 초콜릿을 품에 간직해 오던 윌리는 ‘내 사람’ 5인을 만났을 때 엄마의 초콜릿을 나눠 먹는데, 엄마는 모든 걸 미리 내다봤던 것처럼 정확히 6조각 초콜릿이다(1971년과 2005년 영화에서는 웡카 초콜릿바 안에서 골든 티켓을 찾은 5명의 어린이를 초대한다). 심지어 어머니가 남긴 편지는 금색 종이다, 그래서 골든 티켓이었을까.


엄마와 둘이었던 소년 윌리는 이제 청년이 되어 5명의 친구와 새로운 유대를 쌓으며 점점 어른으로 성장한다. 아니, 한 명 더 있다. 윌리가 초콜릿의 중요한 재료인 커피빈을 땄던 룸파랜드에서 온 주황색 피부에 초록색 머리, 흰색 눈썹을 지닌 사나이. 본인 설명으로는 ‘우뚝이’, 실제로는 룸파랜드 평균 키보다 6mm 작은 12인치(약 30cm) ‘반바지’가 뜻을 같이하며 함께 초콜릿 공장을 세운다. 존재감 큰 배우 휴 그랜트가 맡다 보니 1971년이나 2005년에서처럼 움파룸파가 떼로 나오지 않고 혼자로도 충분하다.


윌리와 누들(칼라 레인 분, 왼쪽)의 깊은 우정과 연대 ⓒ

찰리 없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 후속편이 아니라 초콜릿 공장 탄생기와도 같은 작품 ‘웡카’. 영화를 봤거나 볼 관객들은 아실 것이다, 귀여운 아이들 없이 동화 같은 이야기를 다시 꺼낸 이유. 가난한 소년 윌리 웡카가 초콜릿 공장을 지을 수 있었던 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잃지 않았던 꿈, 별별 것 다 나오는 마법 모자처럼 별의별 아이디어가 들어있던 윌리의 머릿속, 그리고 그것을 함께 실현해낼 마음의 동료가 있었던 덕분이다.


무엇보다 그것을 나 혼자서만, 우리끼리만 차지하는 게 아니라 나눌 때 더 커진다는 것을 ‘엄마의 초콜릿’과 친구들을 통해 배웠다.


윌리 웡카의 초심, ‘초콜릿 진심’을 2024년 영화 ‘웡카’에서 배우 티모시 샬라메의 표현을 빌려 알고 나니 1971년과 2005년 영화 속 윌리의 꽤 엉뚱하고 독특했던 행동과 표정이 다르게 다가온다. 충분히 멋있는 웡카들이었지만, 조니 뎁의 윌리를 잊지 않을 테지만, 그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는 영화 ‘웡카’이기에 세상에 나올 이유가 충분했다.


초콜릿 환상의 극치. 산이 높으면 계곡이 깊듯 이때 사건이 발생한다 ⓒ

영화 ‘웡카’(수입·배급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에는 다른 건 몰라도 이 노래만큼은 꼭 극장에서 봤으면 하는 장면이 있다. ‘A World of Your Own’(너만의 세상)을 부르는 티모시 샬라메의 표정과 동작, 목소리만큼은 스크린에서 보고 듣기를 추천한다. 2005년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 포스터 속 조니 뎁과 오버랩 되는 티모시 샬라메를 만날 수 있다. 마치 나의 동심을 다시 마주치는 즐거움이랄까. 어린 찰리가 없어도, 언제나 푸릇한 꿈을 꾸는 윌리가 전하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다.


Here is the child that you left be hind

Here is the kid with the curious mind

Here is the wonder we used to feel

Back when the magic was real


여기는 어릴 적 당신이 있던 곳

너의 어릴 적 호기심이 있는 곳

마법이 진짜 같던 그때

그때 느꼈던 행복이 있는 곳


- 노래 ‘A World of Your Own’ 중에서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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