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韓 충돌에 갈피 잃은 '규제' 민생토론…"끊긴 흐름 아쉽다" [위기의 당정 ④]

김수현 기자 (water@dailian.co.kr)
입력 2024.01.23 07:01
수정 2024.01.23 07:01

尹 '감기 기운'으로 불참…韓과의 충돌 원인 관측

갑작스런 불참에 공들인 '규제 혁신' 주목 힘 빠져

"총선 80일, 국정·민심 드라이브에 차질 우려"

22일 서울 동대문구 한국콘텐츠진흥원 콘텐츠인재캠퍼스에서 '생활규제 개혁' 주제로 열린 다섯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행사 관계자가 자리를 정리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하기로 했으나 대통령실은 공지를 통해 불참한다고 알렸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5차 민생토론회에 불참했다. 대통령실은 이날 민생토론회 개최 30여분 전 윤 대통령의 공개 일정이 없다고 전격적으로 수정 공지했다. 표면상의 이유는 '대통령의 감기 기운' 탓이라지만 이유는 따로 있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윤 대통령이 돌연 토론회에 불참한 것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거취 문제를 놓고 벌어진 충돌 때문으로 보인다. 정치권에 따르면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은 전날 한 위원장에게 김 여사 명품가방 수수 논란 대응에 관한 섭섭함을 표하며 사퇴해달라는 뜻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한 위원장은 "국민을 보고 나선 길"이라며 "할 일을 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내고 사퇴를 거부했고, 이날 오전 출근길에는 "내 임기는 총선 이후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안다"며 사퇴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와 관련 대통령실은 "비대위원장 거취 문제는 용산이 관여할 일이 아니다"면서도 "한 위원장에 대한 기대와 신뢰를 철회했다는 논란과 관련해, 이 문제는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 공천에 대한 대통령의 강력한 철학을 표현한 것"이라고 밝혔다.


윤석열정부 3년차를 맞아 선보인 민생토론회는 새로운 정책소통 공간이다. 대통령 신년업무 보고를 겸해서 국민과 주요 정책 사안에 대해 토론회를 하는 방식이어서다.


윤 대통령은 앞서 네 차례 개최된 민생토론회를 모두 직접 주재했다. '민생'과 '행동하는 정부' 메시지를 실행에 옮기고, 장·차관이 천편일률적으로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형식에서 탈피해 테마 중심의 토론회로 전환하려는 취지다. 국민과 전문가가 참여하는 토론회 형식을 업무보고에 도입한 것은 역대 정부 중 처음으로, 용인·고양·수원·한국거래소를 차례로 돌았다.


윤 대통령이 주재할 예정이었던 다섯 번째 '국민과 함께 하는 민생토론회'의 주제는 '규제'였다. 대통령 대신 마이크를 잡은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은 이날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말기 유통법) 폐지 △도서를 정가대로 판매하게 하는 도서정가제 개선 △대형마트 의무휴업 공휴일 지정 등 영업 규제 개선 3개 주제를 논의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불참 결정이 '규제 혁신' 주목도에 힘이 빠지게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최근 민생과 맞닿은 중요한 규제들을 해소하는 데 집중해 왔다. 집권 3년차를 맞아 전 내각에 개혁을 연일 강조함에 따라 국무총리실 TF도 구성됐다. 그간 총리실이 운전대를 잡았던 규제 개혁 성과를 적극적으로 강조하는 한편, 윤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강조한 '문제 해결을 위해 행동하는 정부' 추진의 일환이다.


특히 윤 대통령이 민생토론회를 통해 굵직한 이슈를 주도해 온 터라 대통령실 내부에서는 토론회가 국정 운영 주도권을 안정적으로 가져가는 장치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여권에서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이날 토론회가 민심을 다지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이날 토론회에 불참하면서 관심은 급속하게 식었다. 규제가 국민의 자유를 제약하고 기득권의 독과점 이익을 보장하는 구조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정부 국정 기조가 상대적으로 덜 강조됐다는 평가다.


윤 대통령이 최근 민생을 외쳐 왔지만, 당정 갈등을 이유로 토론회에 불참하면서 향후 상당 기간 국정이 마비 상태에 빠져드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총선을 앞둔 정치적 격변기이기 때문에 이날 발표된 세 가지 대표 생활 규제 개혁 시행 시점이 불명확했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전부터 대통령이 민생을 강조하고 토론회를 주도해 온 터라 국정 운영 주도권과 민심을 안정적으로 가져가는 효과가 있었지만, 오늘 취소로 흐름이 끊겨 아쉽다"면서도 "총선이 80일 정도 남은 시기다. 하루빨리 양측 입장이 조율되는 게 좋다"고 지적했다.

김수현 기자 (wate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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