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뀔 때쯤', 그도 와야할텐데 [D:쇼트시네마(54)]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3.11.24 12:45 수정 2023.11.28 08:57

백용욱 감독 연출

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 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학교를 휴학하고 엄마의 세탁소 일을 도와주고 있는 유선(임지연 분). 어느 날 처럼 세탁소를 지키고 있다 반가운 손님을 만난다. 대학시절 좋아했던 선배 재민(윤지온 분)이다. 셔츠에 이물질이 묻은 재민은 취업을 한 후, 유선의 세탁소 주변에서 살고 있었다. 유선은 배달을 해주겠다며 재민의 번호와 주소를 받아낸다.


일상에 재민이 잠깐 등장했을 뿐인데 유선의 일상이 따뜻해진다. 동생은 유선의 짝사랑을 놀리지만 개의치 않는다. 엄마는 재민의 세탁물을 동생에게 배달하라 시켰지만 유선이 나선다. 옷매무새를 다듬고 거울을 몇 번이나 본 후에야 재민은 집 벨을 눌러본다. 그러나 재민의 현관문을 연 건 낯선 여자였다.


설렜던 유선의 마음은 한 순간에 곤두박질 친다. 햇살이 한 줄기 비추는가 싶더니 다시 어둠이 짙게 깔렸다. 전화를 해볼까 몇 번이나 시도하지만 결국 포기한다. 마감 시간에 찾아온 손님의 옷도 받아줄 여유가 없다.


얼마 후 세탁소에 재민의 집에 있었던 여자가 찾아온다. 유선은 집 주소를 받으며 여자가 그 곳에 사는지 물어본다. "오빠의 집"이라는 대답이 돌아오자, 그치지 않고 어떤 관계인지까지 묻는다. 그제야 유선의 머리 위로 다시 빛이 찾아오고 웃음을 찾는다. 쌀쌀하지만 쾌청한 하늘을 바라보는 유선이, 목을 빼고 봄을 기다린다.


'계절이 바뀔 때쯤'은 반복되는 일상에 설렘이란 감정이 들어선 감정 변화들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짝사랑하는 여자의 심리가 반영돼 있다. 세탁소에서 일본 영화를 보는 유선의 눅눅했던 얼굴이 환해지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치자 실망감에 마음이 추락하는 일상들까지 세심하게 그려졌다.


혼자 호감을 품고, 추측하고, 실의에 빠진 후, 다시 웃기까지 배우 임지연의 얼굴은, 주변의 누군가, 혹은 과거의 나를 쉽게 떠올리게 만든다. 엔딩 크레딧에는 이와이 슌지 감독 이름이 삽입됐다. 이와이 슌지 감독에게서 영감을 받은 걸까. 엔딩 크레딧을 본 후 이와이 슌지 감독이 빛을 활용한 서정적인 영상미가 겹쳐 보이는 것 같다. 백용욱 감독 연출. 러닝타임 25분.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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