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5개월 앞두고 박근혜와 끈끈한 유대 다지는 尹, 왜?
입력 2023.11.08 00:05
수정 2023.11.08 10:23
박정희 추도식서 만난 뒤 12일 만에 재회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서 1시간가량 환담
"박정희 시절 배울 점, 국정 반영…놀라워"
친박 출마설에 흔들릴 수 있는 보수 표심 단속
정권의 명운을 가를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끈끈한 유대 관계를 다지기 위해 상당히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윤 대통령은 7일 대구를 방문해 박 전 대통령과 만났다. 지난달 26일 서울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44기 추도식'에서 만난 지 12일 만에 재회한 것이다.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경북 경산)와 우병우 전 민정수석(경북 영주·영양·봉화·울진) 등 박근혜 정부 출신 인사들이 내년 총선에서 국민의힘 공천을 받지 못하면 무소속으로라도 TK(대구·경북) 지역에 출마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있는 만큼, 자짓 흔들릴 수 있는 보수층 표심을 미리 단단히 붙잡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또 윤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은 2016년 국정농단 사건 특별검사 수사팀장과 피의자 신분으로 만났던 악연이 있는 만큼, 정치적 화해의 장면을 수시로 보여줘 '결자해지'를 통한 보수대통합의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날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박 전 대통령의 영향력은 예전만큼 못하지만, 보수 진영에서 갖는 상징성은 여전히 크다"며 "윤 대통령은 보수 적자도 아니고, 정치적 기반을 보수 본진 TK에 두고 있는 것도 아닌 만큼, 보수 진영의 지지를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선 박 전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의 신당 추진설 등으로 보수 진영 분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집안 단속에 나섰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윤 대통령은 이날 대구 엑스코(EXCO)에서 열린 '2023 바르게살기운동 전국회원대회'에 참석하고 칠성종합시장을 방문해 시민을 만난 뒤 박 전 대통령의 사저를 찾았다. 이날 윤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과의 만남은 기자단에 사전 공지되지 않은 비공개 일정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윤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으로 사저를 방문했을 땐 집 안에서 맞았지만, 이날은 사저 현관 계단 아래까지 내려와 반갑게 맞이했다고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이 전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사저 현관의 진열대에는 박 전 대통령이 지난달 부친 추모식 행사에서 윤 대통령과 함께 오솔길에서 내려오는 사진이 놓여있었다. 박 전 대통령은 그 사진을 가리키며 "대통령께서 좋은 사진 보내주셔서 여기에 가져다 놓았다"고 했다.
윤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은 거실에서 1시간가량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환담했다.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이도운 대변인, 유영하 변호사가 배석했다.
박 전 대통령은 윤 대통령이 좋아하는 과일(감·배)과 밀크티를 준비하는 등 각별히 배려했다. 박 전 대통령은 윤 대통령이 선호하는 홍차의 농도까지 미리 파악해 맞췄다고 한다.
이날 두 사람의 대화는 날씨, 사저의 정원, 달성군 비슬산 등 가벼운 주제로 시작해 정상외교,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 성장으로 이어졌다.
윤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당시 국정운영을 되돌아보면서 배울 점은 지금 국정에도 반영하고 있다"며 "산업통상자원부 창고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주재한 수출진흥회의 자료를 찾았는데, 등사된 자료가 잘 보존되어 있어 박정희 대통령 사인까지 남아 있었다"고 했다.
이어 "수출진흥회의 자료를 읽어보니 재미도 있고, 어떻게 당시에 이런 생각을 했는지 놀라웠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며 "온고지신이라고 과거의 경험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박 전 대통령은 "어떻게 그걸 다 읽으셨느냐"며 "좋은 일자리는 기업이 만드는 것이니깐 회의에서 애로사항을 듣고 바로 해결해 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이외에도 두 사람은 재임 시절 정상외교 활동과 최근 수소차 등 산업 동향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박 전 대통령이 대화를 마무리하며 "해외 순방 일정이 많아 피곤이 쌓일 수 있는데 건강관리 잘하시라"고 덕담을 건네자, 윤 대통령은 "지난번에 뵈었을 때보다 얼굴이 좋아지신 것 같아 다행이다.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란다"고 했다. 윤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은 환담 후 잠시 정원 산책을 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이 사저를 나설 때 박 전 대통령이 차 타는 곳까지 배웅하려 했으나, 윤 대통령이 간곡히 사양하며 대문 계단에서 "들어가시라"고 하자, 유영하 변호사가 대신 차까지 윤 대통령을 배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