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태섭 창당하던 날, 조정훈 합당…제3지대, 있다? 없다? [총선 쟁점은 ⑤]

김은지 기자 (kimeunji@dailian.co.kr)
입력 2023.10.01 08:00
수정 2023.10.01 08:00

한국의희망·새로운선택 깃발 든 가운데

내년 총선 '돌풍'에 회의적 시각 대체적

"대선주자·지역 기반·팬덤 부재하다"

과거 성공 사례 단 3개 정당에 그쳐


안철수·천정배 공동대표를 비롯한 국민의당 지도부가 지난 2016년 2월 2일 대전 한밭체육관에서 열린 국민의당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행사장에 입장하고 있다. ⓒ뉴시스

금태섭 전 의원이 창당을 추진하는 '새로운선택'이 양극화·극단화된 정치 현실을 비판하며 창당발기인대회를 열었던 지난달 19일, 조정훈 시대전환 대표는 국민의힘과 합당을 선언하며 "제3지대는 없다"고 단언했다. 신생 정당에 실험의 기회를 주기보다는 거대 정당이 책임감을 갖고 국정을 운영해 국민의 불안을 해소해줘야 한다는 것이 조 대표의 발언 취지였다.


양향자 의원이 주도하는 한국의희망도 8월 28일 창당대회를 열고 공식 출범을 선언했다. 정의당도 당초 10월 예정됐던 당대회를 10·11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이후인 11월로 미뤄 신당 창당 수준의 '재창당'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창당준비위원회' 상태인 정당만 해도 새로운선택을 비롯해 한국농민당·페미니즘당·한반도미래당·국민주권당·국민정책당·사회민주당 등 수 개에 이른다.


30일 정치권에 따르면 내년 총선이 6개월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신당들이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지만, 이들 신당들을 두고 '제3지대 정당'이 아닌 '군소정당'이라는 수식어부터 나오는 실정이다. 정치권에서는 '과연 내년 총선에서 제3지대가 돌풍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군사 독재 시절의 관제야당을 제외하고 1988년 이후 소선거구제 하에서 탄력을 받았던 '제3지대 정당' 성공 사례로는 현대그룹 창업주인 정주영 회장이 창당했던 1992년 14대 총선 당시의 통일국민당,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이끌던 1996년 15대 총선 당시의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안철수 의원이 중심이 됐던 2016년 20대 총선 당시의 국민의당 정도가 꼽힌다.


제3지대 정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3가지 조건이 선결돼야 한다. △기반이 되는 지역 △두터운 팬텀 △유력 대선 후보를 보유했는지의 여부가 거대 양당 체제를 깰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정주영 통일국민당 창당준비위원장(왼쪽)이 1992년 1월 28일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열린 국민당 종로지구당창당대회에서 종로 지구당위원장으로 새로 선출된 이내흔 위원장의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충청의 맹주' 김종필 필두 독자 세력화 성공 '자민련'
창당 한달만에 31석 확보했던 정주영의 통일국민당
안철수계·호남 의원들 '국민의당' 20대 총선 돌풍


자민련은 2006년 한나라당에 흡수 통합 되기 전까지 10여 년간을 제3지대 정당의 대명사로 인식돼 왔다. 김종필 전 총리가 창당한 자민련은 한국 역사상 가장 오래 존속한 제3지대 정당이란 평가를 받는다.


김 전 총리는 자민련의 기치를 '충청 기반의 보수 정당'으로 내걸었으며 실제로 '충정의 맹주'로서 큰 위력을 발휘했다. 자민련은 1996년 15대 총선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신한국당 139석, 김대중 총재가 이끌던 새정치국민회의 79석에 사이에서 50석을 얻으며 성공적으로 교섭단체를 꾸렸다. 독자 정치세력화에 성공하고 '제3지대 돌풍'을 끌어낸 자민련은 전성기를 누렸다.


이보다 앞서서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대선에 도전하며 창당했던 국민당이 '제3지대 돌풍'을 일으켰다. 정 명예회장은 1992년 국민당을 창당했고, 창당 한 달 만에 치러진 14대 총선에서 31석을 확보해 교섭단체 구성에 성공했다. 지역 기반보다는 '정주영'이란 확고한 대권주자를 통해 이끌어낸 유의미한 결과였다.


하지만 곧 이어진 대선에서 정 명예회장이 패배하고, 문민정부 초기 현대그룹이 수난을 겪으며 정 명예회장의 제3지대 실험은 일찌감치 막을 내렸다. 정 명예회장은 이듬해 국회의원직 사퇴와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가장 최근의 제3지대 정당 성공 사례로는 2016년 20대 총선에서의 국민의당이 있다. 국민의당은 안철수계 의원과 호남계 의원들이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탈당해 세운 정당이다. 국민의당을 주도한 안 의원은 청년멘토 등으로 불리는 '안철수 신드롬'을 바탕으로, 2012년 이미 대권주자로 체급을 높여 놓은 상태였다.


국민의당은 호남에서의 강력한 지지와 젊은 층의 지지를 바탕으로 38석을 차지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를 통해 국민의당은 '제2의 자민련'이란 수식어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2017년 안 의원이 대선에서 패배하면서 국민의당 역시 쇠락의 길을 피해가지 못했다.


김종필 총재를 비롯한 당직자와 당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이 1995년 3월 31일 마포구 신수동 13-4 인산빌딩에서 현판식을 가지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선진당, 2008년 18대 국회 18석 얻었지만
이회창·심대평 투톱에도 한계…19대 '5석' 몰락
16대 총선 목전 창당한 '민국당' 처참히 실패해


정당사를 살펴보면, 제3지대 정당이 성공하기 위한 필수 요건을 갖췄음에도 성공 가도를 달리지 못한 정당도 있다. 2008년 18대 총선 당시 자유선진당의 경우 돌풍을 일으켰다고 보기에는 다소 아쉬운 케이스다.


선진당에는 유력 보수 대권주자로 꼽히던 이회창 전 총재가 있었으며, 충청권 대통합을 통한 전국정당을 지향했다. 실제 이 전 총재가 예산 출신인 만큼 충청도 내 지지 기반이 있었고, 여기에 충남지사를 지냈던 심대평 대표까지 합류했다. 하지만 선진당이 받아 든 성적표는 원내교섭단체(20석)에서 단 2석이 모자란 '18석'이란 수치였다.


이후 선진당은 문국현 대표의 창조한국당과 공동교섭단체인 '선진과 창조의 모임'을 구성해 교섭단체가 됐으나, 2009년 심대평 전 대표가 선진당 탈당을 전격 선언하며 1년만에 교섭단체 지위를 상실, 비교섭단체로 전락했다. 2인자로 밀려난 심 전 대표와 이 전 총재의 갈등이 지속됐기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이 전 총재의 지도력을 둘러싼 의구심도 나왔다.


두 사람은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둔 시점에 '화합'을 강조하며 다시 의기투합했다. 하지만 이미 일련의 사태를 거치며 선진당이 가진 '한계'가 확고하게 드러난 뒤였다. 선진당은 19대 총선에서 5석으로 '몰락'하며 쇠퇴의 길에 접어들었다. 총선 실패 책임에 따라 창당 주역들은 모두 떠나게 됐고, 2012년 5월 선진당은 이인제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을 당대표로 선출, 새 당명을 '선진통일당'으로 확정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정치거물들의 잇단 합류에도 완전히 '실패'한 제3지대 정당 사례로는 2000년 16대 총선이 임박해 창당된 민주국민당(민국당)을 꼽을 수 있다. 제3지대 신당의 성공사례로 단 세 개의 정당만이 꼽히듯 실패 사례가 더욱 무수한 게 현실이다. 그 중 가장 참혹한 실패로 불리는 것이 민국당의 사례이다.


민국당은 총선을 앞두고 급하게 창당됐으며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에서 공천 탈락한 탈당파들에 의해 탄생했다. 한나라당에서는 정계의 '킹메이커'로 불리던 허주(虛舟) 김윤환 전 의원을 비롯해 조순 전 총재, 박찬종 전 의원, 이수성 전 국무총리 등이 모여들었고, 민주당에서는 이기택 전 총재와 김상현 전 의원 등이 모였다.


나름대로 쟁쟁한 인물들이 모였으나 낙천된 이들의 모임이라는 인식을 끝내 타파하지 못하면서 민국당은 총선에서 지역구 1석·전국구 1석 총 2석 확보에 그쳤다. 위에 언급된 '나름 쟁쟁한 인물'들은 한 명도 원내에 입성하지 못하고, 한승수 전 부총리와 강숙자 의원 두 명만이 원내에 진출했다. 확실한 구심점이 될 대권주자 없이 '고만고만한 중진들'만 다수 포진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과 정우택 국회부의장, 이종찬 신임 광복회장 등이 지난 6월 23일 국회도서관에서 김종필 전 총리 5주기 추도식에 앞서 열린 운정(雲庭) 김종필 기증 기록물 전시 개막식에서 전시된 훈장을 살펴보고 있다. ⓒ데일리안 DB
전문가들 "거대 양당 뛰어넘을 제3지대 정당 현실적 불가능"
황태순 "'떴다방식의 우후죽순격' 나타나는 정치결사체"
박상병 "대권주자 없으면 거대 양당과 합당한다는 생각"
신율 "지금 신당들, 세 가지 성공 조건 안 가지고 있어"


전문가들은 지금 상황에서 두 거대 정당을 뛰어넘을 수 있는 제3지대 정당은 "현실적으로 나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실제로 한국의희망과 새로운선택에는 아직까지도 거물급 정치인, 현역 의원들의 신규 합류 소식이 들리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22대 총선에서 이들 정당의 돌풍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 정치권 안팎의 중론이다.


우선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앞선 세 정당의 성공 사례와 관련 "통일국민당을 이끌었던 정주영 명예회장의 경우 같은 해 대선이 있음을 염두에 두고 당을 만들었다"며 "기존 DJ와 YS에 질려 있던 사람들이 '뭔가 대한민국의 경제신화를 이루었던 정주영이라는 사람이 괜찮을 것도 같다'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31석의 의석을 주게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2016년의 안철수 의원은 당시 문재인 민주당 대표와 싸워, 호남 세력을 몰고 나와 출마했을 때 2017년 대선에 도전할 수 있는 유력 대선 후보이기 때문에 38석이 모였다"며 "1996년 자민련에서도 김종필 전 총리는 만년 2인자였지만 대통령이 될 수도 있었던 사람이다. 무엇보다도 충청도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는 JP에 대한 대망론이 있었다"라고 부연했다.


황 평론가는 앞선 성공사례를 강조하면서도 내년 총선에서의 제3지대 돌풍 가능성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선 부정적인 시각을 보였다.


황 평론가는 "유권자 입장에서는 양당이 못마땅하기는 하지만 '떴다방 식의 우후죽순 격'으로 나타나는 어떤 정치결사체에 대해서, 어떻게 보면 지속 가능성 여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라며 "이런 정당에 내 표를 던지면 사표가 된다는 '사표 거부 심리'가 작동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심리가 작동하기 때문에 제3지대가 탄력을 받기 힘들다는 것이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제3지대 정당이라고 하면 두 거대 양당 체제를 뛰어넘어야 하는데, 적대적 공생관계의 정당 체제를 혁신하겠다고 하는 의지와 선거혁명에 준하는 민심을 얻어야 성공할 수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제3지대 정당의 필수 요건으로는 '대권주자'를 꼽으며 "대권주자가 없으면 대선 때 이 정당이 민주당이나 국민의당과 합당하겠다는 생각을 (유권자가) 할 수 있다. 두 거대 정당을 뛰어넘는 나름대로의 비전과 가치, 인물이 있어야 한다. 정당을 만든다고 다 제3지대 정당은 아니다. 그냥 제3정당이고 군소정당"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의희망·새로운선택의 내년 총선 돌풍 여부에 대해선 "어렵다"라고 내다봤다.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애당초 세 가지 조건이 있다. 지역기반이 있든지 두터운 팬덤이 있든지, 아니면 유력 대선 후보가 있든지 이 세 가지 조건이 돼야 하는데 지금 있는 정당들이 과연 그 세 가지 조건을 가지고 있느냐. 하나라도 갖추지 못하면 그 정당은 살아남을 수가 없다"라고 진단했다.


다만 민주당 비명(비이재명)계의 진로가 내년 총선에서 제3지대의 성패를 좌우할 '변수'로는 여겨지고 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분당 가능성에 대해선 당장은 선을 긋고 있는 것이 대체적 기류이긴 하나, 비명계에 대한 핍박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향후 움직임에 이목이 집중되는 상황이다.


신 교수는 최근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며 민주당이 내홍을 겪고 있는 것을 두고는 "(더민주전국혁신회의로 대표되는) 원외 친명의 목소리가 강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결국 비명들은 상당한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여운을 남겼다.

김은지 기자 (kimeunji@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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