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된다” 황금세대가 일으킨 한국 수영, 비웃던 중국·일본 압도 [항저우 AG]

김태훈 기자 (ktwsc28@dailian.co.kr)
입력 2023.09.26 06:01
수정 2023.09.26 08:45

남자 계영 800m 아시아신기록 수립..단체전 사상 첫 금

21년 만에 자유형 50m 금메달도 획득...중국 독주 저지

한국 남자 수영대표팀. ⓒ 뉴시스

“우리도 된다.”


중국이 아시아 수영 최강 자리를 탄탄히 하고, 일본이 급속도로 발전할 때, 중국과 일본 언론들은 “박태환 없는 한국 수영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고 비웃었다.


굴욕의 시간은 끝나가고 있다. 그동안 특급 스타 한 명에게 기대었던 한국 수영은 유례없는 ‘황금세대’를 맞이하고 있다. '개최국' 중국은 수영 첫날 레이스에서 금메달 7개를 모두 쓸어 담았다. 둘째 날도 일방적 응원 속 독주에 나서는 듯했지만, 한국의 황금세대들이 이를 저지했다.


황선우, 김우민, 양재훈(이상 강원특별자치도청), 이호준(대구광역시청)으로 구성된 한국 남자 수영대표팀은 25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올림픽센터 수영장에서 펼쳐진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계영 800m 결승에서 7분01초73(1위)으로 터치패드를 찍으며 중국과 일본을 제치고 시상대 꼭대기에서 애국가를 불렀다.


한국 수영의 아시안게임 사상 첫 단체전 금메달 획득이다. 2위 중국과 1초67, 3위 일본과 4초56의 큰 격차를 만들면서 금메달을 따냈다. 중국은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이후 13년 만에 탈환을 노렸지만 7분03초40으로 은메달에 그쳤고, 일본은 7분06초29로 동메달에 만족해야했다.


황선우 ⓒ 뉴시스

진천선수촌에서부터 준비해온 이정훈 감독의 ‘깜짝 오더’에 따라 한국 남자 계영은 결승에서 양재훈-이호준-김우민-황선우 순으로 물살을 갈랐다.


초반 150m지점까지 중국, 일본에 밀려 다소 불안했지만, 양재훈은 자신의 마지막 바퀴에서 일본을 앞지르며 2위로 올라섰다. 2번 주자 이호준은 중국까지 추월하며 300m 구간에서 1위로 올라섰다.


이후 한국은 1위 자리를 지켰다. 김우민이 투입된 후 550m 구간에서는 본격적으로 2위 중국과 격차를 벌렸다. 김우민이 1초23 차이로 터치패드를 찍었고, 마지막 주자 황선우가 들어서자 중국과 격차는 3초 이상으로 벌어졌다. 금메달을 예감한 황선우는 마지막 50m를 남기고 더 거세게 물살을 가르며 아시아 신기록을 완성했다.


지난해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대회, 올해 후쿠오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남자 계영 800m 2회 연속 결승 진출에 성공한 한국은 개최국 중국과 아시아의 강자로 군림하던 일본을 여유 있게 제쳤다.


지난 7월 세운 한국 기록(7분04초07)은 물론 일본이 2009년 로마 세계선수권에서 수립한 아시아 기록(7분02초26)마저 경신했다. 일본의 당시 기록은 수영복의 모양과 재질 등에 대한 규제가 이뤄지기 전의 일이다.


이날 전까지 한국은 단체전인 계영에선 은메달만 4개 획득했다.


1990 베이징아시안게임 여자 계영 400m, 1994 히로시마 남자 계영 800m,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남자 혼계영 400m, 2014 인천아시안게임 여자 혼계영 400m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번에는 달랐다. 박태환도 이루지 못했던 세계선수권 2회 연속 메달을 일군 황선우를 비롯해 모든 선수의 기량이 나날이 성장하며 기록을 단축해왔고, 이번 대회에서 결실을 맺었다.


위업을 달성한 ‘황금 세대’가 갑자기 출현한 것은 아니다. ‘박태환 키즈’로 불리는 이들은 작년에 이어 올해 초에도 호주로 이동해 현지 지도자들이 짠 혹독한 훈련을 견뎌냈고, 항저우에서 금빛 물살을 갈랐다.


경기 뒤 황선우는 "동료들과 호흡하며 아시아 신기록까지 깼다. 대한민국 수영팀이 기세를 탄 것 같다. 만족하는 결과다. 우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가겠다"며 의욕을 불태웠다.


지유찬 ⓒ 뉴시스

800m 계영에 앞서 한국 수영에 첫 번째 금메달은 안긴 선수는 자유형 50m에서 아시안게임 신기록을 세운 지유찬이다.


지유찬은 이날 중국 저장성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 수영장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자유형 50m 결선에서 21초72에 터치패드를 찍으며 정상에 섰다. 한국 선수가 아시안게임 남자 자유형 50m에서 우승한 것은 2002년 부산 대회 김민석(공동 1위) 이후 21년 만이다.


사실 지유찬의 금메달을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청소년 시절 주목받지 못했던 지유찬은 지난해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다.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서는 22초19를 찍더니 올해 세계선수권에서는 22초17로 기록을 0.02초 단축했다.


지유찬의 목표는 한국 수영 사상 첫 21초대 진입. 이번 대회 예선과 결선에서 잇따라 달성했다. 오전 예선에서 21초84를 기록, 대회 기록(종전 21초94)과 한국 기록(종전 22초16)을 모두 경신했고, 결선에서 이 기록을 다시 갈아치웠다.


황금세대를 더욱 두껍게 만든 지유찬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차지할 것이라는 생각은 못했다"며 "열심히 하니까 결과가 따라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전날 자유형 100m에서 동메달에 만족했던 황선우는 주종목인 자유형 200m(27일)에서 금메달에 도전한다. 첫 레이스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김우민은 박태환(광저우 대회 자유형 100m·200m·400m 우승)도 하지 못했던 '사상 첫 4관왕' 도전을 이어간다.

김태훈 기자 (ktwsc28@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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