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연합군 한 축…'호남 중도보수 세력' 동요한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입력 2023.08.28 05:00 수정 2023.08.28 09:26

경선 땐 국민통합특보, 본선 땐 중도

통합본부·동서화합미래위에 포진

작년 10월 용산 한 차례 초대, '시계

선물' 외에는 관리 전혀 없이 방치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이었던 지난 2021년 12월 7일,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잡아 이날 국민의힘 입당을 결단한 이용호 의원의 목에 붉은색 목도리를 손수 매주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0.73%p차 대선 승리로 문재인 정권에 5년만에 종지부를 찍고 정권교체를 이뤄낸 '대선연합군'의 한 축, 더불어민주당을 떠나온 '호남 중도보수 세력'의 동요가 심각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용호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국민의힘 조직강화특별위원회에서 자신이 공모에 응한 서울 마포갑 당협위원장 선정이 보류될 것이라는 통지를 받았다. 이 의원은 불교방송라디오에 출연해 "결과를 사전에 통보 받았고 상황도 설명을 들었다"며 "개인적으로는 당의 결정을 존중하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 의원은 호남이 '녹색 돌풍'이 불었던 지난 2016년의 반동으로 '푸른 물결'로 넘실거렸던 2020년 총선에서 호남에서는 유일하게 비(非)민주당 후보로 당선됐다. 28석 호남 중 27석이 민주당, 이 의원 홀로 무소속이었다.


이후 대선 직전인 2021년 12월 7일 국민의힘 입당을 결단했다.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가 직접 긴급기자회견을 잡아 이 의원에게 당색(黨色)인 붉은색 목도리를 매줬다. 윤 후보는 "이용호 의원의 용기 있는 결단에 감사드리고 환영한다"며 "대선을 앞두고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다. 지역감정을 타파하고 우리 당의 지지 기반을 확대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직후 이 의원은 '살리는 선대위'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위촉됐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 의원의 지역구인 전북 남원·임실·순창은 인구 하한선 미달로 선거구 공중분해가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이 의원은 지역구를 옮길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공모했던 서울 마포갑에서 보류가 된 것이다.


이용호 의원은 "서운하다기보다는 나로서는 아쉬운 생각"이라면서도 "나에 대해서 전략적인, 정무적인 여러 배려도 있으리라고 생각한다"고 여운을 남겼다. '마포갑이 (출마의) 마지노선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힘주어 말했다.


지난해 대선은 0.73%p, 표로는 24만7077표차의 초박빙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광주에서 12.7%(12만4511표), 전남에서 11.4%(14만5549표), 전북에서 14.4%(17만6809표)를 득표했다. 저조해보이지만 보수정당 후보가 호남 3권역에서 모두 10%의 득표율을 넘긴 것은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당장 직전 대선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광주 1.6%, 전남 2.5%, 전북 3.3%를 득표하는데 그쳤으며, 양자대결·진영결집으로 치러졌던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광주 7.8%, 전남 10.0%, 전북 13.2%를 득표했었다.


정치권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보다 호남 3권역에서 11만684표를 더 득표했다. 더 득표하는 만큼 이재명 후보의 표를 빼앗아온 셈이라고 보면 초박빙 대선에서 상당한 기여"라며 "게다가 호남은 그 자체의 표 뿐만 아니라 서울·수도권에서의 출향민 표심까지도 고려에 넣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선 승리는 전통적 보수 세력인 옛 친이계·친박계가 단결했을 뿐만 아니라, '조국 사태'를 계기로 586 운동권의 위선에 실망한 2030 청년들과 민주당을 이탈한 호남의 중도보수세력이 가세해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의 '뉴딜연합'을 연상시키는 '대선연합군'을 형성했던 결과였다. 그렇지 않고는 '10년 주기론'의 대한민국에서 '촛불연합'으로 출범한 민주당 정권을 5년만에 중도하차 시키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런데 지금 옛 친박계는 대구·경북 일각에서 '친박 무소속 연대' 구상이 솔솔 나올 정도로 독자행보를 펼치고 있다. 옛 친박계는 사면·복권에서도 소외됐다. 2030 청년들은 대선 이후 여러 사건을 거치며 상당히 이탈했다는 게 여론조사 지표상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소통관서 위촉장 찢고 지지 철회 선언
하겠다' 국민의힘 중진의원 만류 진땀
"제3지대에 합류한다면 대선 때 우리
찍었던 표를 잠식당하는 셈이라 걱정"


지난해 대선후보 경선 및 대선 본선 당시 호남 출신으로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해 윤석열 후보 지지 선언을 하고 국민캠프 특보나 중앙선대본 중도통합본부, 동서화합미래위 등에 합류했던 인사들이 대선이 끝난 뒤로도 1년 반 가까이 방치돼 있으면서 동요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중 일부 인사는 최근 국민의힘 중진의원을 면담한 자리에서 국회 소통관을 잡아 위촉장·임명장을 찢고 지지 철회를 선언하는 퍼포먼스를 하겠다고 해서 중진의원으로부터 급히 만류받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데일리안

여기에 민주당을 이탈했던 호남의 중도보수세력도 대선 이후 1년반 가까이 방치되면서 동요하는 정황이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재명 체제'의 민주당으로는 되돌아갈 명분이 없는 이들 호남 중도보수세력은 최근 금태섭 신당이나 양향자 신당 등 '제3지대'에 눈을 돌리는 경우도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호남 중도보수세력은 대선후보 경선 때는 주로 국민통합특보로 위촉됐다가, 윤석열 후보가 당의 공식 후보로 선출되면서 조직이 확대되자 이후에는 중앙선대본부 직능총괄본부 산하의 중도통합본부나 동서화합미래위원회 등에 포진했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용산 대통령실에 한 차례 초대받아 '대통령 시계'를 선물받은 것 외에는 관리가 전혀 없이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 때 중도통합본부에서 활동했던 한 관계자는 "구의원 등 선출직도 (민주당을) 탈당하고 윤석열 후보 지지를 선언해 당시 이재명 후보에게 큰 충격을 줬는데, 대선이 끝난 뒤 방치되는 모습에 배신감을 느끼는 인사들이 적지 않다"며 "지방선거 공천 때도 전혀 배려받지 못했는데 이용호 의원의 당협위원장도 보류되는 모습을 보며 '현역 의원도 저 정도인데 우리는 안중에나 있겠느냐'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동서화합미래위원회에 있었던 관계자는 "호남 출신 민주당 지방의원과 당원들의 탈당은 소수였지만, 중도를 넘어 진보까지도 공정과 정의·상식이라는 보편적 기치를 내세운 윤석열 후보에 합류했었다는 사실이 중요했던 것"이라며 "신의 없는 모습에 실망하고 분노해서 부글대는 기류가 분명히 있다"고 귀띔했다.


이들 중 일부는 최근 국민의힘 중진의원과 면담한 자리에서 '국회 소통관을 잡아 윤석열 후보 선대본부의 임명장을 찢고 지지 철회를 선언하는 퍼포먼스를 하겠다'는 격한 말을 해, 중진의원이 다급히 만류하는 일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 중진의원은 "한둘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는데 사후 관리가 전혀 안되고 있더라"며 "선거 캠프를 하던 사람 중에 일부가 조직 관리를 했어야 했는데 '나몰라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런 관리 문제는 대선이 끝나면 항상 있었다"며 "민원을 다 들어줄 수야 없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누군가 만나서 밥을 먹고 소통할 채널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채널 자체가 지정돼 있지 않은 게 문제"라고 진단했다.


국민의힘으로 찾아왔던 사람들이 다시 동요하는 모습을 보면서, 원래 호남을 기반으로 정치를 하면서 보수정당의 '호남포기전략을 포기하게끔' 하는 역할을 맡고 있던 인사들도 답답해 하는 모습이다. 특히 최근 보수정당의 일부 강성 지지층이 다시 '호남포기전략'으로 기울어지는 듯한 모습에 공개적인 우려도 제기됐다.


이정현 국민의힘 전 대표는 지난 14일 KBS라디오 '최강시사'에 출연해 "(잼버리는) 전북도만의 책임도 아니고, 또 누구만의 책임도 아니다"라며 "마치 호남의, 또는 전북의 도민들에게만 문제가 있는 것처럼 논평을 하는 게 당론이라고 한다면 나는 오늘이라도 그런 당에는 머물러 있고 싶지가 않다. 정말 정신 나간 소리"라고 개탄했다.


아울러 "얼마든지 실수라는 게 있을 수 있고 모두에게 다 착오라는 게 있을 수가 있는 것"이라며 "함께 극복해가면서 그런 것을 통해서 서로 발전해나가는 것이지, 어떻게 (전북만의 책임이라는) 그런 이야기를 할 수가 있느냐"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대선연합군의 일원이었던 호남의 중도보수세력이 민주당으로 되돌아가지는 못한다고 해도, 제3지대에 합류한다면 결국 대선 때 국민의힘을 찍었던 표가 총선 때에는 제3지대에 잠식당하는 셈"이라며 "출향민 표심의 영향력이 가장 강한 곳이 총선 승부처인 서울·수도권이고, 이들은 수천 표 차이로 당락이 갈리는 곳인데 동요하는 호남 중도보수세력의 모습에 우려가 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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