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배터리, 中에 무너진 외양간 하루 빨리 고쳐야 [기자수첩-산업IT]

오수진 기자 (ohs2in@dailian.co.kr)
입력 2023.08.28 07:00
수정 2023.08.28 07:00

싸구려 'LFP배터리' 무시하던 K-배터리, 부랴부랴 개발 나서

中 낮은 기술력도 옛말…고객사 확보 속도 매서워

K-배터리, '韓'만의 중저가 제품 개발로 재빨리 대응해야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이미지. ⓒ데일리안 박진희 그래픽디자이너

"솔직히 중국 배터리 기술, (한국) 많이 따라왔습니다."


중국 배터리 기업 CTAL의 기술력에 대해 묻자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답했다. 불과 1~2년 전 만해도 업계에서 심드렁했던 중국에 대한 인식이 최근 확실히 뒤바뀐 게 체감된다. 싸구려 배터리라며 무시했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최근 3사(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모두 만들겠다며 나선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요즘 배터리 업계 화두는 '값싼 배터리'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가 전기차 보급화를 위해 저렴한 엔트리급 모델을 확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위해 전기차 원가 40%를 차지하는 배터리 단가를 낮추는 수밖에 없다.


완성차 업계의 움직임으로 값싼 중국산 배터리는 각광 받기 시작했다. 배터리·전기차 시장조사업체인 EV볼륨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주력인 LFP 배터리 전 세계 점유율은 27.2%로 집계됐다. 지난 2020년만 해도 한 자릿수였던 점유율은 2021년 16.9% 보다 껑충 뛰었다. 오는 2026년 LFP 배터리 점유율은 47%까지 확대될 것으로 점쳐진다.


기술력이 뒤처진단 말도 이제 옛말이다. 저렴한 가격 대비 만족도 높은 성능을 갖춘 중국 기업 샤오미에게 '대륙의 실수'란 별명이 붙어있듯 'Made in China'는 싼 만큼 품질이 떨어지는 제품의 대명사였으나, 중국 배터리 기업들이 이 같은 편견을 제대로 깨부쉈다.


이는 중국 배터리가 탑재된 전기차가 과거보다 대량 늘어난 것만 봐도 확인이 가능하다. 결함 발생 시 큰 타격을 입는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 기술력이 딸리는 배터리를 함부로 탑재할 리 없기 때문이다. 내연기관차보다 더 많은 안정성이 요구되는 전기차에선 특히 그렇다. 테슬라, 벤츠, 볼보 그리고 한국의 현대자동차까지 중국산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이로 인해 배터리3사가 주특기인 고성능 프리미엄 '하이니켈 배터리'를 중점으로 펼치던 전략은 주춤해진 듯하다. 특히 프리미엄 배터리 젠5(Gen5)을 앞세우던 삼성SDI까지 중저가 포트폴리오 구축을 위해 분주해졌다.


LG에너지솔루션은 에너지저장장치(ESS)에 들어가는 배터리 일부를 LFP로 전환한 후 해외 생산 라인에서 LFP 제품을 양산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미드니켈, 망간리치 등 보급형 제품을 통해 중저가 시장을 대응할 방침이다.


SK온도 중저가 배터리 라인업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LFP를 포함한 미드니켈, 코발트프리 등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짤 예정이다.


삼성SDI도 중저가 라인업을 강화한다. 이미 확고한 우위를 확보한 프리미엄뿐 아니라, NCM기반에 미드니켈 배터리, 망간니켈, LFP 제품 개발을 통해 경쟁 우위를 확보하겠단 전략이다.


이렇게 부랴부랴 나섰지만 중저가 포트폴리오를 선제적으로 구축하지 못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과오다.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떨칠 당시 LFP배터리를 무시하지 않고, 다양한 제품 포트폴리오만 구축했어도 체감되는 위기감이 지금 만큼은 아니었을 것이다. 후발주자 SK온은 여력이 없다 하더라도, 선두주자인 LG에너지솔루션과 충분한 자금력을 갖춘 삼성SDI는 충분히 가능했을 시나리오다.


물론, 중국과의 승부가 이미 결판난 것은 아니다. 프리미엄 배터리 시장을 지배한 K-배터리의 기술력과 노하우라면,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른 중저가 전기차 시장을 장악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외양간은 무너졌지만 소는 잃지 말아야 한다. 한국은 중국의 추격이 임박할 때마다 치열한 노력으로 거리를 벌리며 '초격차'라는 용어를 탄생시켰다. 중국이 따라잡을 수 없는 한국만의 중저가 제품이 곧 탄생하리라 믿는다. 한껏 높인 한국 배터리 위상을 잘 지킬 때다.

오수진 기자 (ohs2in@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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