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악범에 물리력 행사, '정당방위' 인정되려면 법원 시각 바뀌어야" [법조계에 물어보니 208]
입력 2023.08.09 05:05
수정 2023.08.09 05:05
한동훈 "검찰, 범인 제압 과정서 물리력 행사한 경찰에 위법성 조각 사유 적극 검토 및 적용해달라"
법조계 "경찰, 흉기 난동 사건서 테이저건 쏴 피의자 검거하면 민형사 소송 시달리는 게 현실"
"1953년 형법 제정 이후 정당방위 인정 사례 14건에 불과…개인 민사책임 면제해야"
"개인 인권 개념 크게 성장…공권력 신뢰 확보 및 공평하고 공정한 법 집행 전제돼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묻지마 흉기 난동' 등 강력범죄 피의자 검거와 관련해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위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는 경찰 등의 물리력 행사에 정당행위·정당방위를 적극 검토해 적용하라"고 지시했다. 법조계에서는 "형사 사건에서는 정당방위, 정당행위를 거의 인정하지 않고 있고 민사소송에서는 국가배상책임을 쉽게 인정하고 있다"며 "법원에서 적극적으로 정당행위, 정당방위를 인정하도록 시각이나 입장의 변화가 같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7일 한 장관은 대검찰청에 내린 '폭력사범 검거 과정 등에서의 정당행위·정당방위 등 적극 적용' 지시에서 "범인 제압 과정에서 유형력을 행사했다가 폭력 범죄로 처벌된 일부 사례 때문에 경찰 등 법 집행 공직자들이 물리력 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렵다는 우려가 있다"며 "검찰은 물리력을 행사한 경찰 및 일반시민에게 위법성 조각 사유와 양형 사유를 더욱 적극적으로 검토해 적용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재판부가 정당방위 인정 요건을 너무 엄격하게 해석하는 반면 민사소송에서는 배상 책임을 쉽게 인정하고 있다며 법원이 적극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검사 출신 안영림 변호사(법무법인 선승)는 "경찰이 흉기 난동 사건 피의자에게 테이저건 등을 쏴 검거했다면 이후 민형사 소송에 시달리는 것이 현실"이라며 "형사 사건에서는 정당방위, 정당행위를 거의 인정하지 않는 반면 민사소송에서는 국가배상책임을 쉽게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1953년 형법 제정 이후 정당방위가 인정된 사례는 14건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된다. 법원에서 적극적으로 정당행위, 정당방위를 인정하는 입장의 변화가 같이 이뤄져야 한다"며 "검찰에서 불기소해도 결국 재정신청 등을 통해 결국 법원으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 배상 책임을 걱정하지 않고 강력한 경찰권을 집행할 수 있도록 국가배상책임도 엄격한 기준에 따라 인정해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 법원도 적극적으로 시각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강조했다.
김소정 변호사(김소정 변호사 법률사무소)는 "정당방위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현재의 침해일 것 ▲부당한 침해일 것 ▲자기 혹은 타인의 법익 보호를 위할 것 ▲방위하기 위한 행위일 것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5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해야 한다"며 "우리나라 법원에서는 정확한 경위 분석이나 논증 없이 정당방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당방위가 만들어지던 시대가 지금에 비해 안전한 분위기라서 그랬는지 인정받기가 매우 어렵다. 사회적으로 흉악범죄가 급증하고 있는 현시점에서는 침해의 현재성·상당성 등 정당방위 요건을 완화해 해석,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영 변호사(법무법인 한일)는 "배상 문제가 가장 걸림돌이 될 것 같다"며 "형사처벌을 피하더라도 민사 배상책임은 별개의 문제다. 정당방위나 정당행위의 범위를 넓게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민사책임을 경찰 개인이 떠안을 위험성이 있는 한 흉악범을 적극적으로 진압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경찰의 정당방위가 인정될 경우 경찰 개인의 민사책임을 면책하거나, 미국처럼 경찰 노조를 허용해 노조가 법적 책임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법 개정 없이도 판례로 충분히 면책 가능해서 법원 입장이 바뀔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김도윤 변호사(법률사무소 율샘)는 "형법 21조는 정당방위를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며 "위 요건을 정말 엄격하게 해석하다 보니 사실상 소극적 방어행위만 정당방위로 인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개인 인권에 대한 개념이 크게 성장했고 과거 군사정권 시절 아픈 기억이 있다는 점도 국가 공권력에 대한 정당방위 인정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라며 "특히 경찰에 대해 정당방위가 폭넓게 인정되려면 공권력에 대한 신뢰 확보가 최우선 과제로 보이며 확실한 기준 아래 공평하고 공정한 법 집행 등도 전제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