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선의 배우발견㊽] 기다린 보람, ‘박하경 여행기’ 이나영
입력 2023.06.05 14:23
수정 2023.06.07 14:21
영화 ‘후아유’,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와 ‘아일랜드’, 영화 ‘아는 여자’. 딱 거기까지였다. 배우 이나영의 연기를 보며 이 배우는 어느 별에서 왔나, 본인이 예쁜 줄도 모르고 저렇게 거칠게 연기할 줄 알다니 하며 감탄했던 것은.
다양한 캐릭터로 영화와 드라마에서 만났지만, 필모그래피 초반 강렬했던 개성은 어느덧 좁은 연기 스펙트럼으로 비췄다. 특히 건조하고 딱딱해서 좋았던 음색과 말투는 말할 때마다 목젖이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마찰음이 도드라지고 대사 연기 중에 갑자기 뚝 떨어지는 음정이 부각되며 단점처럼 느껴졌다. 희로애락의 파노라마를 표현하기엔 여러모로 틀 안에 갇힌 느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지난달 24일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박하경 여행기’가 공개되고도 얼른, 재생 버튼에 손이 가지 않았다. 추억에 기대 부족함을 메워가며 좋아하다가 되레 커졌던 실망, 하나 더 올리고 싶지 않았다.
개인의 호불호를 떠나 호평이 들려오면 보는 게 타당하다. 봤다. 손 모아 사죄해야 할 만큼 배우 이나영이 반짝이고 있었다, ‘박하경 여행기’(감독 이종필, 각본 손미, 제작 더램프주식회사)의 여덟 가지 이야기 안에서.
여전히 동안이다, 고등학교 선생님이 아니라 학생 같다, 고교 시절 대역이 필요 없었다 같은 미모 칭찬은 하지 않겠다. 그러기엔 이나영의 배우로서의 성장, 어떠한 연유인지 그의 인생 속속들이 알 수 없어 짐작할 수 없으나 세상의 누구라도 품어내고 어느 곳과도 어울리는 넉넉한 품을 갖게 된 성숙이 너무 크다.
드라마의 의도는 아니라고 해도 이나영은 매회 ‘도장 깨기’ 하듯 쟁쟁한 배우들과 공연한다.
길게 휴가 내지 않고 딱 하루만이어도, 멀리 해외 가지 않아도 국내로도 충분히 걷고, 먹고, 마시고 멍~때릴 수 있다면 한껏 행복할 수 있음을 ‘박하경 여행기’는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국어 선생님 박하경이 얼마나 괜찮은 어른인지, 좋은 사람인지 알게 되고 우리나라 자연이 진짜 금수강산(비단에 수를 놓은 것처럼 아름다운 산천)이구나 자연스레 느끼게 된다.
힐링과 행복에 빠져 보다가 이 여행의 인솔자 박하경을 연기하는 이나영에 주목했다. 어, 스타 이나영이 보인 게 아니라 작품이 먼저 보였네. 어, 가라앉던 목소리가 사라졌네, 그래서 이 많은 내레이션이 다 이나영의 몫이고, 이나영의 몫이어서 너무 좋네! 어, 회마다 파트너가 바뀌는데 다들 너무 잘하는데, 회차별로 바뀌는 조연들도 너무 맛깔나게 연기하는데, 이나영이 제일이네.
물론 이나영은 매회 나오니, 회차별 출연자들과 공정한 경쟁은 아니다. 박하경에게는 히스토리가 쌓여가지만 다른 인물들은 홀연히 나타났다가 사라지니까. 그래도! 상대가 좀 쟁쟁한가 말이다. 서현우와 주인영, 한예리, 구교환, 박인환, 길해연, 조현철, 김민채와 강애심, 그리고 심은경….
거꾸로 이나영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형국도 아니다. 배우 이나영은 마치 8개 작품 출연하듯, 연주곡 바꿔가며 8번의 연주회를 하듯 새로이 조화를 이루며 협연해야 한다. 그런데, 해냈다.
세상의 많은 배우 지망생 모두가 배우가 되지는 못한다. 배우가 된 모두가 대중에게 발견되어 사랑받거나 스타가 되지는 못한다. 되었다고 해도 오래도록 사랑받고 내내 인정받기 어렵다. 그래서 중도 포기하는 이들이 많다.
시시각각 새로운 배우가 쏟아진다. 눈여겨보고 기억해둘 배우인지, 우리 삶에 기쁨과 희망이 될 배우인지 끊임없이 생각한다. 좋아해서 마음에 저장해 두었다가도,연거푸 실망하다 보면 이제 ‘손절’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한다.
배우 이나영을 향해서도 그런 고민의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연기에서 받았던 위안과 행복을 향한 감사함이 남아, 과거 보았던 그 반짝임을 잊지 못해 마음에 안고 지냈다. 기다리길 잘했다. 기다린 보람, 팍팍한 삶에 넌지시 건네는 힐링의 진심을 연기에 담을 수 있는 배우 이나영의 귀환을 격하게 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