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은 왜 전광훈 같은 '주변인'에 휘둘리나 [기자수첩–정치]

정계성 기자 (minjks@dailian.co.kr)
입력 2023.04.24 07:00
수정 2023.04.24 07:00

전광훈 목사가 지난 17일 오전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전당대회 당시 전광훈 사랑교회목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소동이 일었다. "공천관리위원장 인선 시 동의를 받으라"는 요구를 김 대표가 거부하면서 관계는 끝났다고 한다. 하지만 전 목사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기에 집권여당의 당 대표와 거래를 시도하는지 국민적 의구심은 여전하다.


사실 정치판 밑바닥을 다녀보면, 스케일의 크고 작음의 차이는 있지만 전 목사 같은 유형의 인사들을 상당히 많이 접할 수 있다. "내가 몇 표를 움직일 수 있는데…", "내가 지역에서 무슨 무슨 조직을 가지고 있는데…" 등의 말과 함께 '표'를 가지고 후보자들을 유혹하는 식이다.


평시라면 정치인들은 흔들릴 일이 없다. 대부분은 '정치낭인' 혹은 심하면 '사기꾼'임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네, 네"하며 형식적인 장단을 맞추거나 "아유 그럼요, 잘 좀 도와주십시오" 정도의 립서비스에 그칠 뿐이다. 전략통으로 통하는 한 재선의원은 "큰 도움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굳이 적으로 돌려서 마이너스로 만들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했다.


하지만 선거철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투표가 임박할수록 정치인의 심리상태는 일반인보다도 취약해진다. 국민의힘의 한 의원은 "수험생들이 가채점으로 자신의 수능점수를 대충 알아도 성적표가 공개되기 전까지 답안을 밀려 쓰진 않았을까 악몽을 꾸지 않느냐"며 "그보다 최소 10배 이상의 불안감이 생기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된다"고 비유했다.


절박한 마음에 이들에게 정치적 공간을 내어주는 순간 진짜 악몽이 시작된다. 각종 캠프 인사는 물론이고, 정책이나 메시지에 대한 관여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실무자 중심으로 잘 돌아가던 캠프는 혼란에 휩싸이고 심하면 내분이 생기기도 한다. 선거 막판 일반인의 시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후보자의 실언이나 기행이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단적인 예가 김 대표가 밝힌 전 목사의 "공천관리위원장 인선 시 동의" 요구다. 뿐만 아니라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대표는 21대 총선 과정에서 전 목사로부터 과도한 공천 요구가 있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지역 단위로 확대해보면 이런 사례는 더욱 비일비재하다.


일단 국민의힘 차원에서 전 목사에 대해 분명한 선을 그었지만, 전 목사의 영향력을 이용하고자 하는 '개인'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투표가 임박할수록 당의 승리보다 개인의 당선이 더 중요하기에 유혹에 약할 수밖에 없다. 아예 "전광훈과 사진만 찍어도 공천에서 탈락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국민의힘 내에서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물론 탄탄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주변인'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보통 이들은 자신을 물 위로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공개되는 순간 조직력과 영향력이 반감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전 목사의 경우 정확한 영향력을 추산하긴 어렵지만, 80만 명이 넘는 국민의힘 당원 가운데 추천인에 전 목사를 써넣은 이가 981명에 불과할 정도로 과대포장된 측면이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리더의 안목과 흔들리지 않는 의지라는 당연한 결론에 이른다. 전체 선거판의 승패를 좌우하는 당 대표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워털루 전투 패배로 모든 것을 잃었던 나폴레옹은 "전쟁에서의 승리는 가장 실수를 적게하는 자에게 간다"고 했다.

정계성 기자 (minjk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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