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에 김치가 사치가 된 시대, 식품기업들도 할 말은 있다 [최승근의 되짚기]

최승근 기자 (csk3480@dailian.co.kr)
입력 2022.09.26 07:02
수정 2022.09.25 19:58

주요 곡물부터 유지류, 포장재까지 수입 의존도 높아

원재료 가격 50% 이상 상승, 이익률 5%로 감내 어려워

‘10월 물가 정점설’ 맞추기 위한 정부 압박 해석도

하루가 멀다 하고 들리는 식품 가격 인상 소식에 소비자들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대표적인 서민음식으로 불리는 라면부터 한국인의 소울푸드인 김치, 국민간식 치킨까지 오른 것보다 오르지 않은 것을 찾는 게 훨씬 빠를 정도다.


점심 한 끼 1만원. 고물가 속 ‘런치플레이션(점심+인플레이션)’으로 직장인들이 가장 쉽게 찾는 라면과 김치도 이젠 사치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대형마트와 편의점 등 유통기업에서는 치킨을 비롯해 피자, 초밥, 탕수육까지 ‘반값’이라는 타이틀을 달아야만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는 시대가 됐다.


물가인상의 화살은 식품기업으로 향하고 있다.


잇단 가격 인상으로 직접적인 소비자 부담을 야기하는 상대인 탓이다. 식품가격 인상은 일반 가정의 식탁물가는 물론 이를 재료로 사용하는 외식물가까지 덩달아 끌어올린다. 이 같은 구조를 보면 물가인상의 주범이 식품기업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핑계없는 무덤이 없다고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일견 이해는 간다.


국내 식품업계는 가공식품의 원재료인 밀, 옥수수 주요 곡물을 비롯해 식용유 같은 유지류와 포장재도 대부분 수입해서 사용하는 탓에 환율이나 국제 시세 등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올 초와 비교해 주요 원재료 가격이 50% 이상 상승한 점을 감안하면 가격 인상으로 단순히 수익을 늘리겠다는 의도가 아니라는 점은 확인이 가능하다.


특히 상반기 주요 식품기업들의 평균 이익률이 5% 초반인 점을 보면 원재료 가격 상승에 대응해 내부적으로 감내할 수 있는 폭도 크지 않다.


기업은 이윤을 내기 위해 존재한다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생존이 우선이다. 살아남아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정부의 반응에 대해선 아쉬움이 남는다.


물가 안정을 위해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하고 때로는 경고장을 날려 압박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업계에서는 정부가 모든 책임을 기업에만 지우고 슬그머니 한 발 빠지는 모양새란 지적이 나온다.


앞서 정부가 관세 인하 등의 조치를 통해 기업들이 가격 인상을 자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다는 변명에 대해서도 쓴소리가 이어진다.


소비자 가격에 반영되기에는 정도가 미미한 데다 해당 품목 이외에도 인상 요인이 다양해 상승 요인을 상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현재 가격 인상으로 지탄을 받고 있는 주요 대기업의 경우 실질적인 혜택을 보기 어렵다는 점도 불만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의 생색내기용 조치라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내뱉은 10월 물가 정점설에 맞추기 위해 식품기업들을 쥐어짜는 것 아니냐는 불만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나 내달 국정감사를 앞두고 있는 만큼 정부나 정치권의 압박이 허투루만 들리지는 않는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보통 국감 시즌이 되면 기업 총수의 증인 출석을 무기로 기업에 대한 각종 압박이 집중된다.


식품 물가는 소비자들이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지표 중 하나다.


식품기업들은 이번 위기를 계기로 수출 비중을 늘리고 원료 구매선을 다양화하는 등 외부 충격에 견딜 수 있도록 체질 전환에 속도를 내야 한다.


원재료가 올라 소비자 가격을 인상하겠다는 기업보다는, 원재료 인상에도 자구 노력을 통해 가격을 동결하겠다는 기업에 소비자들은 더 큰 관심을 갖는다.


정부도 기업에만 책임을 떠넘기지 말고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찾아봐야 한다. 위기 때 마다 기업에 도움을 요청할 것이 아니라 상부상조하는 관계가 돼야 한다.


라면에 김치가 부담없는 서민 음식이라는 평가를 되찾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바란다.

최승근 기자 (csk348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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